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택배노동자 과로사 없애는 게 이렇게 어려워서야(210610)


 
전국택배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이 9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전날 정부와 여당, 택배 노사 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2차 사회적 합의가 결렬된 데 따른 행동이다. 지난 1월 1차 사회적 합의 이후 택배노조는 여러 이유로 파업 결의·철회를 반복했지만 이번은 여느 때와 달리 사안이 엄중하다. 신속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파업에 따른 불편은 불가피하고, 과로사 방지 약속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1차 사회적 합의의 핵심은 택배기사 과로사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된 분류작업을 택배사의 책임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대신 택배사에 택배비 인상으로 분류 인력을 확충하도록 하고, 현장 사정상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을 할 경우엔 택배사가 대가를 지급하도록 했다. 합의가 이행된다면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택배사들은 1차 합의 후 택배비를 150~250원 올렸을 뿐 분류 인력 확충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CJ 4100명, 롯데·한진이 각 1000명을 충원했지만 로젠과 우정사업본부는 한 명도 확충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조로서는 택배사가 택배비 인상으로 이익만 챙기고 택배기사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소홀했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택배기사 4명이 과로사했고, 2명은 뇌출혈로 입원 중이다. 그런데도 택배사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택배사들은 전날 2차 회의에서 최종 합의안 시행 시점을 합의 1년 뒤로 하자고 고집했다고 한다. 한시가 급한 택배노조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협상이 성사될 것으로 판단한 근거가 궁금하다. 더불어 택배사의 합의 이행 여부를 점검·감독해야 할 정부·여당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사정 모두 사회적 합의를 할 때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아무리 이해 당사자 간 이견이 크다 해도 약속을 했다면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 택배노조가 파업에도 향후 교섭에 참여할 의사를 밝힌 것은 다행이다. 택배사들은 기사들의 희생과 시민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택배비 인상에 협조한 것이 코로나19 속 급성장의 배경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윤은 챙기고 사회적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책임 있는 기업의 자세가 아니다. 택배사들과 정부·여당은 이번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이달 말까지 실행 가능한 합의 도출을 위해 성실하게 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