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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온라인

연 매출 1조7856억원, 번창하는 ‘인질산업’ 실체

연 매출 규모가 10억파운드(약 1조7856억원)에 이르며, 갈수록 번창하는 산업이 있다. 이 산업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이 산업의 원자재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시간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노리는 사람들에겐 ‘걸어다니는 황금’으로 불린다. 바로 사람을 납치해 석방해주는 대가로 몸값을 받는 ‘인질산업(hostage industry)’이다.

케냐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어선 금미305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7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때마침 갈수록 번창하는 인질산업의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지난 4월 인도양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원유운반선 삼호드림호가 7개월째 억류 중이지만 석방 협상은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터여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소말리아 인근의 해적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소말리아, 이라크에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에서 국제 구호요원이나 서방 기업종사자, 관광객, 현지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납치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2008년에만 7000명이상 납치됐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지난해 적어도 1000명이 납치됐다. 소말리아에서는 외국인들이 매달 106명 꼴로 납치되고 있다. 요약하면 전세계적으로 매년 적어도 1만2000명이 납치되고 있다. 17일 현재 외국인 400명을 포함해 2000여명이 임시변통으로 만든 ‘감옥’에서 언제 풀려날지도 모른 채 또다른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숫자에는 전쟁으로 인한 고아나 신부납치 관행에 따라 사라진 여성의 숫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이들은 안전하게 풀려나기 위해 납치범에게 지불하는 몸값은 엄청나며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나이지리아 경찰은 2006~2008년 납치범에게 지불된 몸값 규모는 1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알 카에다는 서아프리카에서 몸값으로만 수백만달러를 번다. 과거 반군이나 게릴라들은 정치적인 이유나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인질을 잡았지만 갈수록 상업화하고 있다. 요즈음 대부분의 납치는 몸값을 노릴 목적으로 이뤄지며, 인질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서는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160만달러까지 되는 실정이다. 납치가 성행함에 따라 연관산업도 함께 성장해왔다. 납치와 몸값을 대주는 보험회사도 생기고, 고액을 받는 협상전문가나 변호사, 개인경호원도 덩달아 호황이다.

통상 사람들은 납치의 대상으로 유명 인사들을 떠올린다. 실제로 과거 인질범들은 자국의 분쟁을 확산시키거나 반군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홍보수단으로 유명 인사들을 납치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 국가의 경우 정치적으로 인질을 활용하지만 일반적인 인질은 마약 조직에 의해 납치된 멕시코인이거나 석유 관련업에 종사하는 나이지리아인이나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납치되는 사람들이다. 인질 납치는 과거만 해도 남미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2004년까지 남미에서 발생한 인질사건은 전세계의 65%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그 숫자는 37%로 줄어들었다. 대신 필리핀,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적도기니, 멕시코,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파키스탄, 이라크, 네팔, 아이티, 예멘 등 남미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납치가 확산되고 있다.

납치범들이 인질을 다루는 방법도 천양지차다. 멕시코의 경우 인질들을 함부로 대한다. 몸값을 높일 목적으로 한 손을 없애는 것도 다반사다. 그래도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인질의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반대로 나이지리아는 인질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 아프간의 탈레반과 이라크 무장세력은 자금을 모을 목적으로 인질을 활용한다. 2004년 이후 이라크에서는 외국인 200명과 자국인 수천명이 납치됐으며, 자국인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안보 및 정치위험 관리회사 AKE가 인질극이 만연하는 10대 국가 가운데 3위로 분류한 나이지리아의 경우 니제르 삼각주에서 이슬람 반군에 의해 납치된 외국인 석유업 종사 노동자는 올해 21명을 포함해 2006년 이후 200여명에 달한다. 석유 기업들은 납치범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 스태프를 철수시키고 첨단장비로 무장한 사설 경호원을 고용했지만 이슬람 반군들은 중산층 자국민이나 그들의 자녀를 납치하는 쪽으로 전술을 바꿨다. 나이지리아인의 몸값(3만달러 이하)은 외국인(20만달러)의 6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올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나이지리아인 인질만 해도 500여명이나 된다.

인질의 경우 이름이 알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구호요원이나 기술자, 현지 기업인의 아들 등 익명이다. 이 때문에 언론들은 시간이 갈수록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며, 결국은 납치된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만 애간장을 태우게 된다.
익명의 인질조차 몸값이 엄청나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한 과자점 주인의 아들은 아버지가 평생 모은 1만달러를 주고서야 풀려났다. 물론 서방의 노동자나 선박의 경우 몸값은 훨씬 많다. 나이지리아에서 납치된 독인인 2명은 납치범에게 43만달러를 내고서야 풀려났다. 선박의 경우 300만달러나 700만달러가 협정가격이다. 이보다 나쁜 경우는 자신들이 원하는 몸값을 제때 못받는 참을성이 없는 납치범이다. 지난해 이라크 바그다드의 한 소년은 기술자 아버지가 48시간 안에 몸값을 마련하지 못해 피살됐다. 심지어 몸값을 원하는 대로 준비했지만 피살된 경우도 있다.

서방국가들은 인질극이 발생할 때마다 인질범과는 타협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돈으로 해결할 경우 인질극이 오히려 기승을 부리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각국 정부는 물론 부인하지만 현실적으로 몸값 지불을 반대하지 않는다. 지난 8월 스페인 정부는 모리티아니에서 지난해 11월 납치된 2명의 자국 구호요원에게 엄청난 몸값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적이 있다. 스페인 일간 엘 문도는 스페인 정부가 이들의 석방을 대가로 지불한 몸값이 500만파운드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2006년엔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정부가 이라크에 억류된 자국민 9명을 석방하는 대가로 각각 250만~1000만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년 간 인질 석방 대가로 지불된 비용은 총 4500만달러나 된다. 영국 정부도 결코 몸값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인질 관련 정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는 것이 인디펜던트의 주장이다.

인질 석방 관련 산업도 사기업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발표한 미국 500대 기업 가운데 납치와 몸값 관련 보험에 가입한 기업은 4분의 3이나 된다. 납치와 몸값 관련 보험료로 지불된 액수는 전세계적으로 4억달러에 육박한다. AKE에서 인질협상 전문가로 일하는 존 체이스는 인디펜던트에 “1970년대에는 납치와 몸값과 관련한 보험회사는 한 곳뿐이었지만 지금은 4곳으로 성장했다”면서 “이들이 이 시장의 98%를 커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이스에 따르면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인질상황은 없다. 그는 “정치적인 요구로 시작된 인질극이라 해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서 “각국마다 인질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몸값은 얼마가 될지 기준이 있으며 인질범에게도 각자 요구하는 가격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벌어지는 해적들의 인질극은 협정 몸값을 왜곡시키고 올리는 주범이다. 체이스에 따르면 과거 해적들이 요구하는 협정 몸값은 150만달러였다. 그러나 지금은 300만달러로 두 배 올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납치범들에게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이 든다. 소말리아 앞바다에 있는 납치범들 선박에 몸값을 담은 꾸러미를 전달하는 비용이다. 이를 담당하는 항공화물회사의 경우 한번 떨어뜨리는 데 약 25만달러를 받는다.

인질산업이 번창할수록 해적들의 대응도 갈수록 정교화하고 있다. 해적들이 석방 대가로 받은 수백만달러의 몸값이 갑자기 가난한 해안 마을에 밀려들면 생필품 가격은 2~3배 뛴다. 이 같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생필품조차 구할 수 없게 된다. BBC방송이 최근 방영한 다큐멘터리는 해적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마련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해적들은 비록 암시장이긴 하지만 자체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주식시장’을 만들어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있다. 우선 각 해적조직들은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등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주식시장'에 등록한다. 개인들은 주식을 사거나 무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각자 원하는 해적조직에 투자한다. 그리곤 자신이 투자한 해적조직이 몸값을 받는 데 성공하면 투자한 만큼 돌려받는다.

인질 관련 전문가들은 인질산업이 번창하는 이유가 정부나 기업, 개인 등이 납치 사실을 비밀로 부치려는 속성 때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인질문제를 투명하게 다루기 위해 유엔이나 국제적십자사(ICRC)와 같은 국제기구 산하에 독립적인 기구를 둘 것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