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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케네디 2세 첫 상원의원 ‘초읽기’ (2008 12/23ㅣ위클리경향 805호)

‘케네디가의 전통’을 캐롤라인이 이을 것인가.
존 F 케네디(JFK)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51)가 아버지와 두 삼촌의 뒤를 이어 연방 상원의원이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월 1일 힐러리 클린턴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행정부의 국무장관에 내정되면서 그 후임자로 캐롤라인의 이름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보스턴글로브>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캐롤라인은 20여 명의 후보군 가운데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 검찰총장과 함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캐롤라인이 힐러리 후임 상원의원 후보군에 떠오른 것은 뉴욕 주는 상원의원직이 공석일 경우 보궐선거를 실시하지 않고 차기 선거가 있을 때까지 주지사가 상원의원을 임명하기 때문이다. 캐롤라인이 최근 칼자루를 쥐고 있는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 주지사를 만난 사실, 그의 삼촌 에드워드 케네디(76·매사추세츠 주) 연방 상원의원이 ‘캐롤라인 상원의원 만들기’ 로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는 이 같은 가능성을 더욱 크게 한다.
<NYT>는 12월 9일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삼촌 케네디 상원의원이 캐롤라인이 힐러리 후임 상원의원에 임명되도록 패터슨 주지사와 찰스 슈머 상원의원(뉴욕 주)과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의원(뉴저지 주)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보도했다. 케네디 상원의원과 패터슨 주지사 측은 이 보도를 즉각 반박했다. 케네디 의원 대변인 앤서니 콜리는 9일 성명을 내 “케네디 상원의원은 캐롤라인의 상원의원과 관련해 뉴욕의 어느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패터슨 주지사도 <NYT>와 인터뷰에서 “그(케네디 상원의원)는 다른 사람을 통해 나에게 어떠한 메시지도 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패터슨은 논란을 잠재우려는 듯 힐러리 국무장관 내정자가 의회 인준 청문회를 통과하기 전까지인 내년 2월까지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의 부인과 본인이 상원의원직에 대한 의향을 표명하지 않았음에도 ‘캐롤라인 상원의원 만들기’ 움직임은 감지되고 있다.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아들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최근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캐롤라인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으로 삶의 많은 시간을 사회봉사에 바쳤다”면서 “이제는 아이들도 다 컸으며, 그도 더 큰 무대로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JFK 행정부에서 백악관 보좌관을 지내고 캐롤라인의 오바마 지지를 이끌어낸 테드 소렌슨은 10일 <보스턴글로브>와 인터뷰에서 “내가 한 것처럼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면서 캐롤라인과 상원의원이 될 가능성에 대해 얘기했다고 밝혔다. 소렌슨은 1970년 로버트 케네디 암살 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경험 부족과 자금 모금 실패로 민주당 경선에서 떨어진 바 있다.
오바마도 12월 7일 NBC의 시사대담프로그램 <언론과의 만남>에 나와 “캐롤라인 케네디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됐으며 훌륭한 미국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여론도 캐롤라인에게 우호적인 편이다. 12월 9일 공개된 마리스트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캐롤라인은 경쟁자 쿠오모와 함께 25%의 지지를 얻었다. 지난달 쿠오모의 지지율이 43%였던 점을 감안하면 캐롤라인의 등장은 그에게 치명적인 셈이다.
‘상원의원 캐롤라인’ 탄생 가능성에 관심이 많은 것은 그가 케네디가의 전통을 이을지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아버지 JFK는 1953년부터 대통령에 당선한 1960년 말까지 매사추세츠 주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삼촌 에드워드는 1962년부터 지금까지 현직 상원의원으로는 두 번째로 오래된 46년째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68년 암살된 로버트 삼촌은 1965년부터 암살될 때까지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유일한 생존자인 에드워드는 현재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어서 ‘상원의원의 대’가 끊길 상황에 처해 있다. 캐롤라인이 연방 상원의원이 된다면 케네디 가문에서는 4번째, 케네디 2세로서는 첫 상원의원이 탄생하는 것이다.
JFK가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 불과 3세로 아버지 등 뒤에서 수줍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캐롤라인은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6세과 11세 때 아버지와 삼촌 로버트를 암살로 잃은 뒤 세상과 거리를 뒀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됐지만, 1986년 결혼해 3명의 자녀를 키우며 보스턴에 있는 JFK기념도서관 일을 맡으면서, 공공 행사 때만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피는 감출 수 없는 법. 수줍은 성격 탓에 정치와 거리를 둬온 캐롤라인은 지난 1월 <NYT> 오피니언 면에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는 글을 기고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섰다. 그는 “나는 한 번도 아버지처럼 국민을 감화시킨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없다”면서 “그러나 처음으로 내가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남자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튿날 캐롤라인은 삼촌과 로드 아일랜드 주하원의원인 그의 아들 패트릭과 함께 오바마의 워싱턴 유세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오바마를 대신해 유세장을 누볐으며, 지난 8월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투병 중인 삼촌과 함께 등장해 오바마에게 지지를 보냈다.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지명된 이후에는 에릭 홀더 차기 법무장관 내정자와 함께 부통령 후보 인선작업을 맡아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을 낙점했다.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능력인 선거자금 모금에도 뒤지지 않는 편이다. <보스턴글로브>는 12월 10일 2002년 캐롤라인이 1달러만 받고 뉴욕 시 교육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도 2년간 수천만 달러의 자금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케네디가의 딸이라는 후광은 최대 정치적 자산이다.
<뉴욕포스트>의 프레드 디커 에디터는 패터슨 주지사가 상원의원 적임자로 선거 자금 동원력을 갖추고 2010년 및 2012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인물, 그리고 140억 달러에 달하는 뉴욕 주의 적자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물을 고를 것이라고 CBS 인터뷰에서 전망했다. 캐롤라인이 이런 능력을 갖췄는지, 패터슨 주지사가 그의 손을 들어줄지 불확실하다. 설사 캐롤라인이 임명직 상원의원이 되더라도 본격적인 정치인이 되려면 2010년과 2012년 상원선거를 이겨야 한다. 2010년 선거엔 이미 공화당 하원의원인 피터 킹이 출사표를 낸 상황이다. 캐롤라인이 JFK와 삼촌들의 뒤를 이어 본격적인 정치인이 될지, 더 나아가 케네디가의 딸이라는 후광을 벗고 홀로서기에 성공한 정치인이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