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일생의 아픔이었다”는 학교 폭력 피해자들의 절규(210215)

여자배구 국가대표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사건이 설 연휴를 달궜다. 두 선수는 지난해 1월 한국 여자배구의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끈 주역이고 팬도 많아 사회적 충격이 작지 않다. 학폭 논란은 남자배구와 가수 선발무대까지 이어지며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초유의 위기에 빠진 배구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학폭 문제를 심각히 직시하고 특단의 대책을 세울 때가 됐다.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폭 논란은 지난 10일 중학교 시절 숙소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A씨가 자신을 포함해 최소 4명이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자매는 학폭을 시인하는 성명을 내고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자숙하고 반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소속사 흥국생명의 대응이 불만스럽다며 추가 폭로가 나오고, 이들의 제명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제기됐다. 설상가상으로 남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의 송명근과 심경섭도 학폭 가해자로 고발돼 사과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학폭 논란도 있었다. 이달 초 JTBC <싱어게인> 결승전 당일에는 톱6에 오른 가수 요아리의 학폭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말에는 TV조선의 <미스트롯2>에 나온 가수 진달래가 학폭에 연루돼 중도하차했다. 아픔을 품고 사는 피해자가 적지 않은 셈이다.

배구계 학폭 사태는 집단생활을 하는 학교 운동부의 일상화된 폭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전국 초·중·고 학생선수 6만여명의 인권상황을 전수 특별조사한 결과 14.7%가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79.6%는 신고조차 하지 않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이번 사태는 스포츠계나 연예계 스타들의 과거 학폭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에서 시사하는 게 크다.

배구계는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팬들은 구단, 연맹, 협회 측의 징계 수위를 지켜보고 있다. 구단은 가해자들이 사과했다는 이유로 미온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연맹과 협회는 배구계의 존립이 걸려 있다는 각오로 엄중한 징계와 재발방지책을 내놓아 학폭 연루자는 설 자리가 없다는 교훈을 심어줘야 한다. 팬들이 외면하면 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다. 교육 당국은 학교 운동부의 폭력 실태를 재점검하고 학생선수의 인격 수양에도 각별히 신경 쓰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