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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9] 이라크 침공 빼닮은 미국의 코로나19 중국 때리기(200507)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공세를 보면서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떠올렸다. 전개 상황이 너무나 닮았다. 이라크 침공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11테러의 주범 알카에다와 그 배후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리려 언론과 손잡고 만든 합작품이다. 부시 행정부는 침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후세인과 대량살상무기 관련 가짜뉴스를 언론에 흘렸다. 주류 언론조차 애국심 열기 속에서 특종경쟁에 사로잡혀 사실 확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서특필될 때마다 최고 당국자가 이를 확인해주면서 전쟁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대표적인 기자가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였다. 그는 이라크 망명인사 아흐메드 찰라비와 당국자들이 흘린 정보를 기사화해 부시 행정부 선전전의 선봉장이 됐다.

코로나19 중국 때리기의 선봉장은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이다. 그는 지난 4월14일 “우한 연구소의 박쥐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와 인간 전염 가능성으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같은 새로운 세계적 대유행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는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전문, 익명의 행정부 관리들과 샤오창이라는 중국 반정부 인사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사 말미에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고 썼다. 애초 연구소 유출설은 통일교가 운영하는 워싱턴타임스가 약 세 달 전인 1월26일 처음 보도했다. ‘우한 봉쇄’ 사흘 뒤 나온 이 뉴스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트럼프조차 중국의 조치를 칭찬하는 등 코로나19는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WP 기사는 달랐다.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초기 대응 미숙으로 확진자·사망자 수가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호황이던 경제마저 침체로 접어들면서 트럼프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과 맞물린 덕분이었다. 보수 폭스뉴스뿐 아니라 진보 뉴욕타임스, 버즈피드, MSNBC 등도 퍼날랐다. 사흘 뒤에는 트럼프 행정부까지 가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연구소에 대한 조사를 중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연구소가 바이러스 유포지라는 주장에 지지를 선언했다. 재선을 6개월 앞둔 트럼프로서는 코로나19 대응 미흡에 대한 국내 비판의 화살을 중국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주장에 대해 중국은 물론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의 감염병 전문가, 심지어 미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과 합참의장조차 부인하고 있다. 중국 관련 유일한 사실은 최초 확진자 발생뿐이다. 중국이 확산을 은폐했다는 주장도 현재로서는 의혹이다. 그럼에도 가짜뉴스가 범람하면서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번 미·중 갈등은 코로나19 이후 주도권을 잡으려는 패권 다툼이다. 그리고 미국의 쇠퇴를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이가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 특별보좌관인 나탈리 토치 이탈리아 국제문제연구소장이다. 그는 코로나 위기에서 중국의 글로벌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선전전의 승리자라고 했다. 그는 “영국의 세계 패권을 궁극적으로 쇠퇴하게 만든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처럼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의 ‘수에즈 모멘트’가 될 것”이라면서 “그럴 경우 중국이 유일한 패권국가로 떠오르고 자유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언론인 딜립 히로는 “미국이 공공보건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해 조기에 자택 대기를 해제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할 경우 1946년 이래 보유해온 ‘세계 지도력 트로피’는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승자가 되든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 굴기의 충돌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지구촌에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 싱크탱크조차 미·중 무력충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지도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무력출동까지 가지 않더라도 제2의 무역전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지금은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탈진실’ 시대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때도 주류 언론들이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묵묵히 진실을 파헤친 소수 언론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미국 주류 언론의 트럼프 저지는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