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흑색 표지' 타임지(200914)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의 상징은 ‘붉은색 표지 테두리’다. 창간 4년 뒤인 1927년 도입돼 2001년 ‘9·11 테러’ 전까지 예외 없이 지켜졌다. 9·11 직후 제작된 호외판 테두리는 검은색이었다.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규호 테두리는 다시 붉은색으로 돌아왔다. 그 후 표지 테두리에는 녹색과 은색도 등장했다. 녹색은 2008년 ‘지구의날’ 기념호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쓰였다. 은색은 9·11 10주기에 처음 등장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올해의 인물’(2012년)로 선정했을 때,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을 선정(2016년)했을 때까지 세 차례 선보였다.

타임의 파격적인 편집은 표지 테두리 색깔 변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5월 말에는 처음으로 테두리에 문자가 들어갔다. 백인 경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다루며 붉은색 테두리에 흑인 35명의 이름을 넣었다. 플로이드를 비롯해 경찰의 인종차별적 공권력 남용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타임은 인류나 미국의 적이 사망했을 때 그들의 얼굴에 붉은색으로 ‘X’자를 긋는 편집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돌프 히틀러(1945년), 오사마 빈라덴(2011년) 등 모두 다섯 차례 있었다.

타임 표지 테두리에 9·11 이후 처음으로 검은색이 둘러졌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수 20만명을 앞두고 제작된 미국판 최신호(9월21·28일자)다. 검은색 표지 바탕엔 흰색 굵은 글씨로 ‘200,000’이란 숫자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그 밑엔 첫 사망자가 나온 2월29일부터 최신호 제작 직전인 9월8일까지 날짜와 사망자수가 깨알처럼 쓰여 있다. 하단엔 붉은색으로 ‘미국의 실패’라고 작게 쓴 글씨를 배치했다. 에드워드 펠센탈 타임 편집장은 “미국은 곧 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명이라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지점을 넘어선다”고 밝혔다. 베트남전에서 교전 중 사망한 병사수보다도 세 배 이상 많은 숫자다. 13일 현재 미국인 사망자는 19만8000여명이다. 이 표지를 만든 아티스트 존 마브로디스는 “이번 표지가 대참사에 무감각한 이들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언젠가 코로나19 종식이 선언되는 날, 타임은 표지 테두리에 어떤 색깔을 입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