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군내 성추행 경종 울린 공군 이 중사 가해자 9년 징역형(211218)

고 이예람 공군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치상 등)로 기소된 장모 중사에게 징역 9년형이 선고됐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17일 “피해자의 죽음을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해도 추행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군검찰이 구형한 15년형보다는 낮지만 강제추행치상 형량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1심 선고 형량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군내 성추행과 이 중사를 사망에 이르게 한 군의 부실 대응을 단죄한 것으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이 중사 사건은 발생은 물론 이후 수사 등에서 군의 충격적인 부실 대응을 드러냈다. 이 중사는 지난 3월 초 저녁 자리에 불려 나갔다가 선임 장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피해를 호소하다가 동료와 상관으로부터 회유·압박 등 2차 피해에 시달린 끝에 지난 5월2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건의 파장을 감안하면 가해자 장 중사에 대한 중형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이날 재판부가 구형량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한 것은 장 중사가 성추행 후 이 중사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 특가법상 보복 협박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과를 위한 행동이었다는 장 중사의 주장을 재판부가 수용한 것이다. 이에 이 중사 유족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추후 항소심 등에서 추가로 판단하기를 기대한다.

이 중사 사망 이후에도 군내 성추행과 부실 대응이 이어져 국민적 지탄이 일었다. 지난 8월 상급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해군 A중사가 목숨을 끊었고, 이 중사 사망 열흘 전에는 공군 B하사가 상급자로부터 강제추행당한 뒤 숨진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군은 여전히 성폭력에 둔감하다. 군은 매번 사건 축소·은폐에 급급하고, 피해자에 대한 회유와 압박하는 등 2차 가해를 했다. 이 중사 사건의 초동수사를 부실하게 진행한 관계자들에 대한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재판에 대한 항소 여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군법원의 최종 형량은 향후 군내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양형 기준이 된다. 그동안 군사법원은 제식구 감싸기로 존재 이유를 의심받아왔다. 군내 성범죄를 근절하고 미온적인 군내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도 중형은 필요하다. 국방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군내 성폭력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