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13] 군산복합체의 호구들(20092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미군 전사자들을 ‘패배자’ ‘호구’로 비하했다는 보도로 이달 초 곤욕을 치렀다. 막말을 밥 먹듯 하는 트럼프이지만 군 통수권자가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다. 사실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물론 힘없는 이들만 군에 가는 게 현실이니 틀린 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트럼프 또한 ‘발뒤꿈치뼈 돌기’라는 가짜 진단서 등으로 징집을 면하지 않았던가. 관심을 끈 것은 이보다 트럼프가 반박하면서 한 말이다. 장병들이 자신을 엄청 좋아한다고 운을 떼고는 이렇게 말했다. “펜타곤의 고위 인사들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계속해 폭탄과 항공기 등을 만드는 훌륭한 회사들을 기쁘게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방산업체 간 회전문 인사를 통한 결탁, 즉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를 비꼰 것이다. 군산복합체 비판은 많은 기성 정치인에게 ‘방 안의 코끼리’ 같은 문제다. 트럼프가 의도하고 한 말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그가 불편한 진실을 말했다는 점이다.

군산복합체 없는 미국은 상상할 수 없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고별연설에서 “군산복합체가 자유와 민주주의 절차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한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부터 수혜자다. 그는 5대 방산업체인 레이시온 로비스트 출신이다. 그 직전 장관 대행을 지낸 패트릭 섀너핸은 보잉 부사장이었다. 비영리단체 정부감시프로젝트(POGO) 자료를 보면 2008~2018년 방산업체의 로비스트, 이사회 멤버, 임원, 컨설턴트로 옮긴 국방부 고위 관료와 군 장교는 최소 380명이다. 이 가운데 95명이 5대 방산업체로 갔다. 실제로 국방부 무기 획득 사업에서 방산업체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2019회계연도 국방예산(6861억달러)의 절반이 넘는 3700억달러가 이들의 손에 들어갔다. 2018년 세계 최대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의 최고경영자(CEO) 연봉은 최저 사병의 1000배인 2000만달러였다. 혈세로 방산업체 CEO 배만 채운다는 비아냥은 당연하다. 납세자들은 방산업체의 호구인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천문학적인 국방예산 삭감 주장에 다시 불을 붙였다. 국방예산은 지난 8월 메릴랜드대 조사에서 농업 보조금과 함께 삭감 대상으로 지목됐다. 2016년 예산 5800억달러의 4분의 1가량(1250억달러)이 부풀려졌다는 내부 보고서도 나왔다. 그럼에도 국방예산은 ‘언터처블’이다. 올해 예산은 7380억달러다. 후순위 10개국 국방비 총합보다도 많다. 군비경쟁을 부추긴 냉전이 끝나도 국방비는 줄어들 줄 모른다. 그 이유로 9·11에 따른 테러 위협, 군부의 맹목적인 세계 지배전략 고수, 정치인의 선거 패배 우려와 함께 방산업체의 로비가 꼽힌다. 방산업체가 국방부에 로비하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필수적인 중요 인프라와 일자리 창출이다. 속임수일 뿐이다. 이 논리가 먹히는 이유가 바로 군산복합체에 있다.
 
시대가 바뀌면 국가안보에 대한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 국방이 곧 안보인 시절은 끝났다. 코로나 같은 감염병이 기후변화나, 보건 등 인프라 확충 문제와 함께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부각되고 있다. 재정 투입은 새 안보 우선순위에 따라 재조정돼야 한다. 기후변화는 이미 2007년 이란과 북한 핵 못지않은 위협으로 대두됐다. 그런데도 대응엔 여전히 소극적이다. 인프라 확충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2018년 2월 인프라 투자 예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중동에서 바보같이 7조달러나 쓰고서야 우리나라에 투자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가 내세운 수치는 사실과 다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조차 천문학적인 전비를 국가 발전의 저해요소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국방예산을 줄이지 않는다.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
 
미국인들은 국방비 삭감을 지지한다. 지난 7월 한 싱크탱크 조사에서 ‘국방예산 10% 삭감’에 57%(반대 27%)가 찬성했다. 삭감한 국방비 용처로는 코로나 대응(40%)이 가장 많았다. 건강보험(37%), 빈곤 감소(18%)가 뒤를 이었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지난 7월 국방예산 10% 삭감 법안이 상·하원에 제출됐지만 부결됐다. 11월 대선 이후 전망도 비관적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마찬가지다. 유력 국방장관 후보인 미셸 플로노이 전 국방차관도 컨설팅그룹에서 국방부 계약으로 큰 수익을 올린 인물이다. 코로나 이후 시대에 대비하려면 국방비 감축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이 선도해야만 가능하다. 군산복합체 고리를 끊는 일이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는 한 세계인 모두 군산복합체의 영원한 호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