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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이란의 한국 유조선 나포, 정부는 조기 석방 최선 다하라(210106)

한국 국적의 유조선이 지난 4일 걸프만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에 나포됐다. 외교부는 이란 남부항에 억류 중인 한국인 5명 등 선원 20명은 안전하다고 5일 밝혔다. 아직 피랍 경위와 이란의 의도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선원과 선박의 안전과 조기 석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외교부는 피랍 선박이 이란 당국의 조사 요청으로 나포·억류됐다고 했다. 이란이 무엇을 조사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해당 선박은 해양오염에 대해 조사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조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랍 선박이 이란의 해양오염 규정을 위반한 것이 사실이라면 상응하는 처벌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항해 중인 선박을 나포·억류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유조선이 반복적으로 해상이 오염되게 했다는 것인데 믿기 어렵다. 과도한 대응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가 한국 내 은행에 동결된 이란 중앙은행의 자금 문제와 관련이 있다면 더욱 유감스럽다. 이란은 그동안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이란과 교역 및 금융거래를 중단한 것에 불만을 드러내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JCPOA) 탈퇴로 재개된 제재 때문에 한국으로부터 석유 수출 대금 약 70억달러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이 제재를 풀지 않는 한 한국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은 이란이 더 잘 알 터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번 나포가 핵협상 재개를 앞두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점이다. 조 바이든 당선자가 이란 핵합의 복원을 공약한 바 있는 만큼 향후 미국과 협상할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이란의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이는 이란의 오판이다. 선박 피랍 당일 나온 ‘우라늄 농축 농도 20% 상향 작업 시작’ 소식은 핵협상과 제재 해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꾸로 중동 긴장을 높이며 국제사회를 분노케만 하는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이란 핵협상을 재개할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까지 보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정부는 외교력을 발휘해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미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 복원 약속이 조속히 이행되지 않으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다. 정부는 오는 10일 이란을 방문하는 최종건 외교 1차관을 통해 이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