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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산재 해결 한목소리 여야, 이번엔 법·감독체계 제대로 세워라(210514)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숨진 일용직 노동자 이선호씨의 빈소를 찾았다. 이틀 전 산재 감축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한 데 이어 산재 척결 의지를 다시 한번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들과 국민의힘 국회 환경노동위원들도 지난 12일과 13일 각각 평택항을 방문했다. 이선호씨의 죽음을 계기로 모처럼 여야 정치권이 산재 줄이기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엔 반드시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져야 한다.

이선호씨의 죽음은 ‘산재 공화국’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냈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2010~2019년 항만에서 발생한 산재로 사망하거나 다친 노동자는 각각 33명과 1193명이었다. 연 평균 3명이 숨지고, 120명 가까이 다친 것이다. 항만이 얼마나 산재에 취약한 지, 그리고 산재로부터 안전한 곳이 없음을 보여줬다. 이번 이씨 사고의 원인으로는 하도급과 원청 간 비정상적인 계약 관행이 지목된다. 업무를 잘게 쪼개어 단순 인력공급 계약을 한 탓에 위험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망가진 것이다. 이를 바로잡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한국을 산재공화국으로 만든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산재를 척결할 법과 제도를 만들지 못했다. 지난 8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의 경우 현행 법으로는 사업자를 처벌할 수 없다. 지난 1월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내년 1월27일 시행되는 탓이다. 노동부의 산재 다발 기업 감독 체계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특별감독이 끝난 바로 다음날 산재 사망사고가 일어난 현대중 사례가 대표적이다. 산재다발 기업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지만 노동부의 감독 체계가 개선이 시급하다.

 

아무리 TF를 만들고 현장을 찾아가도 법·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면 소용없다. 여야는 산재를 막을 수 있는 중대재해법을 늑장 처리와 누더기 입법으로 만든 책임음 통감하고 법 제정 취지에 맞게 보완에 앞장서야 한다. 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13일 발의한 ‘벌금 하한선’을 담은 법 개정안이 그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정부가 조만간 마련해 내놓을 중대재해법 시행령에도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2023년으로 예정된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을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2019년 12월 김용균씨의 죽음이 중대재해법 제정의 밑거름이 됐듯 이선호씨의 죽음이 산재 줄이기의 이정표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