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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예멘 알카에다 손보기 ‘미국의 고민’ (2010 01/19ㅣ위클리경향 859호)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발생한 미국 디트로이트행 여객기 테러 기도 사건을 계기로 예멘이 ‘극단주의자들의 온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건 용의자인 우마르 파루크 압둘무탈라브(23. 왼쪽사진)는 나이지리아 출신이지만 예멘에서 활동하는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로부터 테러 훈련을 받은 데다 이번 사건 배후에 AQAP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 이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예멘을 국제적인 위협국으로 언급하는 등 예멘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예멘 정부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알카에다 소탕전을 강화하고 있다. 최대 관심거리는 과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어 ‘테러와의 전쟁’ 명분을 내세워 예멘에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할지 여부다. 오는 2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멘 관련 국제회의가 그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장이 될 전망이다.
 
 #극단주의자들의 온상과 불안한 내정
 9·11 테러 1년 전인 2000년 10월 예멘 아덴 항에 정박 중인 미군 전함 콜 호 폭파 사건이 발생해 미군 17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예멘에서의 테러리스트 활동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사건은 이번 여객기 테러 기도 사건의 배후인 AQAP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예멘에서 서방인과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을 대상으로 한 테러로 악명이 높았다. 지난해 3월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숨진 테러사건과 8월 사우디아라비아 대테러 책임자인 모하메드 빈 나예프 왕자에 대한 살해 기도도 이들의 소행이었다. 지난해 1월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으며, 이 단체 지도자 나세르 알 와하이시는 오사마 빈 라덴의 운전사 출신으로 유명하다. 아부바크르 알 키르비 예멘 외무장관은 예멘 내에서 활동하는 알카에다 대원을 3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의 테러 감시 단체인 인텔센터가 지난해 12월 30일 공개한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 지도부 사진. 오른쪽 두 번째가 이 단체 지도자인 나세르 알 와하이시.   AP통신

 예멘 정부는 군을 동원해 알카에다 소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북쪽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알 후티 시아파 반군과의 내전을 치르고 있고, 남쪽에서는 분리독립파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등 극도로 불안한 내정 탓이다. 그럼에도 1990년 예멘 통일 이후 집권해 온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67)은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아 ‘살레 왕국’을 건설하려는 꿈에 빠져 있다. 뉴욕타임스는 1월 5일 이와 관련해 테러와의 전쟁의 새로운 전장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예멘 알카에다와의 전쟁의 걸림돌로 예멘의 군주제를 꿈꾸는 살레 대통령의 ‘가족 우선’ 통치 방식을 지적했다. 살레 대통령은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군주제를 강화하려고 가족들을 주요 군 보직에 앉히는 등 군을 통한 가족 통치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들 아메드는 예멘공화국수비대 대장과 특수부대장을 맡고 있다. 그의 조카들은 국가 안보 부책임자(아마르), 예멘중부군 사령관 및 대테러부대장(야예), 대통령경호부대장(타렉)을 맡고 있다. 살레의 이복형제는 공군사령관이다. 뉴욕타임스는 살레 가문의 야망을 미국이 얼마나 관리하느냐에 예멘에서 알카에다와의 전쟁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결론지었다.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

 또 하나의 문제는 앞으로 예멘이 테러리스트 양성소가 될 수밖에 없는 열악한 경제 상황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리처드 폰테인과 앤드루 액섬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1월 5일자에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예멘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온 석유가 2017년이면 고갈되고 실업률이 35%에 이르는 현 상황을 언급하면서 “예멘의 열악한 정치적·이념적·경제적·환경적 요인 때문에 예멘은 앞으로 테러리스트 훈련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어디까지 개입할까
 미국은 그동안 알카에다의 활동을 뿌리뽑기 위해 예멘군에 대한 군사훈련 지원과 정보 제공을 통해 대테러 지원에 개입해 왔다. 항공기 테러 기도 사건 이후엔 예멘이 테러와의 전쟁의 제3의 장소가 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뿌리뽑겠다는 의지도 다지고 있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1월 4일 예멘의 알카에다 활동이 지역 안보를 불안하게 하는 등 국제적인 위협이 된다고 언급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알카에다 소탕을 위해 예멘 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31일 오바마는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중부군사령관을 살레 대통령에게 보내 미군 및 안보 지원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전개되고 있는 예멘군의 알카에다 소탕에 미사일과 무인전투기 등 군사력을 지원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예멘에 군사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미국이 과거에도 예멘의 잠재적인 테러 온상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행동보다는 말에 그친 탓이다. 더욱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군사적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경제 개발을 통한 국가 재건 지원 규모를 확대하는 동시에 제한적인 군사 공습과 같은 방식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6일 워싱턴의 국제개발센터에서 한 연설에서 “개발원조 지원으로 급격한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비용이 작다”면서 개발 지원 규모를 확대할 방침을 밝혔다. 
 군사 개입에 대한 예멘 정부의 반대와 개입에 따른 반미 감정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알 키르비 외무장관은 6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예멘에 외국군 주둔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면서 “에멘 정부는 (현재처럼) 더 많은 군사훈련 교관은 환영하지만 다른 군사 인력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미국의 우방들 사이에서 예멘에 얼마나 개입할 것인지 논란이 많다”면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의 경험을 통해 직접 개입하는 것이 사안을 복잡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예멘 국민들의 반미 감정도 미국의 개입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다. 1997~2001년 예멘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한 바버라 보딘 프린스턴대 교수(62)는 1월 4일 예멘포트스와의 인터뷰에서 “에멘을 (테러와의 전쟁의) 제3의 전선으로 여기는 것은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면서 “예멘 문제를 군사력을 통해 해결하려는 미국의 안보 문제로 여긴다면 문제를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예멘 사태에 대한 미국의 구체적인 대응은 오는 2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예멘 관련 국제회의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위한 국제회의 하루 전에 열리는 이 회의에서는 예멘에 대한 군사 지원뿐만 아니라 경제 지원 등 전반적인 안정화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6일 이번 회의와 관련해 테러리즘 대처 방안과 악화하는 인도주의 상황 개선 방안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예멘 군인 2명이 1월 6일 수도 사나에 있는 외무부 청사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AP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