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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아파트 택배 대란(210409)

한국인 삶에서 아파트와 택배는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전국 총 주택 가운데 아파트의 비율은 62%다. 지난해 택배 물량은 34억개로, 1인당 65개꼴이다. 전년에 비해 21%나 증가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이 가장 큰 원인이다. 갈수록 아파트도, 택배 물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결합해 새로운 사회 문제를 낳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아파트 택배 대란이다.

2018년 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진 택배 대란이 최근 재현됐다. 5000가구 규모의 서울 아파트 단지가 이달 초 택배 차량의 출입을 금지했다. 손수레로 각 가구까지 배송하거나 지하주차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라고 택배기사들에게 통보한 것이다. 택배노조는 이에 반발해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만 배송하고 가구 배송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과 판박이다. 3년이 지나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택배 대란이 일어나는 아파트의 공통점은 ‘차 없는 아파트’다. 입주민으로는 안전과 쾌적함을 보장받고, 아파트값 상승 혜택까지 누릴 수 있어 일석삼조다. 문제는 지하주차장 입구 높이다. 택배 차량의 높이(2.5~2.7m)에 비해 낮은 2.3m다. 입주민의 요구대로 지하주차장에 대고 싶어도 댈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택배 대란 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1월 2.7m 이상으로 관련법을 개정했다. 이 법이 적용되기 전에 지어진 아파트가 문제인 셈이다.

 

택배 대란의 피해자는 입주민과 택배기사 모두다. 입주민들은 당장 택배물을 직접 수거해야 하는 등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택배기사들도 입주민 요구대로 한다면 손수레를 끌고 배달하거나 저상차량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러나 손수레를 쓸 경우 배송시간이 증가하고, 저상차량 교체 시 비용 증가뿐 아니라 몸을 숙인 채 작업을 해야 해 신체적 부담도 커진다. 과로사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역행하는 일이다. 택배기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택배 없이 살 수 없다면 슬기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상생 정신이 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