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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위기의 꿀잠(211106)

“전남 여천군 소라면 쌍봉리 끝자락에 있는/ 남해화학 보수공장 현장에 가면, 지금도/ 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 유류탱크 밑 그늘에 누워 선잠 든 사람들 있으리….” 송경동 시인의 시 ‘꿀잠’ 첫 부분이다. 시인이 젊은 시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고단한 현실을 담은 것이다. 잔업과 철야로 부족한 잠을 메우기 위해 점심시간에 선잠을 잘 수밖에 없지만 그들에겐 그야말로 꿀잠이었을 터이다. 노동자에게 꿀잠만큼 달콤한 것은 없다. 그러나 해고노동자들에게 꿀잠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들이 있을 곳은 길바닥이나 천막, 아니면 저 높은 굴뚝이나 철탑, 크레인, 전광판 등이다. 한여름 땡볕에도, 한겨울의 살을 에는 추위에도 한뎃잠을 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투쟁과 해고로 지친 몸을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바람으로 탄생한 것이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이다. 고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를 비롯해 시민 2000여명의 도움으로 2017년 8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문을 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에 시민사회가 연대한 결실이었다. 이 꿀잠은 비정규직 노동자뿐 아니라 해고노동자, 희생자 가족의 보금자리이자 연대의 공간이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고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도 사랑하는 이를 보낸 뒤 상경투쟁을 할 때 이곳에 머물며 힘겨운 투쟁을 이어갈 힘을 얻었다. 설립 후 매년 4000명이 이용한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신적 보루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꿀잠이 재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꿀잠이 터잡은 지역에 지난해 3월 재개발조합 설립 인가가 떨어지면서다.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대책위원회가 영등포구청과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존치 운동을 벌였지만 무위에 그치고 있다. 꿀잠의 공공적 기능을 인정하고 공간 존치를 계획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한 구청과 조합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꿀잠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한 공간이 없어지는 차원을 넘는다.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역사와 그 현장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일이다. 꿀잠이 “투기와 욕망의 폭주기관차”가 돼버린 부동산 재개발에 희생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