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이란 ‘벼랑 끝 전술’ 무력충돌 부를까(2012.01.10/주간경향 958호)

ㆍ미국의 경제제재 맞서 원유 수송 요충지 봉쇄 경고

이란이 2011년 말 서방에서 자국 원유 수출을 막을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란 공격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란 공격론은 이란 핵개발 저지를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미리 공격한다는 것으로, 2012년을 달굴 국제사회의 가장 뜨거운 현안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미국 등 서방이 이란 핵개발을 막기 위해 내린 경제제재 조치에 있다. 서방은 이란의 핵개발이 중동 평화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각종 경제제재를 가해왔다. 

특히 미국 상원은 12월 15일 이란산 원유 수입 제한 및 이란 중앙은행과의 거래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미국의 추가 제재가 이뤄질 경우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벼랑 끝 전략’의 일환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을 취한 것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가 허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지만, 이란과 미국은 1980년대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충돌한 전례가 있어 미국으로서도 무시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대이란 추가 제재를 시행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미국 군사개입의 ‘방아쇠’가 돼 국제사회는 또 하나의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하비볼라 사야리 이란 해군 사령관이 2011년 12월 22일 테헤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4일부터 열흘간 일정으로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실시될 군사훈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위협에 서방 사회 반발

이란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서방세계에 경고한 것은 12월 27일이다. 모하마드 레자 라히미 이란 부통령은 “이란 석유에 대한 제재조치가 채택될 경우 한 방울의 원유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이란 IRNA통신을 인용해 전했다. 라히미 부통령은 “우리는 적대행위나 폭력을 원하지 않지만 서방권은 (이란 원유에 대한) 제재 방침의 철회를 원하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가 그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만 제재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의 봉쇄 경고는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하비볼라 사야리 이란 해군 사령관은 28일 이란 국영 프레스TV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해군이 “오만해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물 마시듯 쉽다”고 말했다. 사야리 사령관은 또 이란 해군이 필요한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정부의 이 같은 경고는 서방권이 자국을 공격하거나 경제제재 조치를 취할 경우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설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 해군은 이 경고가 나오기 사흘 전인 12월 24일부터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열흘간 일정으로 해군과 공군이 참가한 가운데 합동군사훈련에 돌입해 있다.

해협 봉쇄되면 국제유가 급등

이란의 이 같은 위협에 미국 등 서방은 반발했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12월 2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이는 이란 정부가 핵의무 불이행이라는 실제 문제에서 국제사회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내놓은 또다른 시도”라면서 “일종의 엄포”라고 말했다.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의 마이클 맨 대변인은 28일 성명을 내고 “EU는 이란에 대한 일련의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며 (이란 제재) 논의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맨 대변인은 “오는 1월 30일 EU 외무장관 회의에 때맞춰 추가 제재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EU가 추가 금수를 결정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이란산 석유 금수에 대해 EU 회원국 간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EU 27개국 외교·국방장관들은 지난 12월 1일 브뤼셀에서 이란 핵프로그램과 관련한 추가 제재조치로 석유 금수를 논의했으나 그리스, 이탈리아 등 이란산 석유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란 해군 소속 잠수함 승무원이 2011년 12월 27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실시 중인 군사훈련 도중 물 밖으로 나온 잠수함에 이란 국기를 세우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08년에 있었다. 당시 이란은 만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미 해군과 걸프 국가들은 그럴 경우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고 맞대응했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난 것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1980~1988년)로 거슬러간다. 1984년 이라크가 이란 유조선을 공격해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게릴라 전이 일어났다. 1988년 미 전함 새무얼 로버츠호가 이란의 어뢰공격을 받아 파괴되자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호를 동원해 이란의 원유시설과 해군기지를 공격했다. 이후 미 해군은 제5함대 본거지를 바레인에 두고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비해 왔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유조선의 3분의 1 이상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미 에너지정보국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하루 1500만 배럴에 달한다. 이는 2010년 세계 하루 평균 석유소비량 8740만 배럴의 6분의 1이 넘는 양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국제유가 급등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글로벌리스크매니지먼트의 토르비요른 옌센은 로이터통신에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이란의 위협은 첫날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쳤지만 곧바로 안정됐다. 이는 미국의 군사력으로 이란의 봉쇄조치를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란 해군들이 2011년 12월 28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소형 선박에 승선해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로이터연합뉴스

관심거리는 과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을 정도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CNN방송은 이란이 서방의 오랜 제재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만큼 해군력이나 공군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군사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하지만 군사전문가들은 이란이 소규모
잠수함이나 군함을 동원하거나 어뢰를 이용해 공격하는 ‘비대칭 전쟁’은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파르스 통신은 11월 이란이 소형 잠수함 3척을 진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고 해서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도 또다른 관심거리다. 두바이에 있는 근동 및 걸프군사연구소의 시어도어 카라식은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은 물리적 공격을 통해 그 지역을 장악할 수 있으며 주변국은 모두 이란의 행위를 중단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의 기준과 관련해 눈에 띄는 보도가 세밑에 나왔다. 미국의 온라인매체인 데일리비스트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한 ‘금지선(red lines)’ 설정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조치는 이란이 만약 금지선을 넘을 경우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논의 중인 금지선에 포함될 수 있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금지선에 포함될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은 대이란 공격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전쟁을 실제로 할 것인지와는 별개의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