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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1]오바마는 다를까(170504)

[경향의 눈]월가 고액 강연 논란, 오바마는 다를까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걸까. 버락 오바마가 퇴임 대통령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자마자 고액 강연료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달 24일 오바마가 오는 9월 월가의 한 투자은행이 주최하는 건강보건 관련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대가로 40만달러를 받기로 한 사실이 공개됐다. 공교롭게도 이를 폭로한 매체는 재임 동안 그를 괴롭혔던 폭스뉴스그룹 계열의 ‘폭스 비즈니스’였다. 사흘 뒤에는 한 미디어 기업이 주최한 홍보 행사에서 인터뷰 대가로 40만달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잇따른 고액 강연·인터뷰료로 비난받은 오바마의 심경은 어떨까. ‘남들도 다 하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며 억울해하고 있을까. 아니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각에서는 그가 단 한 번의 연설로 대졸자 평생 수입의 6분의 1을 벌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오바마의 거액 강연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고액 강연료는 전임 대통령의 특권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바마도 그 길을 따랐을 뿐이다. 논란의 본질은 고액 강연이 아니다. 누구의 돈을 받느냐,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느냐가 문제다. 그가 2006년에 쓴 <담대한 희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부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로펌 파트너들, 투자은행가들, 헤지펀드 매니저들, 벤처 자본가들이었다.” 오바마는 정치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자들을 만났다. 새 정치를 꿈꿔온 그로서는 충격이었다. 월가 부자에 대한 경계심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어졌다. 2009년 CBS 방송 <60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월가의 살찐 고양이 은행가 무리를 도우려 출마하지 않았다.” 탐욕의 화신인 월가 은행가들이 세계금융위기를 낳은 장본인임을 꼬집은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월가 고액 강연도 그의 비판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클린턴 전 장관과 그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강연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CNN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2001년부터 2015년 5월까지 총 729회 강연을 했다. 수입은 1억5367만달러다. 월가 투자은행을 대상으로 한 강연은 39차례(770만달러)다. 이 가운데 클린턴 전 장관은 골드만삭스 3회 등 8차례(180만달러) 강연을 했다. 오바마가 그토록 비난해온 월가 은행가와 ‘악마의 악수’를 했으니 그의 동료인 워런 엘리자베스·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비난은 당연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반월가 전사들이다.

 

퇴임 대통령 오바마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하나다. 그가 여느 전임 대통령과 다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전임자들보다 좋은 유산을 가지고 있다. 타고난 달변가이자 웅변가이자 재담꾼이다. 전직 대통령 프리미엄도 엄청 높다. 마음먹기에 따라 클린턴 부부보다 더 많은 돈을 긁어모을 수도 있다. 40만달러 강연료나 6500만달러에 이른다는 오바마 부부의 회고록 계약금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를 돋보이게 할 존재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의 헛발질이 거듭될수록 오바마의 몸값은 높아질 게 뻔하다. 그의 행보에 미국 민주당의 운명은 물론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 환경도 나쁘지 않다. 트럼프의 취임 100일 지지도는 아이젠하워 이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인기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문제가 트럼프에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오바마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인 셈이다. 

 

오바마의 고액 강연 논란에 대해 그의 보좌관은 이런 성명을 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가끔 강연을 할 것이다. 일부는 돈을 받을 것이고 일부는 무료로 할 것이다. 그리고 장소나 스폰서를 가리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가치와 비전과 그가 남긴 기록에 충실할 것이다.” 이 말은 오바마의 가치와 비전, 그리고 업적에 맞다면 강연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퇴임 후 행보 첫날에 한 연설은 의미가 있다. 정치적 고향 시카고에서 그는 시민참여와 공동체 조직을 강조했다. 새로운 세대의 리더십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도 했다. 연설 내용은 그가 퇴임 전에 한 약속 그대로였다. 오바마다웠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긴 이유는 그가 잘해서가 아니다. 상대가 못했기 때문이다. 클린턴 후보는 입으로는 친서민을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월가의 이익을 옹호했다. 높은 도덕성과 양심, 언행일치는 정치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3연임을 하지 않는다는 대통령 임기에 대한 전통을 세웠다. 오바마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은 퇴임 대통령의 새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오바마는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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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032052015&code=990503#csidxebea44a41f9844f821a04ca8487e8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