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오바마의 짐 갈라진 미국’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조지 W 부시 행정부보다 버락 오바마 때 더 두드러졌다는 내용이었다. 이전보다 더 보수화한 공화당 지지자들이 원인이었다. 갈수록 그 추세는 심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임기말 국정지지도에 대한 양당 지지자 간 격차는 85%포인트였다. 역대 최대다. 오바마 임기말 때보다도 10%포인트 가까이 높다. 조 바이든은 사상 최악의 갈라진 미국이라는 짐을 안고 출발했다. 그의 당선 첫 일성이 사회 양극화 해소인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어떨까. 새해 벽두 공개된 워싱턴포스트·메릴랜드대 여론조사 결과는 암울하다. 트럼프 지지자 69%는 아직도 바이든이 정당하게 선출되지 않았다고 여긴다. 초유의 대선 불복과 그에 따른 1·6 의회점거 폭동이 남긴 크나큰 상처임은 말할 것도 없다. 갈라진 미국의 현주소다. 

1·6폭동 이후 미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내전’이다. 지난해 9월 노스캐롤라이나주 한 지역 신문에 “적들이 문 앞에 있다”며 “내전 중”이라는 주장을 담은 글이 실렸다. 이런 주장은 공화당 장악 주에서 흔하다. 1·6폭동 직후 미국인 46%는 내전 가능성에 동의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공화당 지지자 40%는 정부 상대 폭력을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 존 페퍼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은 미국의 현 상황을 1990년대 내전 직전의 유고연방에 비유했다. 민주당의 미국과 공화당의 미국으로 쪼개지기 직전이라는 의미다. 공화당의 극우파 하원의원 마저리 테일러 그린은 아예 갈라서자고 주장하고 있다.

내전 우려 징후는 1·6폭동 훨씬 전부터 있었다. 2013년 5월 매우 특이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공화당 지지자 44%가 자유 수호를 위해 무장반란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는 2012년 말 발생한 샌디훅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후 총기규제를 강화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반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다. 일부 논평가들만 공화당 조롱 소재로 활용했을 뿐 대다수는 과장이라며 믿지 않았다.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2020년 대선에서 그가 패배할 경우 대선 불복에 이은 쿠데타, 내전 가능성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공화당의 백인우월주의자인 스티브 킹 전 하원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2019년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또 다른 내전을 말하고 있다”면서 “한쪽은 실탄 8조발을 가지고 있는데, 과연 누가 이길까”라는 글을 올렸다. 그 결과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준동과 1·6폭동이다.

향후 전개될 내전 시나리오는 이렇다. 대전제는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재출마다.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승리하면 가능성은 낮다. 반면 트럼프가 큰 표차로 지면 대선 불복-폭동-내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연방군이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다. 설마 이런 상황이 올까. 미 해밀턴대의 에리카 드 브루인 교수는 “말이 안 되지만 가능성의 영역에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위험 신호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급증하는 총기판매량과 공화당 장악 주에서의 투표방해공작 등이다. 올해 중반기쯤 예정된 미 대법원의 무제한적인 총기소유 판결 결과도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변수다. 어쩌면 1·6폭동은 내전 준비를 위한 연습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모든 것이 내전을 향하고 있는데도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보 미국도, 보수 미국도 없다. 미합중국만 있다.” 17년 전 오바마를 ‘통합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 말이지만 갈라진 현실 앞에서 공허할 뿐이다. 일주일 뒤 취임 1주년을 맞는 바이든에게도 들어맞는다. 바이든은 미국 안에서 내우외환 상태에 처해 있다. 양극화 해소 약속은 빈말이 된 지 오래다. 가장 큰 책임은 사사건건 반대하는 공화당에 있다. 바이든이 애를 쓰면 쓸수록 공화당의 반발도 커지는 양상이다. 적은 공화당만이 아니다. 민주당에도 있다. 천문학적 재원을 투입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 정치적 양극화를 막으려는 바이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민주당 상원의원(조 맨친)이다.

남북전쟁을 앞둔 160년 전처럼 또다시 내전의 그림자가 미국을 뒤덮고 있다. 2024년 미 대선까지는 3년이 채 남지 않았다. 세상사가 그렇듯 위기의 징후는 늘 존재하지만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최악은 위기를 알고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이 그런 때일지도 모른다. 적은 내부에, 그것도 문 앞까지 왔는데도 미국은 세계 경찰 노릇에 여념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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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미국 노동운동사의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 아마존과 스타벅스 미국 내 사업장에서 첫 노조가 탄생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노조가 생기면 설립 이후 이어진 아마존(1994년)과 스타벅스(1971년)의 미국 내 매장 무노조 경영은 끝난다. 첫발은 미 노동관계위원회(노동위)가 뗐다. 노동위는 지난달 29일 지난 2~3월 앨라배마주 베서머 물류센터 직원들이 실시한 노조 설립 찬반 투표 결과(반대 71% 찬성 29%로 부결됐다)를 뒤집고 재투표를 결정했다. 노동위가 산별노조 측이 제기한 청원을 받아들임으로써 아마존 첫 노조 설립은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 열흘 뒤엔 스타벅스에서 희소식이 나왔다. 지난 9일 공개된 뉴욕주 버펄로의 한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의 노조 결성 투표 결과 찬성 19명, 반대 8명으로 가결됐다. 미국 내 스타벅스 9000개 직영 매장에서 시도된 관련 투표로는 첫 승리다. 노동위가 승인하면 스타벅스 첫 노조가 탄생한다.

노동위의 아마존 노조 설립 재투표 결정은 의미가 크다. 회사 측의 노골적인 노조 방해 행위에 철퇴를 가했기 때문이다. 사측의 노조 방해 행위는 흔한 일이다. 아마존도 예외는 아니다. 노조 설립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이유다. “(회사는) 투표 과정을 근본적으로 장악했고, 그 과정을 통제했다는 강한 인상을 줬다.” 아마존 노조 방해 행위에 대한 노동위의 평가다. 실제로 회사는 노동위 지침을 무시하고 물류센터 입구 바깥에 투표함을 설치해 직원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투표 반대’ 홍보물 배포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류센터 복도와 화장실마다 반노조 포스터를 붙였다. 심지어 하루 4~5차례 반노조 문자를 보내고, 노조가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소문도 퍼뜨렀다. 사측의 노조 방해 공작은 투표 당시에도 논란이 됐다.

아마존 물류센터 직원들이 노조 설립에 나선 이유는 단순하다. 시가총액 세계 5위인 아마존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악명 높다. 베서머 물류센터의 한 직원이 지난 3월 상원 청문회에서 폭로한 실상은 충격적이다. 직원들은 10시간 교대근무 동안 30분씩 두 차례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엘리베이터는 상품용이라 직원은 이용할 수 없다. 작업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질책받거나 해고된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페트병에 소변을 본다. 폭로는 이어졌다. 뉴저지주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은 지난 7일 상원 청문회에서 “아마존은 우리 등을 밟고 제국을 건설했다”고 했다. 직원들을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의 도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내가 일하는 곳의 기계는 번아웃되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는다”고도 했다. 기계보다 못한 대접에 대한 불만 표시다.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인데도 직원 보호에 무신경한 회사 측의 태도도 한몫했다. 아마존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매출 증가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덩달아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의 부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것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도 베이조스는 딴 세상에 사는 것 같다. 그는 지난 7월 첫 우주비행을 다녀온 뒤 “아마존 모든 직원과 고객에게 감사한다. 이들이 모든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노동계의 분노를 샀다.

아마존과 스타벅스의 잇단 쾌거는 상징하는 바가 있다. 노조운동에 대한 관심 고조다. 2020년 1월 기준 미국의 노조 조직률(10.8%)은 여전히 낮다. 약 20년 전(21.1%)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 1월 기준 노조 지지율(68%)은 1965년(71%) 이래 가장 높다.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존 로건 교수는 노조에 대한 언론의 호의적인 태도와 시민들의 관심 고조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베서머 물류센터 노조 추진 소식과 아마존의 노조 방해 행태는 비중 있게 다뤄졌다. 노동위 결정도 마찬가지다. 지역 언론 AL닷컴은 “아마존이 자유롭고 공정한 노조 선거를 불가능하게 했다”고 했다. 베이조스가 소유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조차 “노동위 재투표 요구는 노조의 승리”라고 했다.

노조운동에 대한 인식 변화는 고무적이지만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베서머 물류센터의 재투표가 가결된다면 파급효과는 지대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아마존의 노조 방해 공작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노조 설립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교섭권 쟁취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노조에 대한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 코로나19가 낳은 고용과 노동환경 변화도 변수다. 그럼에도 아마존 직원의 도전이 계속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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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이목이 영국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쏠려 있던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희소식이 전해졌다. 7년 전 ‘플린트시 수돗물 납 오염 사태’와 관련해 시민들이 주정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6억2600만달러의 보상 합의안을 승인한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높은 관심 탓에 크게 조명받지 못했지만 세계 환경오염 역사에 획을 긋는 뉴스였다. 인구 10만명에 불과한 미 북동부 미시간주의 소도시에서 발생한 수돗물 납 오염 사태는 현대 미국에서 일어난 최악의 환경재앙 중 하나로 불릴 만큼 관심을 끌었다. ‘제2의 카트리나’ 논란을 부를 정도로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적·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사후 처리 과정에서도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등 정치적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비극은 2014년 4월 플린트시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기존 수돗물 공급처를 휴런호 물을 상수원으로 쓰는 디트로이트시에서 플린트강으로 바꾸며 시작됐다. 문제는 플린트강은 산성도가 높아 식수로 쓰기 적합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상수원이 바뀌면서 시작된 부작용은 탈모, 발치, 발진 등을 넘어 납 중독으로까지 번졌다. 부식된 수도관을 통해 납 성분이 수돗물에 침출된 것이다. 한번 몸 안에 흡수된 납 성분은 평생 빠져나가지 않는다. 지능 저하는 물론 폭력 충동 등 여러 장애를 일으킨다. 주정부는 사건 발생 1년 반이 지나서야 납 오염을 인정하며 상수원을 다시 되돌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수돗물 오염에 따른 급성 폐렴으로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80명이 고통을 받았다.

플린트 사태는 기존 환경오염 사건과 확연히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환경오염의 주체다. 대부분 환경재앙의 주범은 기업이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2000)에서 발암물질 크롬을 배출한 회사는 미 최대 전력회사 PG&E였다. 마크 러펄로가 <다크 워터스>(2020)에서 고발한 독성화학물질 과불화옥탄산(PFOA)을 유출한 회사는 세계적인 화학기업 듀폰이었다. 돈벌이만 된다면 주민의 삶과 인권, 환경파괴 등에 아랑곳하지 않는 게 거대자본의 속성이다. 하지만 플린트 사태 뒤에는 주정부가 있었다. 주민을 위해 봉사할 주정부가 주민을 기만한 것이다. 정치의 실패라 할 수 있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온 공화당 출신의 릭 스나이더 주지사 탓이 크다. 플린트는 인구의 60%가량이 흑인이고, 40% 이상이 극빈자다. 그에게 이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플린트 수돗물이 GM 엔진공장 운영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휴런호로 변경했다. 명백한 인종차별적 처사였다. 플린트가 백인 위주의 도시였다면 불가능했을 터이다.

플린트 수돗물 사태의 정치 실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첫 흑인 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조차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대응에 실패했다. 이 사실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2018년 다큐멘터리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에서 잘 드러난다. 11/9는 2016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날을 의미한다. 트럼프 승리의 원인을 찾던 무어는 2016년 5월 자신의 고향 플린트를 방문한 오바마에게 앵글을 맞춘다. 오바마는 사태 해결을 기대하는 주민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는 연설 도중 “물 한 잔 마시고 싶다”고 했다. 주민들은 ‘생수’를 외쳤음에도 그는 수돗물을 고집했다. 하지만 그는 입만 댄 채 마시지 않았다. 스스로 이목을 끌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고 했지만 명백한 정치적 쇼였다. 쇼는 스나이더 주지사와 함께한 자리에서도 반복됐다. 그의 방문으로 재난지역 선포를 기대했던 주민들은 좌절했다. “그는 나의 대통령으로 이곳에 왔지만 떠날 때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한 플린트 운동가의 말만큼 배신감을 보여주는 말은 없다.

플린트 사태가 초래한 정치적 대가는 컸다. 민주당은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에 패배했다. 특히 미시간주에서는 1만704표차(0.23%)로 석패했다. 민주당이 미시간주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진 것은 1988년 이후 처음이다. 물론 민주당의 아성인 플린트가 포함된 제네시 카운티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이 플린트 사태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문제는 공화당 주지사가 일으켰지만 주민들은 민주당에 책임을 물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플린트 사태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책임정치의 중요성이다. 정치인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이들 또한 기득권 정치인을 배척하기 마련이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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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평화상은 언론인에게 돌아갔다. 필리핀의 두테르테와 러시아의 푸틴이라는 독재자에 맞서 언론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두 나라 언론인이 공동 수상했다. 언론인이 이 상을 받은 건 86년 만이라고 한다. 내심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받길 기대한 터라 적잖이 실망했다. 그럼에도 언론 종사자로서 반가웠다.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노벨위원회가 고마웠다. 다만 하고많은 언론인 중에 하필 이들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독재자는 언제나 존재했고, 이에 항거한 언론인도 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영어의 몸이 된 채 잊혀가고 있는 한 언론인 때문이다. 

줄리언 어산지. 2010년 기밀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 일지, 국무부 외교문서 등을 폭로해 전 세계를 뒤흔든 인물이다. 그의 폭로로 이라크에서의 잔학행위와 관타나모 베이에서의 고문, 대규모 감시 프로그램 운영 등 테러와의 전쟁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지금 언론에서 그의 이름은 찾기 힘들다. 그의 폭로를 대서특필하던 유수의 언론들이 외면해서다. 지난달 26일 야후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미 중앙정보국(CIA)이 어산지 납치·암살 계획을 세운 사실을 폭로했다. 위키리크스가 2017년 CIA 기밀문건을 폭로한 데 대한 보복 차원이라고 한다.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지만 미 정부의 암살 계획은 그 자체가 불법이다. 용납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명백한 특종인데도 언론들은 침묵했다. 미 언론감시단체 페어(FAIR)에 따르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BBC는 소말리아판에만 전했다.

어산지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 못지않은 언론 자유의 수호자다. 그가 없었다면 국가 권력의 폭력과 음모는 감춰졌을 터이다. 하지만 언론은 그에게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 무엇보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 자유를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미 언론의 이중 태도는 아이러니하다.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스 폭로나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도 언론 자유 덕분 아니었던가. 미 정부는 어산지의 행위를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헌법상 언론 자유는 외국인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어산지는 호주인이다. 미 정부는 이런 이유로 어산지를 간첩법 위반 등 18개 혐의로 기소했다. CIA는 위키리크스를 ‘비국가 적대 정보기관’으로 지정했다. 언론인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환호하면서 어산지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미 정부 논리에 충실한 언론의 책임이다.

어산지는 현재 런던 동부의 벨마시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과거 스웨덴에서 저지른 성폭행 사건과 관련한 보석 규정 위반으로 2019년 4월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체포됐으니 벌써 2년 반째다. 보석 규정 위반에 대한 50주 수감도 오래전 끝났다. 그가 신청한 보석도 거부됐다. 미국이 요청한 그에 대한 송환 절차가 영국 법원에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영국 고등법원은 오는 27~28일 어산지에 대한 항소심 심리를 연다. 미 정부가 올해 초 1심 법원의 송환 불허 결정에 항의해 항소한 데 따른 것이다. 어산지가 미국으로 송환되면 최장 175년간 복역할 수 있다고 한다. 

항소심 심리를 닷새 앞둔 22일 런던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린다. 미국의 전쟁범죄와 고문, 납치, 인권남용을 규탄하기 위한 민간법정이다. 어산지의 미 송환 저지와 그의 석방 촉구가 목적이다. 그가 수감된 교도소 이름을 따 ‘벨마시 법정’으로 명명했다. 이 법정은 55년 전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미국의 베트남 전쟁범죄를 심판하기 위해 만든 러셀 법정을 원용했다. 러셀 법정은 1967년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두 차례 열렸다. 비록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 등 전쟁 책임자를 재단하지는 못했지만 국가 책임에 대한 11가지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한국과 호주, 뉴질랜드도 공범이라는 판결도 그중 하나다. 판결 결과는 구속력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침묵을 깨고 모두가 외면한 진실을 파헤침으로써 인류의 양심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어산지의 미 송환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에 대한 박해이기도 하지만 언론 자유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미국과 영국 정부의 어산지 송환 음모를 막지 못하면 언론 자유는 국가 안보에 밀려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언론인이 이 문제에 침묵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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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존 스타인벡은 1960년 9월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미국을 일주하는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58세 때다. 75일간의 여행 막바지에 스타인벡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한 초등학교를 찾는다. 날마다 대서특필되던 흑인 등교 반대 시위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그해 2월 뉴올리언스 교육당국은 흑백 통합교육을 결정한다. 6년 전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인 흑백 간 학교 분리 배정 위헌 판결에 따른 것이다. 11월14일 6세 흑인 여자아이(미 흑인 민권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루비 브리지스)의 역사적인 등교가 시작된다. 맞불 반대 시위도 벌어진다.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백인 주부들이다. ‘응원단’으로 불리는 이들은 욕설과 야유로 유명하다. 오전 9시 정각 흑인 여자아이는 법원 집행관 4명의 호위를 받으며 검은 승용차에서 내린다. 응원단의 비난은 아이가 “겁에 질린 새끼 사슴 같은 표정으로” 학교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이어진다. 끝이 아니다. 백인 아이를 등교시키는 백인 남성을 향해서도 쏟아진다.

스타인벡은 여행 뒤 펴낸 <찰리와 함께한 여행>(이정우 옮김·2006·궁리)에서 이를 ‘괴상망측한 드라마’라고 했다. 그에게 현장은 극장이나 다름없었다. 군중은 관객이었다. 응원단은 연기자였다. 스타인벡의 비난은 신랄했다. “그들(응원단)은 이미 어머니가 아니었다. 여성도 아니었다. 발광한 관중 앞에서 연기하는 발광한 배우들이었다.” 군중도 권투 경기장의 피에 굶주린 관중이었고,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의 구경꾼이었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 현장을 지켜본 스타인벡은 구토를 느낄 만큼 충격이 컸다. 그가 일주여행을 떠난 목적은 미국을 더 알기 위해서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였지만 정작 미국을 너무 몰랐다는 그에게 이번 여행은 기억에 의존한 글쓰기에 대한 반성이었다. 일상화된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질린 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는 것뿐이었다.

괴상망측한 드라마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2017년 9월 초, 한 장의 사진이 전국을 연민과 분노로 들끓게 했다. ‘무릎 꿇은 엄마’로 유명해진 서진학교 사건이다. 폐교된 학교에 발달장애우를 위한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것을 두고 일부 주민들이 반대하자 학부모들이 주민토론회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한 것이다. 서진학교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3월 개교했지만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있는 혐오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무릎 꿇은 학부모 못지않게 뇌리에 또렷이 새겨진 장면이 있다. 가지 말라는 학부모들의 호소에도 웃음 지으며 떠나는 당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다. 지역구 의원인 그는 서진학교 건립 터에 국립한방학교를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갈등을 키웠다. 염치 하나 찾을 수 없는 그의 웃음은 4년이 지나도 잊히질 않는다.

지난여름 무릎 꿇기 호소의 아픈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서진학교 개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날>을 둘러싼 법적 다툼 때문이었다. 올해 어린이날에 상영을 시작한 영화는 암초를 만났다. 설립에 반대한 주민 A씨가 김정인 감독 측을 상대로 배급·상영 중지 및 일부 장면 삭제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낸 것이다. A씨는 지난달 초 배급·상영 중지 가처분 신청은 취하했지만 모자이크 처리된 장면을 삭제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은 유지했다. 법원이 추석연휴 전 장면 삭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지만 불씨는 언제든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아니나 다를까. 제2의 서진학교 사태를 방불케 하는 일이 일어났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서울 송파을)은 지난 16일 “송파 실버케어센터 건립을 백지화해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해 기쁘다”고 밝혔다. 이 센터는 서울시가 치매 노인을 위한 치유·돌봄 시설로 추진했다고 한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표를 의식한 행동이라 해도 정치인이 할 언사는 아니다. 더욱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시대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특수학교나 실버케어센터를 혐오시설로 보는 인식은 여전하다. 집값 하락, 교육환경 악화, 조망권 침해라는 이유와 나 또는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의 발로 때문일 터이다. 하루아침에 달라질 일도 아니다. 다만 세상이 변하는데도 인식이나 처방이 과거에 갇힌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61년 전 스타인벡이 던진 질문이 여전히 가슴을 파고든다. “겁에 질린 그 조그만 아이를 품에 안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사람은 진정 없단 말인가?” 답을 고민하지 않으면 괴상망측한 드라마는 계속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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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며 흐느낀다. “두 딸을 두고 왔다. 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한 남성은 “고맙다”는 말을 연발한다. 또 다른 남성은 기뻐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담은 가방을 잃어버려서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탈레반 재집권 후 예상되는 탄압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도착했다. 카불 함락 8일 만이다. 대부분 미 정부 협력자와 그 가족이다. 이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함께 불안, 초조의 빛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도 아프간에 남겨진 이들에 비하면 행운아들이다. 이륙하는 군용기에 타려고 활주로를 달리는 시민들, 공항 철조망 너머로 던져지는 아이들…. 카불 함락 후 카불공항 상황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만큼 안쓰러웠다. 지금도 8월31일 철수 시한 안에 비행기를 타려는 인파로 아수라장이다. 

미국 땅을 밟았다고 역경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특별이민비자(SIV)를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저 난민일 뿐이다. 난민은 자신의 운명이 남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의미다. 지난 40여년간 아프간인들의 처지가 그랬다. 옛 소련 침공과 퇴각(1979~1989), 내전, 탈레반 집권(1996~2001)을 거치며 600만명이 아프간을 떠났다. 2001년 미국 침공 이후에도 난민은 끊이지 않았다. 현재 아프간 난민은 베네수엘라, 시리아에 이어 3번째로 많다. 탈레반 재집권은 또다시 대규모 난민사태를 예고한다. 20년 미 점령기 동안 태어나 미국식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그 대상이다. 아프간 인구의 3분의 2가 25세 미만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에 의해 길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레반과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이들이다. 특히 미국이 받아주지 않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미국의 난민 수용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미 역사상 최대 난민 수용 사례인 ‘보트피플’ 사태다. 1975년 4월 말 베트남 패망으로 그 해 봄에만 약 13만명이 미국 땅을 밟았다.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정치적 상황은 예기치 못한 대규모 보트피플을 낳았다. 1978년 가을 시작된 보트피플 사태로 미국은 2000년까지 베트남인 80여만명을 받아들였다.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56년 헝가리 혁명, 1959년 쿠바 혁명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의회가 반대했고, 여론도 좋지 않았다. 공산주의자처럼 미국의 적이 존재할 때는 난민 수용에 우호적이었지만 미국의 패전 때는 반대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 사이 20만~40만명이 바다 등에서 스러져갔다. 아프간 난민사태는 베트남전 이후 미국이 직면한 최대 난민 위기가 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치욕적인 사건이다. ‘저주받은 자들의 항해’로 불리는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이다. 이 배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독일 여객선이다. 1939년 5월 함부르크를 떠날 때 탑승객은 937명이었다. 대부분이 나치 치하 유럽을 탈출하려는 유대인이었다. 목적지는 쿠바였지만 탑승객들은 미국을 원했다. 2주 후 쿠바 아바나 연안에 도착했지만 29명만 내려준 채 선수를 돌려야 했다. 미국과 캐나다가 외면하자 결국 한 달여 만에 벨기에에 입항했다. 이들 중 245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됐다. 미국이 이들을 거부한 이유는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반이민 정서 탓이었다. 당시는 대공황의 여파로 나치를 비롯한 파시즘의 광기가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다. 미국도 캐나다도 쿠바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인트루이스호 입항 거부 같은 치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되살아났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준동에 따른 무슬림 입국금지 조치가 그것이다.

아프간 난민이 제2의 보트피플이 되느냐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달려 있다. 여건도 보트피플 사태 때와는 다르다. 당시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나선 주지사는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10여명이 넘는다. 난민 수용 찬성 여론도 1975년에는 36%였지만 지금은 81%(CBS·유고브 조사)나 된다. 바이든은 지난 22일 “심사를 받고 문제가 없는 아프간인들은 미국에서 환영받을 것”이라고 했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결단력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프간 난민 쿼터를 늘리는 일이 중요하다. 미국의 솔선수범은 다른 나라의 난민 장벽을 낮출 수 있다. 또한 실패한 전쟁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이자 ‘미국이 돌아왔다’는 것을 세계에 확인시켜주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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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쟁 상황에 있지 않다. 이번 팬데믹으로 한 사람의 승조원도 불필요하게 잃을 수 없다.” 지난해 3월31일 언론에 공개된 e메일이 미국을 발칵 뒤집었다. 발신인은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 함장 브렛 크로지어 대령이었다. 수신인은 그의 해군 상관과 동료 10명이었다. 당시 남중국해와 필리핀해에서 작전 중이던 루스벨트호는 코로나19에 뚫렸다. 승조원 약 5000명 중 확진자가 100명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확산 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였다. 그래서 크로지어 함장은 3월30일 승조원 대부분을 항모에서 하선시킬 것을 요청하는 e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e메일이 하루 만에 공개되자 파문이 일었다. 수뇌부는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언론 보도 이틀 뒤에는 그의 지휘권을 박탈했다. 그가 하선하던 날 약 2000명의 승조원들은 박수를 치며 “캡틴 크로지어”를 연호했다. 지휘권 박탈이 수뇌부의 코로나19 대응이 잘못됐음을 부각시켜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지휘권 박탈은 찬반 논란을 불렀다. 크로지어의 직위를 해제한 해군장관 대행은 닷새 뒤 사임했다. 그의 사임 뒤 크로지어 복직 요구가 들끓었다. 함장의 e메일로 시작된 루스벨트호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의 반전 드라마는 거기까지였다.

그해 6월 해군 조사, 올해 2월 국방부 감사 결과는 다른 의미에서 반전이었다. 두 조사의 결론은 크로지어의 잘못이다. 해군 조사는 항모 내 거리 두기 규정 위반과 승조원 하선 지체 등을 문제 삼았다. 다만 e메일을 보낸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e메일 때문에 함장직을 박탈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의 함장직 복귀는 물 건너가 버렸다. 국방부 감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확진자 격리 조기 해제, 지속적인 집합장소 개방, 비필수적인 소변검사 실시 등을 규정 위반 사례로 들었다. 해군 지휘부의 문제점도 밝혔다. 해군 구성군사령부 5곳 중 4곳이 2년마다 해야 하는 감염병 대비 훈련을 실시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당연히 감사 결과에 반발이 일었다. 민주당 상원의원 두 명은 해군 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크로지어를 복직시키지 않은 데 의문을 제기했다. “해군의 결정은 크로지어 직위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퇴행적인 기준과 사후 절차와 관행을 적용한 것 같다.” 코로나19 유입 차단 실패 책임을 함장에게 전가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해군은 항모 초유의 집단감염으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승조원 90%가 확진자로 판명된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 국방부가 감사를 벌이고 있다. 집단감염 경로, 초기 대응의 적절성, 지휘보고 체계, 방역지침 적용 여부 등이 대상이다. 집단감염 사태 후 많은 의혹들이 제기됐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 감기환자 발생 이후 대응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의문투성이다. 우선 함장의 대응이다. 첫 감기환자가 발생한 뒤 합참에 보고하기까지 8일이 걸렸다. 이미 가벼운 기침이나 발열 등 미세한 증상 발현 시 즉시 보고하라는 지침이 하달된 터였다. 함장이 왜 지침을 준수하지 않았는지는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합참이 보고받은 뒤 전 승조원을 대상으로 한 항체키트 검사를 지시하지 않은 경위도 밝혀야 한다.

 

사실 문무대왕함이 처한 조건과 상황은  루스벨트호와 다르다. 그렇지만 함장의 대응은 비교된다. 루스벨트호 감사 결과는 함장의 영웅적 행위 뒤에 가려진 것들을 드러냈다. 부하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리더십에 따라 신속·과감한 행동을 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현장과 지휘부의 유기적인 협조와 지휘보고 체계의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것, 루스벨트호 사태의 중요한 교훈이다. 루스벨트호 사태는 밀폐된 전함에서 감염병 발생 시 참고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전범이다. 해군과 국방부가 루스벨트호 사태의 전말을 파악해 교훈을 제대로 숙지했는지조차 의심이 든다. 만약 알고도 이행하지 않았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다.

 

많은 이들이 국방부 감사를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군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루스벨트호 사태에서도 보듯 감사 결과에 의문이 남아서는 안 된다. 감사의 생명은 투명한 조사를 통해 신뢰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희생양을 만들거나 꼬리 자르기식 편법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감사 목적이 진상규명과 관련자 문책뿐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개선해 재발을 방지하는 데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방장관은 장관직을 걸고 한 점 의혹도 없도록 샅샅이 파헤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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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자 제프 베이조스가 이달 20일 우주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우주탐사 업체 블루오리진이 만든 우주관광 로켓 ‘뉴 셰퍼드’를 타고 상공 100㎞ 부근에서 11분간 머물다 돌아올 계획이다. 성공하면 또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디딘 지 52주년이 되는 날, 우주관광시대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영국의 ‘괴짜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이 선수를 칠 것이라는 말도 있어 장담할 순 없다. 그런 그에게 저주가 날아들었다. 우주로 간 베이조스가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자는 ‘지구 귀환 반대’ 청원이다. 지지자들은 베이조스를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작심한 사악한 지배자”라며 “억만장자는 지구 또는 우주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0’이다. 다만 억만장자를 향한 반감과 분노가 이보다 더 섬찟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베이조스뿐 아니다. 세계 2위 부자 일론 머스크와 4위 부자 빌 게이츠도 도마에 올랐다. 머스크는 지난 5월 초 국제해커집단 어나니머스로부터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가 트윗으로 가사통화인 비트코인의 시세를 조종했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트윗에 놀아난 많은 이들이 피해를 봤다. 비슷한 시기 이혼 발표를 한 빌 게이츠는 과거 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친분 등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명성도 한꺼번에 날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을 포함한 미국 최고 부자 25명이 유리한 세제 덕에 엄청난 혜택을 누려온 사실도 드러났다. 탐사전문 매체 프로퍼블리카가 국세청 납세 자료를 입수해 지난달 초 폭로한 걸 보면 25명의 보유재산은 2014~2018년 4010억달러 증가했다. 반면 이들이 낸 연방 소득세는 총 136억달러였다. 평균 3.4%꼴이다. 일반인의 소득세율 14~37%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 특히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며 부유세를 지지해온 워런 버핏은 자선활동에 대한 세금 공제 덕에 실제로 납부한 세율이 0.1%에 불과했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미국인들이 안전하게 집 안에서 지낸 부자들보다 더 큰 비율의 세금을 낸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 최고 갑부들에 대한 비호감과 반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초국가적 권력을 휘두르며 세계를 주물러왔다. 혁신이니 자선이니 하는 것은 미명일 뿐이다. 코로나19는 그 반감을 극대화시켰다.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 탓이다. 세계은행은 하루 1.9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절대빈곤층이 연말까지 최대 1억5000만명 늘어나 7억5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지난해 억만장자는 3228명으로, 전년에 비해 607명 증가했다. 이틀에 3명꼴로 늘어난 셈이다.

 

이런 반감과 분노는 그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베이조스가 만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코로나19로 더 부각됐다. 베이조스는 나흘 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다. 그런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기자동차 테슬라를 만든 머스크에겐 정부 보조금으로 배를 불리면서 비트코인 시세 조종으로 막대한 부를 챙겼다는 비난이 따른다. 어나니머스의 지적대로 그의 행태는 “평범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에 대한 조롱”이었다. 세계 최대 자선단체를 통해 보건과 교육, 기후변화, 코로나19 백신 등 글로벌 현안을 이끌어온 게이츠의 영향력은 국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오죽하면 “게이츠재단과 적이 되지 말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억만장자들에 대한 반감과 분노는 역설적으로 정부의 실패를 보여준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처럼 고삐 풀린 거대 자본에 대한 경고등이 다시 켜졌다.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그때처럼 ‘월가점령운동’을 펼 처지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불매운동 정도다. 마냥 정부에 기댈 수도 없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법인세와 부유세 인상을 밝혔지만 최고 부자들이 빠져나갈 만큼 세제에 구멍이 나 있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최근 페이스북의 시장 지배력을 억제하려는 미 정부의 시도가 실패했다. 억만장자들의 초국가적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지구 귀환 반대 청원이나 어나니머스의 경고가 부질없어 보일지언정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선한 의도로 포장한 억만장자들의 모습을 끝없이 들춰내 경고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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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까지 넷제로(net zoro).’ 현재 지구상에서 이보다 더 뜨거운 구호는 없을 듯하다. 기후변화 위기에서 인류를 구할 유일한 방안인 양 세계가 한목소리로 넷제로를 외친다. 지난 4월22일 지구의날에 열린 기후정상회의는 넷제로 경연장 같았다. 참여국마다 앞다퉈 이산화탄소(CO2) 감축 목표를 상향조정했다. 넷제로는 탄소중립과 같은 말이다. CO2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를 흡수·제거해 실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즉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를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는 상태다. 넷제로는 기술혁신으로 탄소를 감축하겠다는 발상이다. 바탕에 기술 만능주의가 깔려 있다. 넷제로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법하지만 우려도 크다. 넷제로에 인류의 미래를 걸어도 될까.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라면 어떡하나. 과연 넷제로는 요술방망인가, 신기루인가.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가 1988년이다. 그해 6월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처음 과학적으로 규명됐다. 그 후 1992년 리우 선언,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약이 나왔다. ‘지구기온 상승 1.5도 제한’을 위한 CO2 감축은 당면과제가 됐다. 1990년대 중반 관심은 기술혁신을 통한 에너지 효용성 증가와 에너지 전환이었다. 하지만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꿈의 기술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나온 것이 탄소포집저장(CCS)이다. 배출되는 CO2를 모아서 바다 밑이나 땅속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이 또한 여의치 않자 대기 중 CO2를 식물이 흡수하거나 식물체를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이용하는 바이오에너지CCS가 등장했다. 핵심은 방대한 조림이다. 한때 사탕수수로 만든 바이오에탄올과 팜유로 만든 바이오디젤이 유행했다. 하지만 경작지를 갉아먹고, 엄청난 물이 필요하다는 현실에 직면했다. 산림이 사라지면 태양에너지를 더 흡수해 기온이 높아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자 지오엔지니어링이 등장했다. 지구가 태양에너지를 받아 반사하는 비율을 높여 온도를 떨어뜨리는 방안이다. 그리고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라고 권고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지난 30여년간 노력에도 CO2는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2년 리우 선언 이후 CO2 배출량은 오히려 60% 증가했다. 18세기 산업혁명 전 280PPM 수준이던 지구 CO2 농도는 2015년 심리적 저지선인 400PPM을 넘었다. 2021년 4월 현재 419.05PPM다. 안타깝게도 탄소를 줄일 수 있는 기술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설사 실현되더라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2017년 중순 한 보고서는 금세기 말까지 대기 중 CO2 1조t을 CCS로 처리할 경우 535조달러가 든다고 밝힌 바 있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의존한 지금까지의 대응이 잘못됐음에도 여전히 신기루 같은 미래 기술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이 넷제로의 불편한 진실이다.

 

“현재의 넷제로 정책은 전혀 의도하지 않아 지구기온을 1.5도 이내로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정책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렇듯 늘 기후가 아닌 비즈니스를 보호하기 위해 추동됐다. 인류를 안전하게 하고자 한다면 지금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과감하고도 지속 가능하게 줄여야 한다.” 넷제로 신봉자에게는 죽비 같은 말일 터다. 영국과 스웨덴 기후과학자 3명이 지난 4월22일 공개한 ‘넷제로 개념은 위험한 덫이다’라는 글의 마지막 대목이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 입안에 참여해 온 이들의 지적이기에 의미는 작지 않다. 한마디로 넷제로는 몽상이자 사기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정치 지도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4~8년이다. 이들에게 2050년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CO2 감축이 발등의 불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국내 환경운동가들이 탄소를 배출하는 각종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넷제로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지구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할 수 있는 시간은 짧게는 6년7개월, 길게는 13년 남았다고 한다. 2050년 넷제로는 너무나 먼 목표다. 녹색연합 공동대표 조현철 신부는 5월31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성장을 추구하면서 탄소중립에 필요한 과감한 감축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넷제로’냐, ‘지금 당장 전환’이냐는 고민거리가 아니다. 누가 30년 후 미래를 점치는 도박에 돈을 걸겠는가. 늦지 않았다. 넷제로라는 신기루를 좇기보다 CO2 감축으로 정책 방향을 즉시 전환해야 한다. 넷제로가 희망고문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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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말 취임 100일을 맞아 한 의회 합동연설에 이런 대목이 있다. “부모들이 싸웠던 전쟁에서 지금 복무 중인 병사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9·11테러 때 태어나지 않은 병사들이 있다.” 아프간 전쟁이 세대를 관통할 만큼 오래됐다는 의미다. 바이든으로서는 9·11테러 20주년이 되는 올해 9월11일까지 철군하겠다고 한 보름 전 약속을 재강조한 것이다. 9·11테러 주범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프간전은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럼 예정대로 철군한다면 아프간전은 끝나는 걸까. 흔히 전쟁을 끝내겠다는 정치인의 약속은 거짓말이라고 한다. 바이든의 철군 약속도 마찬가지다. 설사 철군하더라도 미국이 완전히 발을 빼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전쟁의 외주화다. 용병 같은 계약자들이 미군을 대신할 것이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드론을 활용한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드론전쟁은 대통령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군최고사령관에 빗대 ‘암살사령관’으로 불릴 정도다. 조지 W 부시가 시작했지만 버락 오바마는 부시보다 10배나 많이 드론을 활용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4년 동안 활용한 것은 오바마 정부 8년치를 능가한다. 그만큼 드론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이 돼가고 있다. 이점도 많다. 파병보다 비용이 저렴하며, 미군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결정적인 문제도 있다. 민간인 사상자를 낳고, 레이더망으로 잘 포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드론을 포착하는 시스템, 드론에 대항하기 위한 드론, 나아가 인공지능(AI) 드론 개발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드론전쟁 지휘는 전장에서 1만㎞ 이상 떨어진 본토 네바다주 공군기지 내 지상작전통제부에서 이뤄진다. 드론 조종사들은 중동 내 공군기지나 걸프만의 항공모함에 배치된 드론을 원격으로 조종해 목표물을 타격한다. 끝없는 분석을 통해 목표를 설정한다지만 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는 조종사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3만5000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한다는 건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다는 것, 비명소리도 듣지 못하고, 피도 보지 못하고, 토막난 시체도 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현대의 전쟁에서, 원거리에서 잔학행위가 자행되는지, 저는 아주 잘 압니다. 제가 그때 바로 이런 일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 폭격수로 참전한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 하워드 진(1922~2010)의 고백이다. 그는 나치 독일이 패전하기 3주 전 프랑스 남서부 루아양 지역으로 출격했다. 그곳엔 고립돼 종전만 기다리던 독일군 수천명이 있었다. 훗날에서야 이 작전에 폭격기 1200대가 동원됐고, 민간인 1000명 이상이 사망한 사실을 알았다. 하워드 진처럼 당시 폭격수는 지상의 참상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타인의 생명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 없이 폭탄 투하 단추를 누를 수 있었다. 드론 조종사는 폭격수와 달리 모니터로 참상을 지켜봐야 한다. 그래도 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를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초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전쟁지역 밖에서 테러용 드론 사용 시 백악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임시 조처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드론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의미다. 백악관은 바이든 취임 이후 드론 공격을 중단했다고 한다. 비록 아프간에서는 드론 공격을 계속할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지만 취임 후 이어지고 있는 ‘바이든 평화 행보’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바이든은 지난 2월 사우디가 주도하는 예멘 전쟁 지원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3월엔 ‘영원한 전쟁’의 백지수표인 대통령의 무력사용권(AUMF) 폐기·대체 방안을 의회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이 드론전쟁을 끝낼지는 알 수 없다. 하워드 진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침략에 맞서기 위해,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싸운다는 주장은 전쟁을 지지하도록 동원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이라고 했다. 바이든이 내세우는 최대 자랑은 44년을 연방상원의원·부통령으로 지낸 공직 경험이다. 미국의 문제를 누구보다도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미국 시스템에 깊숙이 몸담고 있어 쉽게 발을 뺄 수 없다는 뜻도 된다. 바이든이 ‘돌아온 미국’ 약속을 지키려면 드론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전쟁을 끝낸다는 것은 단지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전쟁은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인프라스트럭처나 다름없다. 국방예산 감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프간 철군도, 드론 정책 재검토도 빈말일 뿐이다.


Posted by em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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