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나 존재할 뿐 일상생활 속에서 결코 볼 수 없을 것 같은 거액이 있다. 1경(京)원이 그렇다. 1조원보다 1만배나 큰 액수다. 0의 개수만 16개나 된다. 1조원이야 세계적인 부자의 기준(억만장자)이니 알 수 있지만 1경원은 도무지 와닿지 않는다. 월급쟁이가 평생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이 많아야 수십억원이니 당연하다. 시야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올해 예산 608조원, 지난해 가계부채 1806조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국제통화기금 기준) 1조8239억달러(약 2163조8750억원)도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국내 통계로는 2020년 말 기준 1경7700조원인 국민순자산에서 겨우 만날 수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접해본 가장 큰 액수는 535조달러(약 63경4670조원)다. 2017년 기후과학자들이 2100년까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 1조t을 포집·저장하는 데 들 것으로 추산한 비용이다. 그해 세계은행이 추산한 전 세계 국가의 GDP 합계인 80조9348억달러(약 9경6130조원)의 6배가 훨씬 넘는 액수다.

상상 속의 1경원이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 14일 발표된 LG에너지솔루션 기업공개(IPO) 결과 국내외 기관투자가의 최종 수요예측 경쟁률은 2023 대 1이었다. 이는 기관투자가들이 이 회사 주식청약을 위해 쏟아부을 의향이 있는 돈이 공모금액 10조~12조원대의 2023배에 이른다는 의미다. 전체 주문 규모는 1경5203조원이다. 경 단위 주문 규모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돈이면 지난해 6월 시가총액 기준으로 2692조원인 코스피·코스닥·코스넥 등록 기업 모두를 사고도 남는다.

물론 현실적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실제로 납부할 청약증거금은 이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GDP의 6.5배나 되는 돈이 몰려든 것은 놀랍다. 단군 이래 최대 IPO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맞게 이 회사 주식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그만큼 많은 현실도 보여준다. 일반 투자자의 증권계좌에는 132조원이라는 돈이 대기 중이라고 한다. 한 달 새 3조원 이상이 늘었다고 한다. 상상 속의 숫자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다만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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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 메시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의 정신을 빌려온 것이다. ‘가해자의 진실 고백-용서-화해’ 과정은 남아공 진실화해위가 추진한 ‘보복 없는 과거사 청산’의 전형이다. 40년이 지나도록 규명되지 않는 5·18 발포 명령자와 계엄군이 자행한 숨겨진 민간인 학살 등을 찾기 위해서는 처벌 그 자체보다 고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1994년 오랜 투옥과 투쟁 끝에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청산과 사회통합을 위한 첫 작업으로 진실화해위를 만든다. 이 위원회는 과거사 청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진해 사실을 털어놓는 가해자에게는 처벌 대신 사면 혜택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단죄를 뛰어넘은 용서를 통한 화해 추구는 ‘나치 전범 단죄=정의 실현’이라는 뉘른베르크 재판의 정신과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1996~2003년 활동한 진실화해위를 통해 사면받은 이는 7000여명의 신청자 중 1500명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남아공 정부는 진실화해위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진실화해위는 과거 청산과 국민통합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미완으로 남았다. 남아공 모델은 이후 여러 나라로 퍼졌다. 2005년 출범한 우리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이 모델을 차용했다. 일제강점기와 권위주의 통치기에 일어난 인권침해 등 과거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출범 후 5년여간 활동했던 1기에 이어 2기 위원회가 지난해 12월부터 활동 중이다.

남아공 진실화해위를 이끌었던 데즈먼드 투투 명예대주교가 26일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투투는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을 진실화해위에 투영시켰다. 처벌보다는 치유와 조화, 화해로 불균형을 시정하고 깨진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처벌과 보복에 갇혀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화해와 통합을 향한 투투의 긴 여정은 끝났다. 나머지 진실규명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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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린다. 200년 전인 1823년 12월 제임스 먼로 미 대통령이 천명한 ‘먼로 독트린’이 그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유럽 식민주의자로부터 미주 대륙을 보호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지만 미국의 중남미 개입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됐다. 냉전 시절 좌파 정부가 잇따라 등장하자 미국은 그때마다 쿠데타로 정권교체에 나섰다. 한 분석에 따르면 1945년 이후 미국이 시도한 정권교체 횟수는 68번이나 된다. 코스타리카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을 등에 업은 독재자를 경험했다고 한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미 주도의 신자유주의 입김이 중남미를 지배했다.

중남미 정치 지형이 바뀌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말이다. 1999년 베네수엘라, 2003년 브라질, 2006년 볼리비아에 좌파 정부가 잇따라 들어섰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다 시우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좌파 대통령 3총사’로 불린다. 반미와 포퓰리즘, 권위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남미 12개국 가운데 10개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중남미에서 온건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이 현상을 ‘핑크 타이드’(분홍 물결)라고 한다. 이름에 분홍이 들어간 것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적색보다는 이들 정권의 색채가 옅기 때문이다. 견고하던 핑크 타이드는 2010년대 중반부터 힘을 잃어갔다. 원자재 가격 폭락과 재정 파탄 등으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에 우파 정권이 등장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그 틈을 파고든 중국·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로 우파 물결은 퇴조하면서 2차 핑크 타이드 시대가 열렸다. 2018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분홍 물결이 다시 중남미를 휩쓸고 있다. 2019년 아르헨티나, 2020년 볼리비아를 덮쳤다. 올해에는 페루, 온두라스에 이어 지난 19일 칠레로까지 번졌다. 내년에는 콜롬비아, 브라질로 이어질 기색이다. 중남미에서 2차 핑크 타이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러시아 영향력 아래 놓여 있지만 역대 최연소 대통령의 등장(칠레), ‘좌파의 아이콘’ 룰라(브라질)의 복귀 가능성이 2차 핑크 타이드를 공고히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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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기지 국가’다. 전 세계 국가가 해외에 설치한 군사기지의 약 95%가 미군 기지다. 미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16년 9월 현재 미군의 해외 기지는 45개국 514곳에 이른다. 2015년 <기지 국가(Base Nation)>를 쓴 데이비드 바인은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70여개국 800곳 정도로 추산했다. 지금은 81개국 등지 약 750곳으로 추정한다.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는 미국의 해외 기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반면 중국은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 한 곳에 해외 기지를 두고 있다. 그것도 2017년 8월부터 운용 중이다. 프랑스와 러시아, 영국이 10~20곳을 운용 중인 것에 비교해도 적다. 지부티에 1호 기지를 둔 이유는 이곳이 수에즈 운하로 가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도 같은 이유로 이곳에 기지를 두고 있다. 당시 서방에서는 지부티 기지가 군사적으로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그게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이 서아프리카 적도기니에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5일 보도했다. 이 기지가 완성되면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 동서에 기지를 하나씩 확보하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대서양 건너편에 중국의 군사기지를 두는 껄끄러운 상황을 맞는 것이다.

중국 해외 기지가 아프리카에 쏠리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이 냉전 이후 미·중 경쟁의 격전장이 되고 있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영향력을 키웠다. 돈을 뀌어주고 광산개발 등 이익에 개입하는 ‘부채외교’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중국은 아프리카에 미국보다 3개 더 많은 52개 공관을 두고 있다. 미국은 2007년 10월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상황만 전담해 대응하는 아프리카사령부를 설치했다.

중국의 해외 기지 건설 야망은 끝이 없다. 아프리카의 세 번째 기지 후보국으로는 탄자니아가 거론된다. 파키스탄, 캄보디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유력 후보지다. 하와이섬과 1800마일 떨어진 태평양의 키리바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도처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는 상황이 우려된다. 양국은 냉전 시절 미·소가 벌였던 대결의 결말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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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조7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하루 넘기고 3일 국회에서 처리됐다. 법정시한 내 처리의 발목을 잡은 예산안 가운데 하나가 72억원의 경항공모함(경항모) 사업이었다. 당초 지난달 16일 국회 국방위에서 5억원으로 대폭 삭감돼 사업 착수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막판에 원상회복됐다. 경항모 도입은 해군의 숙원이다. 1990년대 중반 처음 제기된 뒤 2019년 국방중기계획에서 공식화됐다. 2033년까지 대략 길이 265m·폭 43m, 3만t급 항모를 건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항모는 ‘움직이는 영토’로 불리는 항공모함 중 규모가 가장 작다. 항모는 크기(t수)에 따라 대형항모(9만~10만t), 중형항모(4만~7만t), 경항모(1만~3만t)로 분류한다. 대형항모는 천문학적인 비용 탓에 미국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최신 항모인 제럴드 포드(10만t) 건조에는 133억달러나 들었다. 대형항모 11척을 운용 중인 미국은 운영비로만 1년에 약 212억달러(약 25조원)를 투입한다. 한국의 내년 국방예산(약 54조6000억원)의 절반에 가깝다. 축구장 3배 크기의 갑판에 80대나 되는 전투기를 실은 채 호위함들을 이끌고 오대양을 누비는 항모전단을 보면 누구나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힘을 뒷받침하는 핵심 무기체계이다.

최근 들어 여러 나라가 항모 건조에 뛰어들고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 뿐만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해양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제럴드 포드급 항모 9척을 추가 건조할 계획이다. 6만~7만t급 중형항모 2척을 보유 중인 중국은 2030년까지 4척, 2040년까지 10척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도 이미 경항모 2척을 보유 중이다.

경항모 사업을 놓고 여야뿐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찬반 여론이 엇갈린다. 반대론자들은 경항모 도입이 중국이나 북한과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일 이유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해군이 추산하는 건조 비용은 약 2조원이다. 하지만 통상 사업비는 처음 예상보다 늘어나기 마련이다. 예산안 통과는 본격적인 공론화의 시작이다. 미래 안보전략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격렬하게 토론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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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중 박근혜만큼 사과로 물의를 일으킨 이는 없다. 무엇보다 ‘대리(대독)’ 사과로 유명했다. 2013년 취임 후 김용준 총리 후보자 등 장차관급 6명이 도덕적 결격 사유로 무더기 낙마했다. 그때 사과문은 허태열 비서실장 명의였고, 김행 대변인이 대신 읽었다. 그해 5월 미국 방문 중 일어난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태’ 때는 이남기 홍보수석이 대독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삼성서울병원장이 먼저 대리 사과를 했다. 2016년 말 최순실 의혹이 터졌을 때는 ‘녹화’ 사과로 분노를 자아냈다.

정치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사과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할 때가 많다. 사과하는 모양새만 드러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속성 탓이다. 사과의 생명은 타이밍과 진정성이다.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가 크다.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대상이 명확하고,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풍을 맞기 일쑤다. 대리·대독·녹화 사과로 일관한 박 전 대통령에게 시민들이 진정성을 느낄 리 만무했다.

‘학살자’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씨가 지난 27일 남편의 발인식을 하며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씨 사후 가족의 입에서 나온 첫 사과였지만 시민들의 염장만 질렀다. '재임 중'이라는 말로 사과 대상에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이다. 시민들이 원한 것은 5·18 유혈진압 책임 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 하지만 이씨는 기대를 저버렸다. 남편의 5·18 발포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전씨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칭송한 이씨이니 무엇을 기대하랴.

인간은 대개 죽기 직전에 이르면 자신의 허물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생전에 하지 못했다면 사후에라도 유언이나 유서를 남기기 마련이다. 지난달 26일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5·18 피해자에게 사죄한다는 뜻의 유언을 아들을 통해 전했다. 사후의 사과가 최선은 아니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사과에서 출발한다. 전씨는 유언조차 남기지 않았고, 그 가족은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을 우롱했다. 시민의 용서는 필요 없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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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는 무척추동물 중 가장 지능이 높다. 말 잘 듣는 애완견 수준이라고 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나의 문어 선생님>은 문어가 인간과 얼마나 잘 교감하는지를 보여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문어 파울이 점쟁이로 유명해졌다. 우승팀을 포함해 8번의 경기 결과를 모두 맞힌 것이다. 문어는 음식으로도 인기다. 살아 있는 문어를 데친 문어숙회는 경북 북부지역에서 제사상에 빠져서는 안 될 정도로 대접받는다. 

영국 정부가 최근 문어·오징어 같은 두족류, 바닷가재·게 같은 십각류에도 동물복지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어류도 고통을 느끼니 살아 있는 상태로 요리하지 말라는 말이다.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 중 하나가 고통을 느끼고, 고통을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동물에게 부당하게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동물복지의 출발점이다. 덕분에 인간을 위해 공장식 축산업으로 희생되는 동물의 고통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물고기도 통증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이미 증명됐다.

식용 어류에도 동물복지를 적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2008년 양식 어류에 대한 운송, 도살, 기절, 살처분에 대한 금지 권고안을 마련했다. 스위스는 영국에 앞서 이미 2018년 3월부터 바닷가재를 끓는 물에 넣어 요리하는 것을 전면금지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강원 화천군이 개최하는 산천어축제는 인간에게나 축제일 뿐 산천어에게는 집단학살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래도 해마다 성황을 이룬다.

1991년 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어류도 보호 대상이다. 하지만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동물로 보지 않는다’는 시행령 예외 조항으로 도축이 합법화되고 있다. 어류 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한 동물복지문제연구소가 22일 공개한 인식조사를 보면 10명 중 9명(89.2%)은 어류를 도살할 때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65.4%는 식용 어류도 동물보호법 적용 대상이 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식용 어류의 복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인간만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면 세상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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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천군 소라면 쌍봉리 끝자락에 있는/ 남해화학 보수공장 현장에 가면, 지금도/ 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 유류탱크 밑 그늘에 누워 선잠 든 사람들 있으리….” 송경동 시인의 시 ‘꿀잠’ 첫 부분이다. 시인이 젊은 시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고단한 현실을 담은 것이다. 잔업과 철야로 부족한 잠을 메우기 위해 점심시간에 선잠을 잘 수밖에 없지만 그들에겐 그야말로 꿀잠이었을 터이다. 노동자에게 꿀잠만큼 달콤한 것은 없다. 그러나 해고노동자들에게 꿀잠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들이 있을 곳은 길바닥이나 천막, 아니면 저 높은 굴뚝이나 철탑, 크레인, 전광판 등이다. 한여름 땡볕에도, 한겨울의 살을 에는 추위에도 한뎃잠을 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투쟁과 해고로 지친 몸을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바람으로 탄생한 것이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이다. 고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를 비롯해 시민 2000여명의 도움으로 2017년 8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문을 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에 시민사회가 연대한 결실이었다. 이 꿀잠은 비정규직 노동자뿐 아니라 해고노동자, 희생자 가족의 보금자리이자 연대의 공간이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고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도 사랑하는 이를 보낸 뒤 상경투쟁을 할 때 이곳에 머물며 힘겨운 투쟁을 이어갈 힘을 얻었다. 설립 후 매년 4000명이 이용한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신적 보루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꿀잠이 재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꿀잠이 터잡은 지역에 지난해 3월 재개발조합 설립 인가가 떨어지면서다.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대책위원회가 영등포구청과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존치 운동을 벌였지만 무위에 그치고 있다. 꿀잠의 공공적 기능을 인정하고 공간 존치를 계획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한 구청과 조합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꿀잠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한 공간이 없어지는 차원을 넘는다.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역사와 그 현장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일이다. 꿀잠이 “투기와 욕망의 폭주기관차”가 돼버린 부동산 재개발에 희생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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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3월13일 새벽(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퀸스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단순 살인사건이었지만 대반전이 일어났다. 2주 뒤 보도된 뉴욕타임스의 ‘살인을 목격한 38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기사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범행을 목격했으나 아무도 피해자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 사회가 경악했다. 아무도 신고하지 않은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터네이였다.

두 사람은 1968년 심리를 알아보는 한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을 대기실에 두고 벽에 뚫린 통풍구를 통해 연기를 들여보냈다. 참가자들이 얼마나 빨리 신고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혼자 있는 사람은 2분 안에 신고했지만 참가자가 여러 명일 경우 신고 비율도 낮고 시간도 길었다. 두 사람은 ‘방관자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도 한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제노비스 사건의 경우 흔한 부부싸움일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범죄라면 누군가 신고하겠지 하며 서로 미루는 바람에 일어난 비극이었던 것이다.

제노비스와 판박이인 사건이 지난 13일 밤 미 필라델피아 교외 통근열차 안에서 일어났다. 한 여성이 노숙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열차 안에는 승객들이 있었지만 약 8분간 여성이 공격당하는 동안 아무도 나서지도 않았다. 심지어 일부 승객은 성폭행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어서 경찰이 조사 중이라고 한다.

<버스 44>라는 11분짜리 단편영화가 있다. 중국 시골에서 44번 버스를 모는 여성 운전사가 승객으로 가장한 2인조 강도에게 돈을 뺏기고 성폭행을 당하는데도 승객들이 도와주지 않아 고의로 버스를 추락시켜 전원 사망한다는 내용이다. 운전사는 자신을 도우려 한 남자 한 명만 강제로 하차시켜 목숨을 구해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2001년 중국계 미국인 감독이 제작했다. 방관자에게 보내는 최후의 경고 같다. 방관자는 흔하고 착한 사마리아인은 드문 시대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방관자로 남으려 한다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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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친환경’은 절대선이다. 그래서 친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이 붙으면 무엇이든 각광받는다. 그런데 ‘그린’이 붙어도 부정적 의미를 지니는 말들이 있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이 대표적이다. 친환경과 거리가 먼데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뜻한다. 기업이 제품 생산 중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재활용 같은 일부만을 부각시키는 행위로,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다.

녹색 식민주의(green colonialism)도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선진국이 후진국의 토지나 노동력 등을 착취해 높은 생활기준을 성취하는 것을 이른다. 개발도상국의 식량생산력의 급속한 증대 또는 이를 위한 농업개혁을 일컫는 녹색혁명, 선진국의 독성 살충제와 플라스틱 폐기물 등의 후진국 수출, 탄소배출권 거래 등이 해당된다. 녹색 식민주의가 반드시 국경을 넘는 것만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시설을 지으면서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거나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과거 식민 종주국이 피지배국에 하던 것처럼 국가나 기업이 원주민과 갈등하는 경우다.

이런 녹색 식민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 나왔다. 노르웨이 대법원이 11일 원주민 사미족 목축업자들이 풍력발전 터빈 건설과 관련해 제기한 소송에서 사미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풍력발전사 측은 재생에너지를 활성화하기 위해 사미족이 거주하는 지역에 풍력 터빈 151개를 설치했다. 그런데 사미족은 이 터빈 소리 때문에 순록들이 이동에 지장을 받고 잘 먹지도 못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회사 측은 어렵게 설치한 터빈 151개를 해체해야 할 형편이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아무리 기후위기 대응이 시급해도 원주민 등 소수집단의 피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지금 사미족과 같은 원주민이 87개국에 걸쳐 5000여종이 살고 있다. 이들이 사는 보호지역은 지구 면적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들 원주민은 보존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권리마저 기업이나 환경단체에 의해 축소되기 일쑤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주민들과의 협력과 기후정의,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에 기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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