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흑인후보 오바마 ‘검증’이 시작됐다 (2007 01/30ㅣ뉴스메이커 710호)

오늘날 워싱턴에 있는 미국의 지도자들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방식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 정치가 너무 받아들이기 어렵고, 당파적이며 돈과 영향력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 해답이 필요한 문제들을 다룰 수 없다. 나는 우리 모두가 얼마나 다른 형태의 정치를 갈망하는지 깊이 깨달았다.”

버락 오바마 의원이 2008년 대선 출마계획을 밝힌 다음달인 1월 17일 상원 외교위원회에 참석해 청문회를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꿈을 향한 레이스는 시작됐다. 그러나 그 길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민주당의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46)이 출사표를 던졌다. 오바마 의원은 1월 16일 자신의 웹사이트(www.barackobama.com)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2008년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다음달 10일 고향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대선 출마계획을 자세히 밝힐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해부터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정계 입문 3년차인 오바마 의원이 백악관 입성에 정식 도전장을 던진 순간이었다.

젊음은 최대 강점이자 약점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그의 출마계획에 대해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대회는 ‘성’과 ‘인종’ 대결이 중심 테마로 자리잡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바마 의원과 함께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대비한 것이다. 힐러리 상원의원은 NBC방송 ‘투데이’에 출연해 “(오바마 의원은) 훌륭하고 정열적인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정치인으로서 일천한 그의 경력을 꼬집었다.

오바마 의원의 최대 장점은 젊음이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61년에 태어난 그는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대선후보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리다.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두 번째로 젊다. 그 덕분에 그는 ‘록스타’ 혹은 ‘섹시남’이라는 파격적인 별명을 얻었다. 반면 그의 젊음은 최대 약점이 되기도 한다. 연방 상원의원이 된 지 겨우 2년이 지났다. 이는 전국 무대에서 활동한 경험이 2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민주당 대선주자 가운데 가장 경력이 일천하다. ABC방송은 그의 독특한 경력과 신선함이 그의 최대 장점이자 약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 켄자스주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하와이대학에 있는 동서센터에서 공부하다 사랑을 키워 오바마를 낳았지만 그가 6살 때 이혼했다. 그 뒤 줄곧 외조부 밑에서 하와이에서 자란 오바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주 옥시덴탈대학을 거쳐 1983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정치학 학사학위를, 91년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시카고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온 오바마는 1996년 시카고에서 주의원에 당선되면서 사실상 정계에 입문했다.

오바마 의원이 2004년 10월 민주당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후보 유세 당시 호신술 강세 앞에서 태권도 자세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코카인 복용 고백도 ‘불씨’ 소재

그런 그가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한 것은 불과 3년도 되지 않는다. 미 언론들은 그 계기를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로 보고 있다. 당시 일리노의주 의원이었던 오바마는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한 인상적인 기조연설로 연방 상원의원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동시에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오바마는 연설에서 미국의 희망과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은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가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를 조금만 바꾸면 미국의 모든 아이들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기회의 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국민들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선택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라크전에 대해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군대를 파병하지 않거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없거나, 세계의 존경을 얻을 수 없다면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리는 국기 앞에 맹세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지켜낼 하나의 국민”이라는 국민 통합론을 강조하면서 연설을 마무리했다.

같은 해 상원 유일의 흑인 당선자로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한 오바마 의원은 타고난 흡인력으로 가는 곳마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10월 그를 힐러리 의원과 견줄 만한 민주당 유력후보로 꼽았다. 미국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대선출마 발표를 자신의 프로그램을 통해 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출간한 자서전 ‘희망의 대담함’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백악관까지 가는 길 앞엔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 우선 힐러리 의원이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힐러리 의원은 여성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데다 이미 검증을 거친 인물이다. 선거자금 동원력 부분에서도 오바마는 힐러리에게 한참 뒤진다. 힐러리의 벽을 넘는다 해도 존 에드워드 상원 의원 등 쟁쟁한 후보들이 민주당 안에 버티고 있다.

언론의 혹독한 검증과정도 거쳐야 한다. 지난해부터 본격 시작된 언론 검증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오바마 의원의 지역구인 시카고의 유력 일간지인 시카고트리뷴은 지난해 11월 오바마 의원이 자신의 후원자와 수상한 거래를 했다고 보도했다. 그가 사업가 안토닌 토니 레즈코의 땅을 사들였다는 것이다. 거래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가 땅을 사들인 레즈코가 문제였다. 레즈코는 일리노이주 지사와의 친분을 이용해 기업들에 주정부 사업권을 따도록 해준 뒤 사례비로 500만 달러를 챙기려한 혐의로 기소돼 연방대배심의 조사를 받던 인물이다. 오바마는 보도가 나온 직후 “후원자로부터 땅을 사들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사과했다. 고교 시절 마약복용 사실도 도마에 올랐다. WP는 1월 3일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오바마의 과거가 이슈로 부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바마 의원은 1995년 쓴 회고록 ‘아버지로부터의 꿈: 인종과 물려받은 것들의 이야기’에서 고교 시절 코카인을 사용했으나 헤로인은 거부했고 대학 시절 마약을 끊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10여 년 전 자서전 내용이지만 그의 출마 선언으로 언제든지 부각될 수 있는 소재이다.

힐러리 의원과 언론 검증보다 더 큰 장벽은 미국인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은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종 장벽을 뛰어넘을 필승전략은 무엇일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오바마 의원은 출마계획을 밝히면서 “1년 전만 해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년 사이에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ABC방송은 “혜성처럼 나타난 오바마는 정치 세계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치는 움직인다. 과연 차기 미국 대선이 있을 2008년 11월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