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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정동탑

정동탑1/현장기자 피스크를 위하여

 
23일은 미국의 일간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세계화의 전도사로 이름 높은 토머스 프리드먼(53)이 생애 첫 기사를 쓴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중동 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언론계에 몸담아 그 꿈을 이룬 프리드먼은 결코 이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프리드먼은 첫 저서인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1989) 서문은 물론 책 말미 ‘감사의 글’에서조차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언급했다.

지난 14일 휴전으로 포성이 멈춘 이스라엘와 헤즈볼라 분쟁사태는 두 기자를 떠올리게 했다. 프리드먼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중동특파원 로버트 피스크(60)이다. 두 사람 모두 당대 최고의 중동 전문기자로 꼽힌다. 프리드먼이 받은 3번의 퓰리처상 가운데 2번이 중동 관련 기사였다. 피스크는 만 30년을 중동문제만 취재한 최장수 중동 전문기자이다. 하지만 내놓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로 국내에 즉시 번역·소개되는 프리드먼과 달리 국내에 번역된 피스크의 책은 없다. 영어 원서조차 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30년 중동문제를 파헤쳐온 미국과 영국의 두 베테랑 기자 가운데 피스크쪽에 관심이 더 쏠린다. 아랍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몇 안되는 서방 기자인 그는 76년부터 레바논 내전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1975~90), 이란 혁명(79), 이란·이라크 전쟁(80~88), 걸프전(91), 미군의 이라크침공(2003) 등 30년 동안 중동문제를 취재했다. 이번에도 레바논 현장에서 환갑의 나이에도 매일 인디펜던트 독자를 위해 기사를 송고했다. 자신의 취재경험을 바탕으로 ‘가련한 국가’(1990)와 ‘문명을 위한 위대한 전쟁’(2005) 등 중동 전문서적 2권도 펴냈다. 영국에서 주는 기자상도 휩쓸었다. 그는 서방 기자로서는 드물게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3차례나 인터뷰했다.

피스크의 기사는 사실에 근거한 분석보도로 유명하다. 민간인 폭력에 대한 비난과 위선적인 영국과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은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는 철저한 현장기자이다. 2003년 미군의 이라크침공 당시 바그다드에서 현장을 취재한 그가 발로 뛰지 않은 기사를 ‘호텔 저널리즘’이라 꼬집은 대목은 폐부를 찌른다. 그는 편집권을 자본으로부터 지켜온 실천가였다. 18년간 일한 일간 ‘더 타임스’를 그만두고 인디펜던트로 옮긴 사연이 말해준다. 그는 미국 전함 빈센스호가 이란 에어버스를 격추, 290명이 사망한 사건을 88년 7월 탐사보도했다. 그러나 기사는 잘리고 내용도 왜곡됐다. 그는 미디어제왕 루퍼트 머독이 ‘더 타임스’를 소유한 탓으로 보았고, 사표를 던졌다. 그는 동시에 많은 비난도 받았다. 기사가 객관적이거나 공평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피스크에 관한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의 언론관에 대한 언급이다. 80년대초만 해도 그는 기자의 역할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역사를 바라보는 최초의 목격자’로 여겼다. 그 후 ‘권력의 심장부를 감시하는 일’로 강화했다. 언론인 피스크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기자로서의 소명의식과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정신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이번 중동사태를 통해 얻은 반성이자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