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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체니의 오발탄 자신에게 향하다(2006-02-24)




사냥 총기사고 메추라기게이트로 번져… 비우호적 언론들 “기회는 이때다” 연일 맹공

체니 부통령은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인가.” 딕 체니 미국 부통령(65)이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2월 11일 미국 텍사스주 코퍼스 크리스티에서 일어난 총기 오발 사고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위기는 단순한 오발 사고 때문만은 아니다. 체니 부통령은 이라크 침공 주도자, 국가안보국(NSA) 도청 파문, 중앙정보국(CIA) 리크게이트 등 굵직한 정치적인 사안에 직접 연루돼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안은 단순한 오발 사고를 넘어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메추라기게이트(Quailgate)’로 비화하고 있다. 체니 부통령은 자신이 쏜 총에 같이 메추라기 사냥을 간 변호사이자 공화당 지지자인 해리 위팅튼(78)이 얼굴과 가슴을 다쳤을 때만 해도 운이 나쁜 사고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사고를 하루 가까이 언론에 감춘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미국의 유력 언론을 비롯한 세계 언론은 이 사건과 체니 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일 다루고 있다. 언론의 태도는 체니 부통령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민주당원이나 반 체니 인사들에게 오발 사고는 굴러들어온 엄청난 호재이다.

‘오만과 고집’으로 사건 증폭시켜

체니 부통령은 사고 발생 나흘 만인 15일 공화당에 매우 우호적인 폭스뉴스채널과의 특별 인터뷰에서 “내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이라면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사과했지만 이미 확산된 파장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오히려 여론 전문가인 프랭크 룬츠는 체니가 비교적 호전적이지 않은 CNN의 ‘래리 킹 라이브’ 같은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인간적인 반응을 더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체니 부통령의 공개 사과에 대해 만족했다고 발표했지만 허사였다.

미국의 일간 ‘뉴욕타임스’는 체니 부통령의 사퇴론을 공식 제기했다. 이 신문의 칼럼니스트 밥 허스트는 16일 ‘부통령, 이젠 떠날 때’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체니 부통령은 약자 괴롭히기, 정보활동의 실패, 지지부진한 이라크 평화구축 작업, 비밀정보의 오용, 행정부 전반의 무능 등 백악관이 잊고 싶어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라면서 “이제 짐을 싸고 와이오밍으로 돌아가는 것이 국가와 대통령에 대한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퇴진을 요구했다. 허버트는 “체니 부통령은 우리를 이라크 수렁으로 몰아넣은 정보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데 누구보다도 광신적이었다”면서 “그 결과 미국의 젊고 용감한 병사들이 이라크에서 취약한 험비 차량을 타고 총탄과 폭탄, 폭약을 피해 다니고 있을 때 체니 부통령은 총을 들고 텍사스에서 사냥을 즐겼다”고 비꼬았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백악관 보좌관을 지낸 래니 데이비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체니 부통령의 총기 오발 사고 처리 방법은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데이비스는 “체니는 이야기가 안 되거나 사소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을 그의 고집과 오만 때문에 아주 큰 부정적인 이야기로 만들었다”면서 “스스로 만든 악몽”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사고는 사냥 사건이나, 뉴스가 하루 연기된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면서 “이는 딕 체니에 관한 것이며, 너무 많은 권력에 비해 책임감은 거의 없는 부통령을 가졌을 때 우리의 체제는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이쯤되면 메추라기 잡으려다 동료를 잡고 결국 자기를 잡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사냥이 취미인 체니 부통령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12월 그는 펜실베이니아주 롤링 록 클럽에서 동료 10명과 꿩사냥을 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우리에서 기른 500마리 꿩 가운데 417마리를 사냥했다. 그 가운데 70마리는 체니가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동료들이 다시 오리 사냥을 위해 이동했을 때 체니 부통령은 부하직원이 진공 포장해준 꿩을 가지고 워싱턴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당시 동물애호회는 “그렇게 많은 동물을 연습삼아 죽였다는 데 경악한다”고 비판했다.

한 달 뒤 체니 부통령은 또 다시 사냥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엔 그와 관련된 사건이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데도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과 함께 루이지애나주로 사냥을 간 것이 문제였다. 체니 부통령은 당시 새 에너지정책을 입안 중이었는데 대법원은 그를 찾아온 로비스트들의 이름을 비밀로 지킬 것인지를 결정하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부정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이 에피소드로 두 사람의 명성이 크게 훼손됐음은 물론이다.

토크쇼서 ‘최고의 소재’로 비아냥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들이 체니 부통령의 총기 오발 사고를 놓칠 리 없다. 체니에겐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이었지만 토크쇼 진행자에겐 ‘최고의 소재감’이기 때문이다. CBS방송의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은 “신사 숙녀 여러분, 좋은 소식입니다. 마침내 대량상살무기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딕 체니입니다”라고 빈정댔다. 레터맨은 이어 “위팅튼 변호사에겐 나쁜 소식”이라며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그에게 방탄복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비꼬았다. NBC방송의 ‘투나잇 쇼’ 진행자인 제이 레노는 “딕 체니가 78세의 늙은 변호사인 동료 사냥꾼을 잘못 쐈다”면서 “사실 그가 변호사를 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의 인기도는 92%에 달했다”고 말했다. 코미디센트럴의 ‘데일리 쇼’ 진행자인 존 스튜어트는 “딕 체니 부통령이 메추라기 사냥 중 오발을 해 78세의 해리 위팅튼을 알렉산더 해밀튼 이후 처음으로 총 맞은 현직 부통령으로 만들었다”면서 “아이들이 부통령과 함께 사냥여행을 가지 않도록 하라”고 농담했다.

관심은 이번 총기 오발 사고로 결국 체니 부통령이 물러날 것인가에 있다. 전문가들은 체니 부통령이 사퇴할 경우 연말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에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러트거스 대학의 로스 베이커 교수는 “체니는 부시 대통령 가족이나 다름없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동생인 젭 부시보다 체니를 먼저 열차 밖으로 떠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시 대통령이 그만큼 체니 부통령을 신뢰한다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체니 부통령이나 백악관, 공화당이 할 수 있는 건 위팅튼 변호사가 회복되길 기도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위팅튼의 상태가 악화되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체니 부통령 오발 사건 일지

▲2월 11일(토) 오후 6시 30분-오발 사고 발생 오후 7시 30분-부시 대통령에 통보 오후 8시-부시, 체니가 방아쇠 당겼다고 함 오후 9시 15분-위팅튼 변호사 병원 이송▲2월 12일(일) 오후 2시-지방지인 코퍼스 크리스티 콜러-타임스지 기사화 부통령실, 기사 내용 사실 인정 이른 저녁-체니, 위팅튼 병문안▲2월 13일(월) 토크쇼 진행자들 일제히 체니 부통령 조롱 ▲2월 14일(화) 오전 7시 30분-위팅튼 가벼운 심장발작 오후 1시 30분-체니, 위팅튼에 회복 기원 전화▲2월 15일(수) 체니, 폭스뉴스와 인터뷰서 잘못 인정▲2월 16일(목) 케네디 카운티 보안관, 체니 범죄 혐의 없다고 밝힘 부시 대통령, 체니 오발 사고 해명에 만족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