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13/검은 대륙에 부는 ‘빵과 자유’ 바람

아프리카 대륙이 연초부터 ‘빵과 자유’를 향한 투쟁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그 진원지는 튀니지와 수단이다. 지중해 연안의 튀니지에서는 ‘민중혁명’이 진행 중이다. 튀니지 혁명은 빵을 향한 투쟁의 전형이다. 식민시대 종식 이후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민중에 의한 첫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의의도 있다. 주변 아랍국가들이 혁명의 열기에 감염돼 들썩거릴 정도로 파급력도 강하다. 최근 분리독립 투표를 마친 수단 남부는 자유를 향한 투쟁의 본보기다. 오는 7월이면 아프리카의 54번째 주권국가, 193번째 유엔 가입국이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된다.


빵과 자유를 향한 투쟁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에서 튀니지와 수단 이야기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프리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다른 어느 곳보다 빵과 자유에 목마른 지역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피와 눈물만 있었을 뿐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존도 없고, 민주화의 바람조차 비켜간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다.

        튀니지 시민들이 구체제 인사의 과도 정부 참여 배제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향DB)수단과 튀니지는 아프리카의 모순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수단은 기아와 내전의 대명사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탤런트 김혜자씨와 질병퇴치에 헌신해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로도 씻을 수 없는 사실이다. 튀니지는 독재와 부패, 굶주림의 온상이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촬영지라는 사실로도 감출 수 없다. 두 나라에서 시작된 바람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수단 분리독립 투표를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아프리카의 긴 여정에서 고무적인 조치”(뉴욕타임스 1월9일자 기고문)라고 언급했다. 수단에서 시작된 자유의 바람이 아프리카의 비극과 모순을 해결할 태풍이 되길 갈구하는 서방의 염원이 담겨 있다. 튀니지와 수단 국민들이 빵과 자유를 갈망하고, 서방이 이를 찬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식민시대 종식 이후 나이지리아(비아프라), 앙골라(카빈다), 소말리아(소말릴란드), 모로코(서사하라) 등지에서 분리독립 바람이 불었지만 성공한 사례는 1993년 5월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한 에리트레아가 유일하다. 그만큼 자유의 길은 험난하다. 전문가들은 다음 독립국가 후보로 소말리아 내 자칭 독립국가인 소말릴란드를 주목하고 있다. 91년 5월 독립을 선언한 소말릴란드는 지난해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았지만 국제사회 누구로부터도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해온 터다. 아프리카는 쿠데타의 땅이었지, 시민혁명의 땅은 아니었다. 튀니지발 혁명은 ‘도미노 효과’를 기대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프리카에서 시민혁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웅변한다.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수단과 튀니지 내부 문제다. 신생 독립국의 자립의 길이 얼마나 멀고도 험한지는 코소보와 동티모르 사례가 잘 보여준다. 수단 남부는 석유가 풍부하지만 국가를 운영할 만한 기술은 부족한 상태다. 이는 국가건설 과정에서 외부세력에 의존해야 하며, 이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미국과 중국의 아귀다툼 속에서 수단인만 희생자로 전락하는 일은 최악이다. 튀니지 앞날에도 정치불안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새 정치세력 간 권력투쟁이 국민들의 열망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예정된 민주화 일정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정치적 안정을 찾기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수단과 튀니지에서 시작된 이 변화의 바람이 국지풍에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인의 오랜 눈물을 말려줄 거대한 태풍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