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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아프리카 돕자” 아주 특별한 신문(2006-05-26)



보노(오른쪽)와 동료 보비 슈리버가 5월 15일 영국 런던에서 레드 마케팅에 참여키로 한 모토롤라의 ‘레드’ 휴대전화를 선보이고 있다.
보노(오른쪽)와 동료 보비 슈리버가 5월 15일 영국 런던에서 레드 마케팅에 참여키로 한 모토롤라의 ‘레드’ 휴대전화를 선보이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 가수 보노의 ‘레드마케팅’에 동참 파격적 편집으로 하루 수익 절반 기부

'지난 5월16일자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특별했다. 1면이 온통 붉은 색인데다 붉은 색 제호 안에는 `” ‘레드’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 제호 위에는 ‘오늘 신문 수익금의 절반은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기금으로 쓰임’이라는 광고문이 실렸다. 1면 표지는 붉은 색 바탕 위에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주사기, 기도하는 손, 해골 등의 그림과 함께 ‘오늘 뉴스 없음’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아래쪽에는 작은 글씨로 ‘예방·치료 가능한 병 때문에 오늘 65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씌어 있고 오른쪽 위 귀퉁이에는 아일랜드 록그룹‘`U2’의 리드싱어 보노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록가수 보노와 레드, 그리고 에이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디펜던트’가 이날 1면을 온통 붉은 색으로 도배한 까닭은 무엇일까.

‘레드’ 상표 판매수익금 적립

해답은 ‘레드’에 있다. 레드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운동을 벌여온 보노가 이를 위한 자선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만든 상표 이름이다. 보노는 레드 상표를 단 상품 판매를 통해 창출한 수익금을 2002년 에이즈와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공공과 민간 부문이 합작해 만든 ‘글로벌 펀드’(규모 48억 달러)에 기부할 예정이다.

보노가 벌이고 있는 레드 마케팅에 참여한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 5월 16일자 1면 표지.
보노가 벌이고 있는 레드 마케팅에 참여한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 5월 16일자 1면 표지.
레드는 지난 1월 26일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가한 보노는 그곳에서 ‘레드 마케팅’ 출범을 전 세계에 선언했다. 현재 미국의 신용카드회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아멕스), 스포츠화 전문업체 컨버스, 의류회사 갭과 엠포리오 아르마니, 모토롤라 등 5개 기업이 동참하고 있다. 동참 이유는 TV광고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광고비도 절약하고 ‘기업의 사회 공헌’으로 고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마케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레드 마케팅을 도입한 상품은 신용카드 ‘아멕스 레드’이다. ‘이 카드는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한 것입니다’는 문구가 쓰인 이 카드는 지난 3월 1일부터 판매되고 있다. 아멕스는 이 카드 거래금액의 1%와 연간 5000파운드를 초과하는 사용분의 1.25%의 금액을 글로벌 펀드에 기부키로 했다. 아멕스 레드에 이어 갭은 레드 티셔츠를, 컨버스는 두 종류의 레드 스포츠화를, 아르마니는 레드 로고가 새겨진 선글라스를 각각 선보였다. 갭은 오는 10월까지 재킷과 진, 지갑과 벨트, 모자 등 레드 로고를 부착한 상품을 50개로 확대할 예정이다. 아르마니도 오는 가을 컬렉션에서 모든 상품에 레드 상표를 적용할 방침이다. 그리고 지난 5월15일 보노와 그의 동료 보비 슈리버가 영국 런던에서 ‘레드 모토롤라’ 휴대전화기를 공개함으로써 세계적인 휴대전화 생산회사인 모토롤라도 이 대열에 합류했음을 공개했다. 현재 애플 컴퓨터와 같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도 레드 마케팅 참여를 고려 중이다.

‘인디펜던트’도 세계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레드 마케팅에 하루 동안 동참키로 하고 보노에게 객원편집장 자격을 주고 지면을 맡긴 것이다. 이날 72쪽의 ‘인디펜던트’ 지면 절반 이상은 객원편집장의 편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통해 지구촌 빈곤 줄이기에 앞장서온 록가수 봅 겔도프의 기고, 에이즈와 잃어버린 세대-어린이가 어린이 키우기, 록가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따위의 에이즈 관련 기사로 채워졌다. 인디펜던트는 이 특별판 신문값을 평소 70펜스(약 1200원)보다 15배 가량 비싼 10파운드(약 1만7800원)로 책정했다.

그렇다면 보노는 왜 레드 캠페인에 돌입했을까. 그가 객원편집장으로 지면 제작을 맡은 5월16일자 ‘인디펜더트’에 실린‘객원편집장의 편지’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보노는 객원편집장으로 나선 이유를 스타의 허영심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해 이 신문을 사서 읽는 모든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에이즈로 어른들이 사라지고, 어린이가 어린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보노는 이를 윌리엄 골딩의 소설‘파리대왕’에 빗대 ‘파리대왕 신드롬’으로 표현함)에 처한 아프리카의 한 마을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용감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구호활동가들이 깡통에 담긴 물로 에이즈라는 거대한 숲의 불을 끄기 위해 힘겹게 싸우는 것을 지켜봤고, 에이즈 치료약이 부족해 테이블 주위에 앉아 누구를 살릴지 결정하는 광경을 지켜봤다고 밝혔다. 그는 정말로 피할 수 있고, 예방·치료 가능한 병인 에이즈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나 남아시아의 쓰나미(지진해일)처럼 ‘코드 레드’급 자연재해라고 강조하면서 레드 마케팅 동참을 호소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에이즈 퇴치 등을 위해 공공과 민간이 합작해 글로벌 펀드의 민간 참여도가 너무나 미미했기 때문이다. 각국이 이 펀드에 출연을 약속한 금액은 48억 달러에 이르지만 민간 부문이 내겠다고 한 금액은 공공 부문의 2400분의 1에 불과한 200만 달러였다. 일반인의 참여가 저조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보노는 기회 부족으로 보고 일반인의 참여 유도를 위해 레드 마케팅을 벌인 것이다.

보노는 레드 마케팅을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 등 3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윈-윈-윈’ 정책이라고 보고 있다. 아멕스의 존 헤이즈 마케팅 담당 임원은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메일이나 TV광고비를 절감하면서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참여를 결정했다”면서 “홍보와 구전광고를 통한 레드 상표를 활용한 상품 판매는 광고비를 절약함으로써 아프리카 구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촌 빈곤줄이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록가수 봅 겔도프(오른쪽)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지구촌 빈곤줄이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록가수 봅 겔도프(오른쪽)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재앙을 기업 돈벌이 활용” 비판도

레드 마케팅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이즈라는 재앙을 기업이 돈벌이로 활용한다는 것과 소비자에게 아직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통해 지구촌 빈곤퇴치 운동을 벌여온 세계적인 록가수 봅 겔도프는 ‘인디펜던트’ 기고문을 통해 “아프리카의 세계 무역 기여도는 1~2%밖에 되지 않는다. 무역에서 1%를 늘리기 위해서는 현재 아프리카에 지원되는 구호금의 5배나 많은 구호금이 필요하다”면서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호보다는 무역 증대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는 구호금 지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일회성 행사와 같은 감정적인 호소로는 말이다. 하지만 단 하루에 그친 행사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인디펜던트’의 용기있는 결정은 사회적 공기라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범지구적 자선활동에 동참할 기업은, 국민들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