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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신진 재벌의 기부(210219)

기부의 선구자 빌 게이츠 부부와 워런 버핏이 2010년 만든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는 억만장자들의 자선클럽이다. 자산은 10억달러(1조1000억원)가 넘어야 가입할 수 있고, 가입자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 기부는 살아 있는 동안에 해도 되고 사후에 할 수도 있다. 그동안 24개국에서 모두 218명이 이 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 3월 기준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2095명) 비율로 보면 약 10%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가입자는 최근 세계 최고 부자로 올라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래리 엘리슨 오러클 회장 등이다. 세계 2위 부자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돈이 많다고 누구나 가입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부와 명예의 전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클럽 가입자에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동아시아 국가 출신이 유독 적다는 점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억만장자가 두 번째로 많은 중국(대만과 홍콩 포함)만 가입자가 있을 뿐 일본, 싱가포르, 한국은 한 명도 없다.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에 한국인 28명, 일본과 싱가포르 각 26명이 오른 것에 비하면 빈약하다. 보편화되지 못한 기부문화 탓으로 보인다.

 

드디어 ‘더기빙플레지’에 한국인 가입자가 탄생했다. 국내 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45) 부부가 재산의 절반인 5000억원을 내기로 했다. 열흘 전에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55)이 재산의 절반(5조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이들의 기부는 여러모로 종전과 다르다. 기부 규모도 크지만 기부 동기가 더 신선하다. 김봉민은 “부를 나눌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했다. 김범수는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물려받은 부를 내놓은 기존 재벌들과 달리 당대에 자수성가로 일군 성공의 결실을 아낌없이 던졌다. 그것도 한창 일할 나이에. IT 창업성공 신화를 넘어 새로운 기부문화까지 일궈낸 두 사람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런 기부는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