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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이례적으로 핵전쟁 방지 결의한 5개국, 실천에 옮겨야(220105)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핵무기 보유 5개국 정상들이 3일(현지시간) 핵전쟁과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정상들은 공동성명에서 “핵무기 보유국 간의 전쟁 방지와 전략적 위험 저하를 우리의 우선적 책임으로 간주한다”면서 핵무기의 방어적 목적 사용, 핵무기 추가 확산 예방,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 준수 등을 강조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핵 보유 5개국이 한목소리로 책임을 강조한 것은 의미가 크다. 

핵 보유 5개국이 핵전쟁 방지 책임을 강조하고 방어적 목적의 핵무기 사용으로 제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주목할 것은 이번 공동성명이 우크라이나와 대만해협에서 미·유럽과 중·러의 대립이 신냉전을 방불케하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이번 공동성명이 두 분쟁 위험과 직접 관계가 없더라도 긴장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과거 공동성명이 NPT 밖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란과 북한 등을 규탄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핵 보유국들의 책임을 강조했다는 것이 이 점을 도드라지게 한다. 5개국이 핵 전쟁 방지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핵 없는 세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계이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에 있는 핵탄두는 약 1만3000기로, 이 가운데 미·러가 90%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공동성명의 한계는 있다. 무엇보다 국제법적 효력이 없다. 또 공동성명이 실질적인 핵무기 감축과 핵무기 현대화 작업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실제로 중국은 공동성명 불과 몇 시간 뒤인 4일 미·러에 핵무기 감축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핵무기 현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중국이 현재 350기인 핵탄두를 2027년까지 700기, 2030년까지 1000기로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러 또한 2025년까지 핵탄두 수를 각각 1550기로 제한하기로 했지만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공동성명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명분을 약화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 현재 논의 중인 이란핵합의 복원 협상을 촉진해 중동 평화를 앞당길 수도 있다. 5개국 정상들은 공동성명의 이행을 넘어 실질적인 핵무기 감축 노력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국제사회도 이를 압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