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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16] 1861년 링컨, 2021년 바이든(210114)

1861년 3월4일.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 16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해 워싱턴 의회 의사당 앞에 섰다. 노예제 폐지를 두려워한 7개주는 이미 연방 탈퇴를 선언한 터였다. 내전의 그림자가 감돌았다. 연방 유지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는 취임사에서 연방이 헌법 이전에 형성된 사실을 상기시키며 연방 수호를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취임사는 남부 연방 탈퇴자들을 향한 호소였다. “내전이라는 중대한 문제는 제 손이 아니라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정부는 여러분을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 여러분은 정부를 파괴하겠다고 하늘에 맹세하지 않았지만 나는 ‘정부를 보존하고 보호하고 수호하겠다’는 가장 엄숙한 선서를 할 겁니다. (…)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입니다. 우리가 적이 돼서는 안 됩니다. 비록 감정이 격앙되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때문에 애정의 유대가 끊기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링컨의 호소에도 미국은 한 달 뒤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2021년 1월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추종자들이 의회 의사당을 공격해 4시간 동안 점령했다.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대통령, 공화당 지도자, 극우 언론의 합작품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점령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애국자’라며 감쌌다. 의사당에서 숨진 30대 여성 참전용사 애슐리 버빗은 ‘순교자’로 추앙됐다. 공화당 상원의원 8명·하원의원 137명은 그럼에도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친트럼프 극단주의자들이 미 전역에서 의회 장악을 위한 무장 봉기를 계획한 사실도 드러났다. 만약 이들이 좀 더 조직화됐더라면.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어쩌면 미국의 역사가 2021년 1월6일 전후로 나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의회 점령 사태 이후 새로운 내전의 기운이 미국을 다시 휘감고 있다. 트럼프를 탄핵하고 체포해 선동 혐의로 기소하라는 요구가 한쪽에서 들끓는다. 총기판매점 앞에는 총을 사려는 이들로 장사진이다. 지난해 미국인의 총기 구입건수는 역대 신기록을 세웠다. 바이든 취임 후 총기규제 강화 우려와 사회 불안이 빚은 결과다. 미 하원은 내란 선동 혐의로 트럼프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트럼프로서는 두 번째 ‘탄핵 치욕’이지만 내전의 방아쇠가 될 수 있는 불길한 조짐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지고 중심은 힘을 잃어 (…) 최선의 무리들은 신념을 잃었고, 최악의 인간들은 열렬한 격정에 차 있다.”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거나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자주 소환되는 시구다. 아일랜드 시인 WB 예이츠의 ‘재림(The Second Coming)’ 구절이다. 예이츠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조국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에 들어가는 혼돈의 시기에 이 시를 썼다. 현재 미국의 상황이 그렇다. 트럼프가 한때 재림의 주인공으로 환영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7400만명이나 확인된 점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혼란은 트럼프가 자초했다. 그가 남긴 4년의 해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미국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트럼프도 파멸했다. 최대 선동 무기인 트위터 계정은 폐쇄됐다. 2024년 대선 출마 꿈도 날아갔다. 리얼리티쇼 복귀를 꿈꿀 수 있겠지만 그가 설 곳은 법정이 될지도 모른다. 국정 운영의 한 축인 공화당 책임도 크다. 괴물 트럼프를 만든 것은 미치 매코넬, 린지 그레이엄, 테드 크루즈 같은 공화당 지도부였다. 이들은 트럼프가 ‘병적인 거짓말쟁이’이고, 현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결국 미국을 파괴할 것을 일찌감치 알고도 맞장구를 쳤다. 의회가 점령되고서야 공화당 안에서 트럼프와의 결별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주권자들의 단호한 심판이 없다면 이 같은 일은 반복될 게 뻔하다.
 
취임 엿새를 앞둔 바이든의 심경은 160년 전 내전 위기에 직면한 링컨과 다르지 않을 터이다. 그 앞에는 트럼프가 불질러 놓은 분열과 혼돈이 놓여 있다. 링컨의 취임 메시지는 단호했다. 다수결 원칙을 배척하다면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수가 진정한 주권자라는 점, 이들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에게 정부 수호 의무가 있다는 점도 정확히 알았다. 링컨은 통합을 꿈꿨다. 그러나 갈라진 민심 앞에 그의 지혜는 소용없었다. 과단성 있는 행동이 답이었다. 바이든은 취임식에서 ‘통합된 미국’을 강조할 것이라고 한다. 연방 수호를 위해 전쟁을 불사한 링컨처럼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단호히 맞서 국가를 수호하지 못하면 그의 통합 메시지는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