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화랑유원지, 진도 팽목항, 서울 광화문광장, 목포신항…. 세월호 참사의 기억들이 새겨진 장소들이다. 팽목항은 2014년 4월16일 참사 이후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온 차가운 아이들이 부모와 처음 만난 곳이다.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시의 화랑유원지는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가 세워진 장소다. 참사 13일 뒤 설치돼 2018년 4월16일 문을 닫을 때까지 73만8446명이 찾았다. 광화문광장이 세월호 기억공간이 된 것은 참사 3개월 뒤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참사 책임을 회피하려 하자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천막을 친 것이다. 세월호 천막은 2019년 3월 철거된 뒤 목조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으로 재탄생했다. 목포신항에는 2017년 3월23일 인양된 세월호 선체가 거치돼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기억공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팽목항은 국제적 항만도시로 변신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이름도 진도항으로 바뀌었다. 희망의 등대, 하늘나라 우체통, 기억관 컨테이너, 기억의 벽 등 세월호의 흔적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된 자리에는 2024년까지 가칭 ‘4·16생명안전공원’이 조성된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도 지난해 8월 정부 결정에 따라 1.3㎞ 떨어진 목포 고하도로 옮겨진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기억공간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했다. 하나 남아 있던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기억공간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고 박원순 시장 시절 설치된 기억공간이 당초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는 게 철거의 이유다. 그렇다 해도 서울시의 기억공간 철거 강행은 유감스럽다. 광화문광장은 세월호 기억의 중요한 공간이다. 유족들이 뙤약볕과 한기 속에 숱한 아픔과 모욕을 견뎌가며 세월호 특조위 구성 등을 일궈낸 곳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기억이다. 억지로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게 아니다. 서울시의 강제철거 통보에 유가족들이 세월호 흔적 지우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강제철거 통보 방침을 접고 유족들과 기억공간 처리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 광장은 소통과 공감의 장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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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 이 말을 인용했다. 제주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책과 종이·먹을 보내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권력의 끈이 떨어지면 외면하는 게 세태다. 그런데도 제자는 그러지 않았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송백지조'라는 말이 있듯이, 소나무와 잣나무는 흔히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기상을 상징한다. 바위를 뚫고 자라는 소나무를 보노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고, 소나무와 함께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의 삶과 뗄 수 없다는 뜻이다. 소나무는 한국의 대표 나무다. 국가산림자원조사에 따르면 소나무 숲은 전체 산림 면적의 21.2%를 차지한다. 지름 6㎝ 이상 나무 70억그루 중 약 21억그루가 소나무로 추정될 만큼 많다. 소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나무는 목재로, 송진은 연료로, 솔방울은 술 재료로 활용된다. 국내 서식 품종은 금강송, 반송, 곰솔(해송), 백송, 리기다소나무, 금송 등이 있다. 백송, 리기다, 금송은 각각 중국, 북미, 일본에서 들어왔다.

 

국내에 서식하는 소나무는 크게 4가지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규명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이 6년 동안 전국 60곳에 분포하는 소나무의 DNA를 분석한 결과다.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경북 울진의 금강송과 다르고, 제주의 소나무는 육지 소나무와 완전히 다르다. 반면 금강송과 충남 태안의 안면송은 비슷하다.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소나무 유전자 분석은 2014년 숭례문 복원공사용 소나무가 러시아산이라는 논란이 있었을 때 국내산임을 밝혀내는 데 활용된 적이 있다. 하지만 수종 전체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분석은 소나무가 처음이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지구온난화로부터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흔히 한국인의 기질을 소나무의 기상에 빗대곤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깊이 뿌리내리며 버텨온 소나무의 유전자가 삶 속에 녹아든 덕분이 아닐까. 소나무와의 공생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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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옛 소련이 쏜 인류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미·소 간 우주 경쟁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옛 소련은 1961년 4월12일 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보내면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1969년 7월20일 인류 첫 달 착륙과 인류 첫 우주인 탄생 20주년에 맞춘 유인 우주왕복선 발사 성공으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민간인 우주관광은 다시 러시아가 먼저 시작했다. 첫 자비 우주여행객은 미국 사업가 데니스 티토였다. 그는 2001년 4월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약 8일간 머물다 귀환했다. 비용은 2000만달러였다. 이후 2009년 9월까지 민간인 6명이 더 소유스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가 ISS 우주관광 프로그램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이에 자극받았을까. 2011년 우주왕복선 계획까지 접었던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9년 6월 ISS를 민간에 개방하는 우주관광을 선언한다. 

하지만 NASA가 손을 놓은 사이 우주로 눈을 돌린 이들이 있었다.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리처드 브랜슨 같은 억만장자들이었다. 이들은 2000년 블루 오리진, 2002년 스페이스X, 2004년 버진 갤럭틱이라는 우주 탐사기업을 차례로 세웠다. 어릴 때부터 키운 우주에 대한 동경이 원동력인 것은 같았지만, 그 지향점은 달랐다. 베이조스와 브랜슨은 무중력 상태 체험에 주안점을 뒀다. 머스크는 보다 원대해서 우주 궤도비행과 화성 이주까지 꿈꾸고 있다.

 

‘누가 첫 민간 우주여행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이들 간 경쟁의 승자는 브랜슨이었다. 브랜슨은 지난 11일 버진 갤럭틱이 만든 우주비행선을 타고 지상 약 89㎞까지 갔다가 귀환했다. 출발은 가장 늦었지만 ‘괴짜 억만장자’답게 열정으로 역전승을 일궜다. 하지만 이들의 우주 경쟁은 곧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베이조스는 오는 20일, 머스크의 스페이스X도 오는 9월 첫 우주관광에 나선다. 우주관광은 아직 부자들의 놀음이다. 여행 경비 25만달러는 보통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우주를 향한 꿈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거부들 간의 경쟁이 우주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도전과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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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 적이 있는가. 버스나 지하철에 지친 몸을 맡긴 채 해 질 녘 서쪽 하늘을 발갛게 물들인 노을을 보노라면 문득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낭만이 없어서가 아니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구조 탓이다. ‘천만 도시’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에는 다리가 28개가 놓여 있다. 철교 4개와 인도가 아예 없는 청담대교를 제외하면 23개 다리는 이론상으로 걸어서 건널 수는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잠수교는 특별하다.

10번째 한강 다리로 만들어진 잠수교는 가장 짧지만 795m나 된다. 이름 그대로 홍수 때면 물에 잠긴다. 이 때문에 홍수철 방송사 카메라가 찾는 단골장소가 됐다. 한강 수위를 재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잠수교는 강남 개발의 산물이기도 하다. 1976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반포로 이전하면서 건설됐다. 유사시 군 장비의 신속한 도하와 홍수 시 유속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1982년 그 위에 반포대교가 세워지면서 자동차 교량으로서 역할은 사실상 끝났다. 잠수교는 1985년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에 나온 동명 노래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소절 끝마다 반복되는 ‘이상하다 그치’ ‘정말 이상하다’ 등의 여성 멘트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했다.

 

반포대교 건설 후 잠수교는 두 차례 대대적으로 개조됐다. 첫번째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다. 건설 당시 선박 통행을 위해 다리 일부를 들어올릴 수 있도록 한 승개시설 장치를 없애고 중간 부분의 상판을 높인 아치형으로 바꿨다. 유람선이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는 2008년 이뤄졌다. 4차로 중 2개 차선을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로 만들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잠수교가 한강 다리 중 가장 시민친화적인 다리로 변신한 계기가 됐다.

 

서울시가 잠수교를 차 없는 보행중심공간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올해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잠수교가 차 없는 다리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잠수교의 세번째 변신이 성공해 서울의 명물 다리가 되도록 지혜를 모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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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석유 대체 자원으로 주목받은 화석연료가 오일샌드다. 말 그대로 흙 속에 포함된 석유다. 지하의 원유가 지표면까지 이동하면서 수분이 사라져 모래·점토와 함께 굳은 것이다. 액체인 석유에 비해 경제성이 낮아 방치돼오다 2000년대 유가가 치솟고 정제 기술도 발달하면서 활발히 개발돼왔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2위 매장국인 캐나다가 가장 적극적이다. 캐나다는 원유의 중동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과 손잡고 2008년부터 거대한 송유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키스톤 송유관’ 사업이다. 캐나다 앨버타주 하디스티와 미 텍사스주까지 송유관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미 3단계까지 건설이 끝났다. 

문제는 ‘키스톤XL 송유관’으로 불리는 4단계에서 벌어졌다. 하디스티에서 네브래스카주 스틸시티까지 1897㎞를 잇는 4단계 송유관은 2008년 6월 승인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반대에 부딪혔다. 송유관은 미 대평원의 북부를 지난다. 그 아래엔 오갈랄라 대수층이 있다. 이곳에 사는 원주민과 농부, 목장주 등 수백만명에게는 생명수나 다름없다. 그런데 오일샌드는 원유를 정제할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물을 필요로 한다.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고 수질오염 위험이 높다는 의미다. 유출 사고라도 나면 엄청난 환경재앙이 불가피하다. 그렇게 시작된 이 송유관 반대운동은 세계 기후운동의 상징이자 목표가 됐다. 전 세계 환경운동가와 시민들이 연대의 손길을 보냈다. 버락 오바마의 건설 추진 중단, 도널드 트럼프의 재개 명령, 조 바이든의 중단 결정까지 미 대통령에게도 민감한 사안이었다. 13년간의 긴 갈등과 투쟁이 지난 9일 막을 내렸다. 사업자인 캐나다 TC에너지가 프로젝트의 영구 종료를 선언한 것이다.

 

키스톤XL 송유관 사업 중단은 환경운동사에서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더 많은 승리를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라인3’ 등 여전히 많은 송유관이 주민들의 반대 속에 건설되고 있다. 2016년 12월 극적으로 쟁취한 다코타액세스송유관(DAPL) 건설 중단도 법적 소송 중이다. 기후변화와의 전쟁을 선언한 바이든의 결단이 결정적이었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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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기후변화에 있어 의미 있는 해였다. 그해 12월 지구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협약이 체결됐다. 앞서 6월 네덜란드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처음 명시한 ‘위르헨다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말뿐인 국제사회의 감축 노력에 경종을 울린,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그 후 아일랜드와 프랑스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잇따랐다.

지난 26일은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날이 될 법하다. 이날 네덜란드 법원은 자국의 석유기업 로열더치셸에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까지 감축하라고 판결했다. 개별 기업의 탄소배출량 목표에 법원이 개입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기후변화 대응 책임이 정부만이 아닌 기업에도 있음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면 같은 날 스웨덴의 볼보자동차에서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자국에 있는 한 공장이 볼보차 브랜드 자동차 제조시설 중 처음으로 ‘기후중립’을 달성했다는 소식이었다. 볼보차는 공장에서 전기·난방으로 인해 대기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순증가가 없으면 완전한 기후중립을 실현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볼보차는 2025년까지 기후중립 제조 네트워크를 완성하고 전체 라인업도 전기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최고 가치를 안전에서 친환경으로 전환한 볼보의 성공적인 변신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에너지기업 엑손모빌에서는 이날 기후변화에 관심 있는 인사 2명이 12명으로 구성된 이사진에 처음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석유·가스 사업 비중을 줄이고 청정에너지 비중을 늘릴 것을 요구해온 두 사람의 목소리가 이사회에서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7년 ‘석유 공룡’들이 포함된 세계 100대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71%를 차지한다는 조사가 있었다. 엑손모빌의 탄소배출 비중은 1.98%로 5위이며, 로열더치셸은 1.67%로 9위다. 로열더치셸과 볼보의 사례는 탄소중립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과제에 직면한 글로벌 기업들의 두 갈래 길을 보여준다. 하지만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탈탄소에 앞장서는 길이다. 그 노력 여하에 기업의 미래와 인류의 탄소중립 달성 시기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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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미·소 간 냉전 종식이 가져온 선물이 있다. 북극항로(polar route)의 개척이다. 냉전 시절 서울에서 미국 동부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는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하는 우회 항로였다. 옛 소련이 자국 영공 통과를 금지해서다. 1998년 7월7일 뉴욕발 여객기가 논스톱으로 북극 극지방과 러시아 상공을 거쳐 홍콩에 착륙한 이후 본격적인 북극항로 시대가 열렸다.

북극항로는 항공사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비행시간 단축과 유류비 절감 효과를 톡톡히 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공 승무원에겐 공포스러운 길이다. 우주방사선 피폭 탓이다. 우주방사선은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각종 입자와 방사선을 말한다. 피폭선량은 고도가 높을수록, 노출시간이 길수록 증가한다. 10㎞ 이상 상공에서 장시간 비행하는 승무원은 피폭될 확률이 높다. 특히 북극은 지구에서 우주방사선이 가장 강하다. 적도보다도 2~5배가량 높다. 지구 자기장이 방사선을 극쪽으로 빨아당기기 때문이다.

 

1년에 인간이 자연계로부터 받는 피폭선량은 평균 2.4m㏜(밀리시버트)다. ㏜는 방사선의 인체 위험도를 고려한 유효선량 단위다. 한국에서 미 동부로 비행하면 0.1m㏜ 정도 피폭된다. 어쩌다 여행하는 일반인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지만 항공 승무원은 얘기가 다르다. 이들의 피폭선량은 원전 종사자보다도 최대 10배 높다. 일반인보다 유방암, 급성골수백혈병, 전립선암 등에 걸릴 확률도 높다. 현재 항공 승무원의 피폭 방사선량 안전기준은 ‘연간 50m㏜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5년간 100m㏜ 이하’다.

 

북극항로를 자주 다니다 백혈병으로 숨진 대한항공 여성 승무원 A씨가 신청한 산재가 지난 17일 받아들여졌다.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다. A씨의 피폭선량이 현 규정보다 낮은데도 당국이 산재로 인정한 것은 획기적이다. 2명의 승무원이 같은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24일부터 정부는 항공 승무원의 피폭 방사선량 안전기준을 서구와 같은 연간 6m㏜로 강화한다. 임신한 여성 승무원은 2m㏜에서 1m㏜로 낮아진다. 만시지탄이지만, 항공 승무원의 안전을 우선하는 전기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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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테러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애당초 시한이 없는 전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조지 W 부시는 “(미국은) 지구상의 어느 테러조직이라도 찾아내 활동을 저지하며 격퇴시킬 때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아프가니스탄이 첫 공격 목표가 된 것은 피할 수 없었다. 9·11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해 10월7일 미국의 공습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이 20년이 되도록 끝나지 않고 있다.

아프간은 동서문명의 교차로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제국의 오랜 침탈 대상이었다. 기원전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에서부터 이슬람과 몽골족, 인도 등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아프간은 침략자의 무덤이 됐다. 영국은 20세기 초까지 세 차례 침공했지만 실패했다. 소련도 1979년에 침공했지만 1989년 퇴각했다. 소련을 퇴각시킨 것은 반소 무장 게릴라조직인 무자헤딘이었다. 미·소 냉전 중 로널드 레이건이 무자헤딘을 ‘자유의 투사’로 부르며 지원한 것도 주효했다.

 

하지만 아프간은 부시 이후 미 대통령들에게도 무덤이었다.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도 부시가 파놓은 ‘아프간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미국은 전쟁 초 이슬람 무장 정치조직인 탈레반 정권을 넘어뜨렸지만, 탈레반은 지금껏 소멸되지 않고 미국을 끝까지 괴롭히고 있다. 수차례 발을 빼려고 휴전협상을 벌였지만 번번이 깨졌다. 소련의 발목을 잡은 것이 무자헤딘이라면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것은 탈레반인 셈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9·11 20주년인 9월11일까지 아프간 주둔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다. 바이든의 철군 약속이 지켜진다면 아프간 전쟁은 20년 만에 끝난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이 해외에서 벌인 전쟁 중 가장 길다. 쏟아부은 돈만 전비를 포함해 2조달러가 넘는다. 사망한 미군만도 약 2400명에 이른다. 오바마와 트럼프도 임기 중 철군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바이든이 철군을 실행한다면 이는 그의 치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동시에 ‘미국이 돌아왔다’는 그의 국제사회를 향한 약속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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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에서 여왕은 6명뿐이다. 메리 1세(1516~1558)가 처음이고, 엘리자베스 1세·메리 2세·앤·빅토리아 여왕을 거쳐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가 1952년부터 왕실을 이끌고 있다. 여왕 남편의 공식 칭호는 ‘The Prince Consort’다. 첫 여왕 메리 1세의 남편인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끈 국왕으로 더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여왕의 남편으로 부를 수 있는 첫 인물은 앨버트공이다. 대영제국 최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다. 그는 미혼으로 즉위한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한 뒤 죽기 전까지 21년간 보필했다. 하지만 결혼 17년이 지나서야 여왕의 남편 칭호를 받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세계 최장수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이 100세 생일을 62일 앞두고 지난 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필립공이야말로 진정한 여왕의 남편이라 부를 만하다. 그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한 날부터 2017년 8월 왕실 업무에서 은퇴할 때까지 여왕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부부의 연을 맺은 73년5개월 중 69년10개월을 함께한 것이다. 필립공은 해군 최고사령관과 육해공군 원수직도 수행했다. 여느 왕실처럼 자식들이 이혼하고 구설에 휘말리는 등 풍파를 겪었지만 부부간에 큰 불화도 없었다.

 

“공작이란 작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을 거네… 공주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 그보다 더한 애국은 없을 걸세.” 엘리자베스 2세 일대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조지 6세 국왕이 사위 필립공에게 하는 말이다. 필립공은 장인과의 약속대로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을 임무로 살았다. 그는 여왕의 남편이 되기 위해 경력 등 많은 것을 포기했다. 숙명이었다. 성(姓)을 영국식으로 바꾼 것은 그리스와 덴마크 왕족 출신인 그에게도 한이 된 듯하다. 오죽하면 “이 나라에서 자식들에게 자기의 성을 물려주지 못하는 남자는 내가 유일할 것”이라고 했을까.

 

그는 ‘외조의 왕’으로 불린다. 영국 왕실사에 가장 긴 외조 기간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외조가 없었다면 세계 최장수 여왕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하는 여성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외조야말로 남성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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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삶에서 아파트와 택배는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전국 총 주택 가운데 아파트의 비율은 62%다. 지난해 택배 물량은 34억개로, 1인당 65개꼴이다. 전년에 비해 21%나 증가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이 가장 큰 원인이다. 갈수록 아파트도, 택배 물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결합해 새로운 사회 문제를 낳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아파트 택배 대란이다.

2018년 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진 택배 대란이 최근 재현됐다. 5000가구 규모의 서울 아파트 단지가 이달 초 택배 차량의 출입을 금지했다. 손수레로 각 가구까지 배송하거나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라고 택배기사들에게 통보한 것이다. 택배노조는 이에 반발해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만 배송하고 가구 배송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과 판박이다. 3년이 지나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택배 대란이 일어나는 아파트의 공통점은 ‘차 없는 아파트’다. 입주민으로는 안전과 쾌적함을 보장받고, 아파트값 상승 혜택까지 누릴 수 있어 일석삼조다. 문제는 지하주차장 입구 높이다. 택배 차량의 높이(2.5~2.7m)에 비해 낮은 2.3m다. 입주민의 요구대로 지하주차장에 대고 싶어도 댈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택배 대란 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1월 2.7m 이상으로 관련법을 개정했다. 이 법이 적용되기 전에 지어진 아파트가 문제인 셈이다.

 

택배 대란의 피해자는 입주민과 택배기사 모두다. 입주민들은 당장 택배물을 직접 수거해야 하는 등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택배기사들도 입주민 요구대로 한다면 손수레를 끌고 배달하거나 저상차량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러나 손수레를 쓸 경우 배송시간이 증가하고, 저상차량 교체 시 비용 증가뿐 아니라 몸을 숙인 채 작업을 해야 해 신체적 부담도 커진다. 과로사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역행하는 일이다. 택배기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택배 없이 살 수 없다면 슬기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상생 정신이 답이 될 수 있다.


Posted by em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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