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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대통령의 사과(170607)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사과를 가장 많이 했다. 그의 사과는 당선인 신분 때부터 시작됐다. 취임 일주일 전인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하자 사흘 뒤 사과했다. 2004년 탄핵 사태 당시 헌재가 탄핵 소추안을 기각하자 다음날 대국민사과를 했다. 형 건평씨의 부동산 의혹, 경찰 과잉진압에 따른 농민 사망 사건 등 고개를 숙여야 할 때마다 마다하지 않았다. 제주 4·3사태에 대해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라며 여러 차례 사과했다. 노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과 소통하고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늘 회피·늑장 논란을 불렀다. 우선 ‘대독(대리) 사과’. 첫 사과는 2013년 취임 후 김용준 총리 후보자 등 장차관급 6명이 도덕적 결격 사유로 낙마한 ‘인사 참사’ 때다. 당시 사과문은 허태열 비서실장 명의였고, 김행 대변인이 대신 읽어 비난을 샀다. 그해 5월 미국 방문 중 일어난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태’ 때는 이남기 홍보수석이 대독했다. 2015년 4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된 이완구 총리 인선과 관련해 사과 요구를 받았을 때는 김성우 홍보수석이 대신 읽었다. 그해 메르스 사태 때는 삼성서울병원장이 먼저 대리 사과를 했다. ‘녹화 사과’도 있다. 지난해 10월 말 ‘최순실 의혹’이 터졌을 때 나온 첫 번째 사과는 생중계가 아닌 미리 녹화한 내용을 틀어 물의를 빚었다. 세월호 참사 때는 ‘늑장 및 간접 사과’라고 비난 받았다. 참사 발생 14일 만에, 국무회의 자리에서 했기 때문이다. 성수대교 참사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3일 후, 화성씨랜드 화재 사고 때 김대중 대통령이 사고 다음날 사과한 것과 대비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대통령 사과 발언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피해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참사 이후 ‘국가 차원의 사과’ 언급은 처음이다. 환경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는 피해자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일이자 사태 해결의 첫걸음이다. 사과의 생명은 타이밍과 진정성이다. 이른 시일 안에 피해자 인정 기준 확대와 재발 방지 등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문 대통령의 사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062042005&code=990201#csidx6866f5f5b7703a18287a75118f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