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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총 막기 힘들면 실탄을 조금만 주자 (2011 01/25ㅣ주간경향 910호)

ㆍ미국 총기소유 또 도마에, 10발 이상 탄창 판매 금지법안 추진

애리조나주 총기난사 사건이 미국의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연초부터 미국을 경악시킨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으로 총기 규제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1월 11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 인터넷판에 따르면 1993년에 남편을 총상으로 잃은 민주당의 캐롤라인 매카시 하원의원과 프랭크 라우텐버그 상원의원은 실탄을 10발까지만 장착하는 탄창을 판매하도록 하는 법안을 이달 중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가 1월 10일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애리조나주 총기사건 희생자 추도식 중 묵념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이 법안은 탄창에 장전할 수 있는 실탄 규모를 제한했다면 사망 6명, 부상 14명을 낳은 애리조나 참사의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제러드 러프너(22)는 30발을 장전할 수 있는 탄창을 사용했다. 비슷한 조치가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있었지만 2004년 만료되면서 사라졌다. 매카시 의원은 공영 라디오방송(NPR)과의 인터뷰
에서 “정치적 현실을 고려해 총기 소지 금지가 아닌 장전 탄알 수 제한을 주장한다”면서 “현재 상·하원은 ‘총기 찬성 의회’”라고 꼬집었다.

미 하원의 신임 국토안보위원장인 공화당의 피터 킹 하원의원도 이날 의회 의원과 같은 특정 공무원들 주변 1000피트(약 330m) 이내에 총기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킹 의원의 기자회견에 동석한 총기 규제 옹호론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러프너가 2007년 마약 용품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지만 이후 총기 구매에 제한을 받지 않았다면서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행 연방법은 총기를 구입하기 위해선 연방수사국(FBI)의 신원조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FBI 신원조사를 받은 총기구매자는 2009년의 경우 1400만건으로 전년도 1200만건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앞서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지난 10일 성명에서 공격용 무기 소지를 제한하는 입법을 위해 모든 선택지를 검토할 것이라며 양당 의원들과 이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론도 일단은 우호적이다. CBS뉴스가 지난 10일 673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엄격한 총기 규제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응답자는 47%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4월 조사 당시 40%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엄격한 총기규제 필요하다” 47%

미국에서 총기 규제 강화 움직임은 총기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지만 현실적인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가장 큰 장애는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총기 소유 문제는 헌법상의 권리(수정헌법 2조)로 시민권의 핵심이라고 인식하는 데 있다. 이 같은 인식은 당파를 초월한다. 민주당조차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총기 규제에 대한 민주당의 거부감은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CSM에 따르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4년 실탄을 10발 이상 장착하는 탄창의 사용을 금지하고 특정 모델
의 반자동 소총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1994 범죄법안’(2004년 9월 13일 만료)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총기 소유 옹호자들의 반발은 물론 정치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나 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4년 발간한 자서전 ‘마이 라이프’에서 당시 총기 규제 옹호입장이 1994년 하원의원 선거와 2000년 대선에서의 실패를 불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수검표 작업까지 간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대선 후보는 총기 소유에 적극적인 테네시주와 아칸소주,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패배함으로써 결국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한 총기 판매상 주인이 1월11일 애애리조나 총기사건 용의자가 사용한 반자동 권총인 ‘글락’을 보여주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2008년 선거 후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총기 규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대 현안인 경제위기와 보건의료개혁법안 처리를 위해 공화당에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CSM에 따르면 민주당은 2009년 봄 신용카드 법안을 처리하면서 국립공원에서 총집에 들어있는 총기 휴대를 승인했다.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 27명이 이 법안 도입에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은 또 수도 워싱턴DC에서 투표권 관련 법안을 처리하면서 총기 휴대 규정을 완화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어기고 미 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이 보유한 사법집행 공무원들의 총기 거래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정치인들 유권자 의식 총기소유 지지

                                 추모석 앞에서 희생자에게 바치는 편지를 놓고 있는 한 학생의 모습 (경향DB)

총기 규제를 가로막는 또다른 장애물은 미국 최대 로비단체의 하나인 미국총기협회(NRA)다. NRA는 선거 때마다 총기 규제 반대 로비에 사활을 걸어왔다. 미국의 선거 및 정치자금을 파헤쳐온 웹 사이트인 오픈시크릿(OpenSecret.org)에 따르면 NRA의 정치행동위원회는 선거 때마다 엄청난 로비자금을 투입했다. 1999년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 총기참사 발생 1년 후인 2000년 선거에서 NRA는 로비 자금으로 1680만달러를 썼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94년 시행한 ‘1994 범죄법안’이 만료된 해에 치러진 2004년 선거에서는 1280만 달러를 로비 자금으로 투입했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참사 1년 뒤인 2008년 선거에서 지출한 로비자금은 1560만 달러로 급증했다.

그러나 실제로 NRA의 로비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기규제 옹호단체인 ‘총기폭력예방을 위한 브래디센터’에 따르면 2008년 선거에서 브리디센터가 후원한 상원의원 10명이 NRA가 후원한 후보에게 승리했다. 이에 대해 브래디센터는 2009년 발행한 보고서 ‘총기와 2008년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총기 규제 법안을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 많은 NRA 지지 후보의 패배는 정치인이 총기 로비를 뚫고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의 매카시 의원이 추진하려는 대규모 탄창 사용 금지 규정이 현실화할지는 알 수 없다. “탄창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총기를 소유하느냐가 문제”라는 총기 소유 옹호론자의 반발에 직면해 좌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애리조나 총기 참사에 현역 하원의원 가브리엘 기퍼즈가 연루돼 있다는 점에서 미 의회가 정치적 계산에서 벗어나 빌 클린턴 행정부가 그랬듯이 한시적으로 이 같은 법안을 도입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실제로 최근 미 의회가 총기 규제 관련 법을 통과시킨 사례가 있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참사 이후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총기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