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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호르무즈 해협과 돌고래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 미국이 핵개발 의혹 때문에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등 경제제재를 취한 데 따른 조치다. 미국은 이란이 동원할 수 있는 무기로 기뢰, 무장 고속정, 대전함미사일 등을 꼽는다. 이 가운데 기뢰를 가장 두려워한다.
그러나 묘책이 있다. 바로 ‘돌고래 부대’의 투입이다. 바레인에 있는 미 제5함대 사령관을 지낸 팀 키팅 전 제독은 미 공영 NPR방송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돌고래는 해저 물질을 탐지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돌고래의 음파 탐지 능력은 놀랍다. 110m 떨어진 곳에 있는 크기 8㎝의 물체도 탐지한다. 눈을 가리고도 25센트와 10센트짜리 동전을 구분할 정도다. 특히 자연물과 인공물을 구별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미 해군은 돌고래의 이런 특성을 기뢰 탐지에 활용하기 위해 훈련시켰다. 돌고래가 기뢰를 찾으면 수중음향장치를 근처에 떨어뜨린다. 그러면 미 해군 잠수요원들이 기뢰를 제거하는 것이다. 미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는 기뢰 탐지용 돌고래 80마리가 있다고 한다. 지난 13일 월간 애틀랜틱 인터넷판이 전한 내용이다. 
 

이란 잠수함 함대가 오만해 근처 해역에서 기동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아이들이 사랑하는 돌고래가 기뢰 제거작전에 투입되는 것은 꺼림칙하다.
돌고래는 1960년대 초부터 기뢰 탐지 훈련을 받았다. 두 차례 실전에도 투입됐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최근 사례다. 당시 걸프만에 투입된 돌고래는 8마리였다. 돌고래들은 사담 후세인이 심어둔 기뢰와 부비트랩 100여개를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스미소니언 매거진이 전했다. 미군이 돌고래를 기뢰 탐지에 활용해온 사실은 1990년대 초가 돼서야 공개됐다. 기밀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의 반발을 감안했음직하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과 이란이 실제로 무력충돌할 경우 돌고래 처지까지는 헤아리지 못할 일이 벌어질 것이다. 역사가 보여준다. 두 나라는 1988년 걸프만에서 충돌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88) 막바지 무렵이었다. 이라크가 이란 유조선을 공격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는 이라크 편을 든 쿠웨이트를 비롯한 걸프국가들의 유조선을 보복 공격했다. 미국은 쿠웨이트 유조선에 성조기를 꽂고 운항하는 것을 지지함으로써 이란을 자극했다. 미국과 이란은 충돌 직전 상황에 이르렀다. 이란은 걸프만에 기뢰를 설치했다. 테헤란 중심부엔 ‘페르시아만은 미국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마침내 미국 프리깃함이 이란이 설치한 기뢰에 부딪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이란 정유시설을 폭격했다. 이란도 전투기를 동원해 미 선박을 공격하면서 서로 간 보복전이 이어졌다.
그해 7월 최악의 사건이 터졌다. 미 순양함 빈센스호가 상공을 지나던 이란 민항기를 이란의 F14 전투기로 착각해 미사일로 격추시킨 것이다. 탑승객과 승무원 290명 전원이 사망했다. 국지전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 상황은 미국이 실수를 인정하고 거액의 보상금(6180만달러)을 지불함으로써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미국의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 (경향신문DB)



지난해 말부터 전개되는 상황은 무력충돌 위기를 높이고 있다. 이란의 미국 무인비행기 격추, 이란 해군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훈련, 이란 핵과학자 암살사건,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를 위한 미국의 국방수권법 발효, 이란의 미국 스파이단 적발 및 미국인 사형 선고….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에 항공모함 3척을 파견했다.
이 모든 상황은 무력충돌을 낳는 방아쇠가 될 개연성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고조되는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미 해군 측은 돌고래가 기뢰 탐지 작전을 하다 죽은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돌고래가 항상 운이 좋을 수만은 없다. 언제든 우발적으로 기뢰를 건드릴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이란이 돌고래가 기뢰를 탐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살상할 수도 있다. 전쟁 때문에 돌고래를 희생시켜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