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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주한미군 노동자 휴직도 무시하고 방위비 압박하는 미국(200321)

한국과 미국이 지난 17~19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7차 회의를 열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당초 일정보다 하루 연장해가며 협의했지만 방위비 분담금 총액에 대한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예고한 대로 4월1일부터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의 대량 무급휴직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노동자들의 무급휴직을 불사하면서까지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는 미국의 태도에 다시 한번 유감을 표한다.

한국은 이번 협상에서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의 대량 무급휴직 사태를 막기 위해 인건비 문제를 우선 타결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미국 측에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를 한국 정부가 부담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까지 쓰자고 했다. 그러나 미국 측은 ‘포괄적 타결’ 방침을 고수하며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한국인 노동자들이 무급휴직을 하건 말건 방위비 증액만 얻어내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이런 현실적인 제안까지 거부하면서 미국은 과연 무엇으로 동맹에 대한 존중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방위비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타결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한국인 노동자들의 휴직을 언급한 뒤 지속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주한미군을 위해 일하는 9000여명의 ‘한국인 동료’에 대한 일말의 배려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미동맹의 가치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아니면 무엇인가.

대량 무급휴직은 한국인 노동자의 생계는 물론 한·미동맹 강화나 연합방위태세 유지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한미군 한국인노조는 20일 무급휴직은 “한·미동맹 정신을 훼손하는 역사의 오점”이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주한미군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출근투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미 하원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 위원장과 간사는 지난 12일 무급휴직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것을 국무·국방장관에게 촉구했다. 이들은 무급휴가는 “코로나19라는 공동의 내부 위협과 북한이라는 공동의 외부 위협에 직면한 중요한 시기에 이러한 위협들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키는 행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타결될 때까지 현행 SMA를 한국인 노동자 임금에만 연장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한·미 양국에서 나오는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의지만 있다면 자체 예산으로 임금을 지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