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친환경’은 절대선이다. 그래서 친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이 붙으면 무엇이든 각광받는다. 그런데 ‘그린’이 붙어도 부정적 의미를 지니는 말들이 있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이 대표적이다. 친환경과 거리가 먼데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뜻한다. 기업이 제품 생산 중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재활용 같은 일부만을 부각시키는 행위로,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다.

녹색 식민주의(green colonialism)도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선진국이 후진국의 토지나 노동력 등을 착취해 높은 생활기준을 성취하는 것을 이른다. 개발도상국의 식량생산력의 급속한 증대 또는 이를 위한 농업개혁을 일컫는 녹색혁명, 선진국의 독성 살충제와 플라스틱 폐기물 등의 후진국 수출, 탄소배출권 거래 등이 해당된다. 녹색 식민주의가 반드시 국경을 넘는 것만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시설을 지으면서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거나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과거 식민 종주국이 피지배국에 하던 것처럼 국가나 기업이 원주민과 갈등하는 경우다.

이런 녹색 식민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 나왔다. 노르웨이 대법원이 11일 원주민 사미족 목축업자들이 풍력발전 터빈 건설과 관련해 제기한 소송에서 사미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풍력발전사 측은 재생에너지를 활성화하기 위해 사미족이 거주하는 지역에 풍력 터빈 151개를 설치했다. 그런데 사미족은 이 터빈 소리 때문에 순록들이 이동에 지장을 받고 잘 먹지도 못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회사 측은 어렵게 설치한 터빈 151개를 해체해야 할 형편이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아무리 기후위기 대응이 시급해도 원주민 등 소수집단의 피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지금 사미족과 같은 원주민이 87개국에 걸쳐 5000여종이 살고 있다. 이들이 사는 보호지역은 지구 면적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들 원주민은 보존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권리마저 기업이나 환경단체에 의해 축소되기 일쑤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주민들과의 협력과 기후정의,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에 기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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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게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 통계다. 쌀값에 직접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농가 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8일 올해 쌀 재배면적(0.8%)과 생산량(9.1%) 모두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늘어난 것도 각각 2001년과 2015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쌀 재배면적은 쌀 생산량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생산량은 표본조사를 통해 파악하는데, 지역별 쌀 생산력이나 재배품종, 기후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 국정감사 때 종종 엉터리 통계 논란이 일었는데, 실제 생산량이 통계와 차이가 나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쌀 작황이 호조라는 통계를 보는 농민의 입술은 바짝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쌀 생산량은 늘었지만 소비량이 줄어들어 쌀값이 하락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수급 불균형에 따른 내년의 쌀 과잉물량은 약 28만t에 이를 것이라 한다. 현재 쌀값은 정부의 가격 안정화 정책 덕에 예년보다 13%가량 높다. 하지만 추곡수매가 본격화하면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는 농민들이 많다. 과잉물량에 대한 신속한 시장 격리를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추곡수매는 지난달 16일 시작됐다. 올 추곡수매에서 정부가 연말까지 사들일 쌀은 공공비축미 34만t·해외공여용 1만t 등 35만t이다.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은 10월5일부터 12월25일까지 10일 간격으로 조사한 산지 쌀값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추곡수매는 그해 쌀 농가의 성패를 좌우한다. 밥상물가를 비롯해 모든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런 때에 유독 쌀 수매가만 오르지 않는다면 농민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혹여 정부의 잘못된 통계가 원인으로 작용해 쌀 수급 조절에 실패하고, 이것이 추곡수매가에 영향을 미친다면 농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전남 보성에서 벼와 밀 농사를 짓던 백남기 농민이 2015년 11월 광화문 시위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원인 중 하나도 쌀 시장 개방에 따른 쌀 수급 조절 실패였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에서 풍년가가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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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연방국가 호주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이다. 1946년 미 주도 글로벌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에 참여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했다. 도널드 트럼프 때는 미국·일본·인도와 함께 안보협의체 ‘쿼드’에 참여했다.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큰 땅덩어리에 비해 군사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의 전 세계 군비 순위는 12위(1.4%)다. 한국(2.3%·10위)보다도 낮다. 역내에 군사적 경쟁국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호주에 군사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이 영국, 호주와 함께 새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면서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첫 핵잠수함 도입은 2040년으로 예상된다. 핵 에너지로 추진되는 핵잠수함은 게임체인저로 통하는 전략무기다. 연료 보급 없이 장시간·장거리 작전 수행이 가능해 후방 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프랑스, 영국만 보유하고 있다.

사실 호주로서는 오커스 가입은 도박에 가깝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3년 전 취임 시 미·중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으로 기울더니 핵잠수함 도입까지 선언했다. 프랑스와의 재래식 잠수함 12대 도입 계약도 파기했다. 재래식 잠수함만 6척을 보유한 호주가 핵잠수함을 도입하는 것은 전략적 이해 때문이다. 관계가 껄끄러운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거리 군사작전 능력 향상을 위해 향후 10년간 270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국방전략과도 부합한다.

하지만 이는 미·중, 호·중 관계를 악화시킬 악재이다. 일각에서는 호주의 핵잠수함 보유가 핵무기 보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핵추진 잠수함 운용에 핵무기 보유까지 더해지면 차원이 달라진다. 최근 대규모 산불을 겪으면서 호주에서는 화석연료를 쓰는 발전소 대신 원전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그런데 원전 기술과 사용후 연료는 핵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 호주 정부는 그럴 일이 없다고 했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세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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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은 흔히 한 나라의 관문으로 불리며, 그 나라의 이미지를 대표하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 수도의 카불 공항은 전쟁으로 점철된 아프간의 슬픈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1960년에 문을 열었지만 1970년대 말 이후 국제공항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옛 소련·아프간 전쟁(1979~1989) 때는 소련의 군기지로 활용됐다. 소련 퇴각 후 탈레반 집권기에는 제한적으로 운용됐다가 2001년 9월 미국의 침공으로 파괴됐다. 2008년 11월 재개장했지만 하루 이용객은 200~300명에 불과했다. 군 공항 역할도 하지만 미군은 북쪽으로 40㎞ 떨어진 바그람 공군기지를 이용한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20년 만에 재장악하면서 카불 공항은 유일한 탈출구가 됐다. 하지만 카불 공항은 한때 탈출하려는 아프간인이 몰려들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아프간인들은 활주로로 난입해 비행기에 올라가거나 트랩이나 탑승교에 매달렸다. 미군은 수송기 이륙을 돕기 위해 헬리콥터를 저공 비행시켜가며 이들을 해산했다. 이륙 비행기 바퀴에 매달려 있다 추락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프간 정부의 패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각인될 것이다.

 

미군은 카불 공항 경비와 자국민·아프간 협력자 등의 대피를 위해 병력 3500명을 배치해두고 있다. 카불 공항에는 지금도 아프간인 수백명이 미군과 탈레반 사이에 끼인 채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생살여탈권은 지난 20년 동안 이곳에서 전쟁을 벌인 미군이 쥐고 있다. 필사의 탈출을 노리는 이들이 공항 밖으로 쫓겨나간다면 그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카불 함락 직전 국외로 탈출한 것이다. 차량 4대와 헬리콥터에 현금을 가득 채운 채 자신이 보호해야 할 시민들보다 먼저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탈레반의 학살을 막기 위해서” 떠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전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함께 부정부패로 아프간을 망친 장본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불 공항은 2014년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래저래 카불 공항은 실패한 국가 아프간을 상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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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다섯 번째로 젊은 나이에 백악관에 입성했다. 취임했을 때 만 47세였다. 8년 뒤인 2017년 퇴임했을 때도 유엔 기준 청년(18~65세)이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전직 대통령’이 됐지만 현직이 부럽지 않았다. 오바마는 부인 미셸 여사와 함께 강연과 책쓰기로 엄청난 부를 모았다. 뛰어난 사교성을 바탕으로 한 록스타 못지않은 인기 덕분이다. 그렇게 모은 돈은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그중 하나가 매사추세츠주 고급 휴양지인 마서드비니어드섬의 1200만달러짜리 맨션이다.

오바마에게 일생일대의 오점이 될 만한 일이 그곳에서 일어났다. 지난 7일 밤(현지시간) 열린 60번째 생일 파티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춤을 추는 그와 하객들의 모습이 공개됐다. 보안상 이유로 파파라치 접근을 막기 위해 드론까지 금지했음에도 일부 파티 참석자들이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 사달이 났다. 특히 그 일대는 ‘실내 마스크 착용’이 강력하게 요청된 상태였다. 파티 사진이 공개되자 방역규칙 위반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성대하게 치르려던 환갑잔치가 악몽이 된 순간이었다.

 

논란은 생일 파티가 열리기 전부터 불거졌다. 할리우드 스타를 포함한 하객 475명, 준비요원 200여명 등 참석자가 700명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베일에 가려진 대규모 파티를 여는 데 대한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공화당 의원을 비롯해 취소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오바마 측은 파티를 축소하기로 했다. 실외 텐트에서 파티를 열되 하객들에게 백신 접종 증명을 제출하게 하고, 마스크를 배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은 빈말이 됐다.

 

오바마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많은 것을 잃었다. 결정적으로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이라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파티 참석자에게 선물 대신 전 세계 청소년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져오게 한 그의 선한 의도도 빛이 바랬다. 최대 실수는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임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의 행동이기에 안타깝다. 정치 지도자에게 타산지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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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브하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준 나라가 코소보였다. 발칸반도의 소국 코소보는 20세기 말 유고연방 해체 과정에서 내전의 아픔을 겪은 뒤 우여곡절 끝에 2008년 독립했다. 리우는 코소보의 첫 올림픽 무대였다. 코소보는 겹경사를 맞았다. 첫 금메달까지 딴 것이다. 코소보의 ‘첫 출전 첫 금메달’ 스토리는 ‘국제평화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과 맞물리면서 큰 인상을 남겼다.

지난달 23일 개막한 일본 도쿄 올림픽에서도 많은 국가들이 첫 금메달에 도전 중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따르면 도쿄 이전까지 하계올림픽 ‘노 금메달’ 국가는 98개국이나 된다. 나우루나 모나코처럼 인구가 수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나 필리핀처럼 1억이 넘는 나라까지 망라돼 있다.

 

1일 현재 두 나라가 ‘노 금메달’에서 벗어났다. 필리핀과 영국령 버뮤다다. 필리핀 첫 금메달은 여자역도에서 나왔다. 올림픽 도전 97년 만의 쾌거였다. 주인공 하이딜린 디아스가 역경을 딛고 이룬 승리였기에 감동이 컸다. 전지훈련차 말레이시아에 머물다 코로나19 봉쇄령 탓에 귀국하지 못했는데, 체육관이 문을 닫을 땐 대나무에 물통을 건 역기로 훈련을 했다고 한다. 버뮤다의 첫 금메달 종목은 여자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이었다. 주인공 플로라 더피는 올림픽 출전 4번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인구 6만5000여명의 버뮤다는 역대 하계올림픽 금메달 국가 중 최소 인구 기록도 세웠다.

 

첫 금메달 못지않은 감동도 이어졌다. 코소보는 5년 전 첫 금메달을 딴 여자유도에서 금메달 2개를 추가했다. 종주국 일본의 금메달 싹쓸이를 저지했을 뿐 아니라 여자유도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 홍콩 남자펜싱 선수는 1997년 중국 반환 후 첫 금메달을 안겼다. 홍콩 사상 두 번째 금메달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전적으로 선수 개인의 땀과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내 자신과 국가를 위해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는 버뮤다 첫 금메달리스트 더피의 말처럼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영광이기도 하다. 올림픽 의의가 ‘승리보다 참가, 성공보다 노력’에 있다지만, 금메달을 향한 도전 역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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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화랑유원지, 진도 팽목항, 서울 광화문광장, 목포신항…. 세월호 참사의 기억들이 새겨진 장소들이다. 팽목항은 2014년 4월16일 참사 이후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온 차가운 아이들이 부모와 처음 만난 곳이다.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시의 화랑유원지는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가 세워진 장소다. 참사 13일 뒤 설치돼 2018년 4월16일 문을 닫을 때까지 73만8446명이 찾았다. 광화문광장이 세월호 기억공간이 된 것은 참사 3개월 뒤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참사 책임을 회피하려 하자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천막을 친 것이다. 세월호 천막은 2019년 3월 철거된 뒤 목조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으로 재탄생했다. 목포신항에는 2017년 3월23일 인양된 세월호 선체가 거치돼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기억공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팽목항은 국제적 항만도시로 변신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이름도 진도항으로 바뀌었다. 희망의 등대, 하늘나라 우체통, 기억관 컨테이너, 기억의 벽 등 세월호의 흔적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된 자리에는 2024년까지 가칭 ‘4·16생명안전공원’이 조성된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도 지난해 8월 정부 결정에 따라 1.3㎞ 떨어진 목포 고하도로 옮겨진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기억공간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했다. 하나 남아 있던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기억공간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고 박원순 시장 시절 설치된 기억공간이 당초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는 게 철거의 이유다. 그렇다 해도 서울시의 기억공간 철거 강행은 유감스럽다. 광화문광장은 세월호 기억의 중요한 공간이다. 유족들이 뙤약볕과 한기 속에 숱한 아픔과 모욕을 견뎌가며 세월호 특조위 구성 등을 일궈낸 곳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기억이다. 억지로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게 아니다. 서울시의 강제철거 통보에 유가족들이 세월호 흔적 지우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강제철거 통보 방침을 접고 유족들과 기억공간 처리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 광장은 소통과 공감의 장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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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 이 말을 인용했다. 제주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책과 종이·먹을 보내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권력의 끈이 떨어지면 외면하는 게 세태다. 그런데도 제자는 그러지 않았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송백지조'라는 말이 있듯이, 소나무와 잣나무는 흔히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기상을 상징한다. 바위를 뚫고 자라는 소나무를 보노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고, 소나무와 함께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의 삶과 뗄 수 없다는 뜻이다. 소나무는 한국의 대표 나무다. 국가산림자원조사에 따르면 소나무 숲은 전체 산림 면적의 21.2%를 차지한다. 지름 6㎝ 이상 나무 70억그루 중 약 21억그루가 소나무로 추정될 만큼 많다. 소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나무는 목재로, 송진은 연료로, 솔방울은 술 재료로 활용된다. 국내 서식 품종은 금강송, 반송, 곰솔(해송), 백송, 리기다소나무, 금송 등이 있다. 백송, 리기다, 금송은 각각 중국, 북미, 일본에서 들어왔다.

 

국내에 서식하는 소나무는 크게 4가지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규명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이 6년 동안 전국 60곳에 분포하는 소나무의 DNA를 분석한 결과다.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경북 울진의 금강송과 다르고, 제주의 소나무는 육지 소나무와 완전히 다르다. 반면 금강송과 충남 태안의 안면송은 비슷하다.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소나무 유전자 분석은 2014년 숭례문 복원공사용 소나무가 러시아산이라는 논란이 있었을 때 국내산임을 밝혀내는 데 활용된 적이 있다. 하지만 수종 전체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분석은 소나무가 처음이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지구온난화로부터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흔히 한국인의 기질을 소나무의 기상에 빗대곤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깊이 뿌리내리며 버텨온 소나무의 유전자가 삶 속에 녹아든 덕분이 아닐까. 소나무와의 공생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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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옛 소련이 쏜 인류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미·소 간 우주 경쟁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옛 소련은 1961년 4월12일 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보내면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1969년 7월20일 인류 첫 달 착륙과 인류 첫 우주인 탄생 20주년에 맞춘 유인 우주왕복선 발사 성공으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민간인 우주관광은 다시 러시아가 먼저 시작했다. 첫 자비 우주여행객은 미국 사업가 데니스 티토였다. 그는 2001년 4월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약 8일간 머물다 귀환했다. 비용은 2000만달러였다. 이후 2009년 9월까지 민간인 6명이 더 소유스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가 ISS 우주관광 프로그램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이에 자극받았을까. 2011년 우주왕복선 계획까지 접었던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9년 6월 ISS를 민간에 개방하는 우주관광을 선언한다. 

하지만 NASA가 손을 놓은 사이 우주로 눈을 돌린 이들이 있었다.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리처드 브랜슨 같은 억만장자들이었다. 이들은 2000년 블루 오리진, 2002년 스페이스X, 2004년 버진 갤럭틱이라는 우주 탐사기업을 차례로 세웠다. 어릴 때부터 키운 우주에 대한 동경이 원동력인 것은 같았지만, 그 지향점은 달랐다. 베이조스와 브랜슨은 무중력 상태 체험에 주안점을 뒀다. 머스크는 보다 원대해서 우주 궤도비행과 화성 이주까지 꿈꾸고 있다.

 

‘누가 첫 민간 우주여행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이들 간 경쟁의 승자는 브랜슨이었다. 브랜슨은 지난 11일 버진 갤럭틱이 만든 우주비행선을 타고 지상 약 89㎞까지 갔다가 귀환했다. 출발은 가장 늦었지만 ‘괴짜 억만장자’답게 열정으로 역전승을 일궜다. 하지만 이들의 우주 경쟁은 곧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베이조스는 오는 20일, 머스크의 스페이스X도 오는 9월 첫 우주관광에 나선다. 우주관광은 아직 부자들의 놀음이다. 여행 경비 25만달러는 보통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우주를 향한 꿈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거부들 간의 경쟁이 우주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도전과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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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 적이 있는가. 버스나 지하철에 지친 몸을 맡긴 채 해 질 녘 서쪽 하늘을 발갛게 물들인 노을을 보노라면 문득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낭만이 없어서가 아니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구조 탓이다. ‘천만 도시’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에는 다리가 28개가 놓여 있다. 철교 4개와 인도가 아예 없는 청담대교를 제외하면 23개 다리는 이론상으로 걸어서 건널 수는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잠수교는 특별하다.

10번째 한강 다리로 만들어진 잠수교는 가장 짧지만 795m나 된다. 이름 그대로 홍수 때면 물에 잠긴다. 이 때문에 홍수철 방송사 카메라가 찾는 단골장소가 됐다. 한강 수위를 재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잠수교는 강남 개발의 산물이기도 하다. 1976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반포로 이전하면서 건설됐다. 유사시 군 장비의 신속한 도하와 홍수 시 유속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1982년 그 위에 반포대교가 세워지면서 자동차 교량으로서 역할은 사실상 끝났다. 잠수교는 1985년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에 나온 동명 노래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소절 끝마다 반복되는 ‘이상하다 그치’ ‘정말 이상하다’ 등의 여성 멘트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했다.

 

반포대교 건설 후 잠수교는 두 차례 대대적으로 개조됐다. 첫번째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다. 건설 당시 선박 통행을 위해 다리 일부를 들어올릴 수 있도록 한 승개시설 장치를 없애고 중간 부분의 상판을 높인 아치형으로 바꿨다. 유람선이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는 2008년 이뤄졌다. 4차로 중 2개 차선을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로 만들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잠수교가 한강 다리 중 가장 시민친화적인 다리로 변신한 계기가 됐다.

 

서울시가 잠수교를 차 없는 보행중심공간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올해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잠수교가 차 없는 다리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잠수교의 세번째 변신이 성공해 서울의 명물 다리가 되도록 지혜를 모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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