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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한·중관계 민감성 보여준 베이징 올림픽 한복 입장 논란(220207)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 입은 여성이 등장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내 56개 민족 대표자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장면에 흰색 저고리에 분홍색 치마 차림의 조선족 여성이 등장한 것이다. 사전행사에서는 조선족 자치주가 있는 지린성에서 한복 입은 조선족들이 장구를 치고 상고 돌리기를 하는 영상이 소개됐다. 이를 두고 누리꾼과 정치권은 한국 고유의 문화를 중국 전통문화라고 주장하는 ‘문화공정’의 연속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개회식에 조선족이 한복 차림으로 등장한 것 자체로 비난하기는 어렵다. 각 민족을 표현하는 차원에서 조선족을 대표하는 복식으로 한복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조선족이 우리 민족의 문화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복이 중국의 고유문화인 것처럼 비칠 수 있고, 이것이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할 여지는 있었다. 이런 반응에는 배경이 있다. 중국은 2000년대 발해·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귀속시키려는 동북공정에 이어 2010년대부터 한복, 김치 등 한국 전통문화까지 중국 것으로 둔갑시키는 문화공정을 벌여왔다. 최근 일부 중국 내 국수주의자들은 한복을 명나라의 ‘한푸’를 계승한 복장이라고 주장하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속의 한복, 중국 드라마와 예능 등에 등장하는 한복을 한푸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즉 중국 내 일부 국수주의자들의 과도한 주장이 한국 내 반중·혐중 정서를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는 6일 한복 논란에 대해 “중국 측에 고유한 문화에 대한 존중과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한 이해 증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이런 노력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한복을 문화공정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것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외교당국은 국내의 이런 우려를 중국 측에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최근 양국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서로에 대한 반감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순수한 자부심을 넘어선 중국 우월주의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의 고유문화를 존중한다는 원칙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한국 시민들도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감정적 대응은 양국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정치권은 논란을 키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국관계를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두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