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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이번엔 해군 부사관 성추행 사망, 이러고도 군이라 할 수 있나(210814)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해군에서도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해군 A중사는 지난 5월 말 부대 밖 식당에서 직속 상관과 식사하던 중 성추행을 당했다. A중사는 외부에 유출하지 말아달라며 주임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가 사건 발생 두 달 보름 후인 지난 9일 피해 사실을 정식으로 신고했다. 그리고 피해자와 분리조치한 지 사흘 만인 지난 12일 숨졌다. 공군 여중사 사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지 석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군 내에서 같은 사건이 재발한 데 대해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있어야 한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은 지난 5월 공군 중사 사망과 흡사하다. 해군 중사는 피해 발생 두 달여 후 극단적 선택을 했고, 이 과정에서 2차 가해 등이 있었던 정황이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A중사는 부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가해자가) 일해야 하는데 자꾸 배제했다”고 호소했다. 또 사건 가해자는 사과한다며 피해자를 불러 술을 따르게 했는데, 이를 거부하자 ‘술을 따라주지 않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며 악담까지 했다고 한다. 피해자 A중사는 분리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가해자와 74일 동안 같은 공간에서 근무해야 했다. 아무리 피해자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다고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이다.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을 확대해석한 것은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 서욱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에는 성추행 피해 발생 76일 만인 지난 11일에서야 최초로 보고됐다. 군인복무기본법은 성추행이 발생하면 곧바로 보고하게 돼 있으나 부대관리훈령은 피해자 의사에 반하면 못하게 돼 있어 빚어진 일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이 되지 않는 안이한 대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사건 보고를 받고 격노하며 국방부에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사건이 벌어진 당시는 군이 성폭력 피해 특별 신고기간으로 정해 성폭력 근절에 나선 때였다. 군 내 성폭력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고 군은 성범죄 근절을 다짐하며 재발 방지에 나선 시기였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어이가 없다. 군이 그동안 국민을 상대로 성폭력 사건 재발 방지와 신속한 조사 및 피해자 보호 등을 약속한 것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군은 이미 스스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한 점 의혹을 남기지 않는 진상규명이다. 그리고 서욱 장관과 군 지휘부는 이 사태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