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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아침을 열며

아침을열며17/석방 논란 버그달은 반역자인가

미국이 탈레반과 포로 맞교환을 하다니. 지난달 3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잡힌 보 버그달 병장의 석방을 위해 관타나모 수용소의 탈레반 포로 5명을 풀어주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람보 영화에서도 보듯 적에게 잡힌 병사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구해내는 것을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여기는 나라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조국을 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포로가 된 병사가 5년 만에 석방된다는 소식에 ‘영웅의 귀환’이라며 기뻐하던 분위기가 돌변했다. 버그달과 그의 가족은 물론 오바마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오바마 행정부가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했느니, 의회에 통보하는 절차를 어겼다느니, 버그달은 영웅이 아니라 탈영병이자 반역자라느니….

버그달 석방 논란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지만 이번 논란이 정당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논란 속에 국민의 의무와 국가의 역할, 국가안보와 개인의 자유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선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보자. 미국 등 서방은 테러리스트가 자국민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요구할 때마다 이 원칙을 내세웠다. 과연 그럴까. 2011년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5년간 억류된 병사 한 명을 석방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죄수 1027명을 풀어줬다. 한 명을 위해 1027명이라니. 1 대 5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비대칭 교환이었다. 이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말로는 아무도 안 그런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렇게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둘째, 오바마는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 테러용의자를 석방할 때 의회에 30일 전에 통보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겼다. 그 이유로 버그달의 건강 악화를 들었다. 이유 치고는 궁색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한 명의 병사라도 적진에 남겨둬서는 안되는 책무를 진 대통령으로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다른 속셈은 없었을까. 2009년 취임 첫날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돌파하려 한 게 아닌가 여길 수도 있겠다. 셋째,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는 탈영병 논란이다. 지금은 탈영병 논란을 넘어 반역자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살해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놀라운가.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2011년 미국은 예멘계 미국인 안와르 알올라키와 16살 난 그의 아들을 무인비행기로 표적살해했다. 미국인이지만 알카에다 지도자인 그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반역자 논란은 지난해 국가안보국 비밀정보를 공개한 에드워드 스노든 사례에서도 보듯 강경 보수파들의 단골 레퍼토리다.

보 버그달


본질이 이럴진대도 논란이 확산되는 데는 오바마의 태도와 공화당의 이중잣대와 관련이 있다. 보수파들은 오바마가 버그달 석방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못마땅해 한다. 백악관에서 버그달 부모까지 대동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으니 그럴 법도 하겠다. 그러나 처음이 아니다. 오바마는 2011년 5월 9·11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사실을 한밤중에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했다. 보수 정치인과 언론은 오바마가 패배라 할 수 있는 일을 승리로 포장하고 있다며 득달같이 비판하지만 억울해할 것은 없다. 대통령의 치적 홍보는 미국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쪽에서 이 같은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전술적 실패라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오바마는 보수파의 공세에도 꿈쩍도 않는다. 논란 와중에 프랑스에서 NBC 방송과의 단독 인터뷰를 한 오바마는 똑같은 기회가 온다면 다시 하겠다고 했다. 공화당의 이중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버그달 석방문제만 놓고 보면 먼저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한 한 쪽은 공화당이었다. 더욱이 미군 약 7000명과 10만명이 넘는 민간인을 희생시킨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한 원죄도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권에 있다.

버그달로서는 자신의 석방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불편할 터이다. 그가 이적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랬다면 조국이 그를 구하지 않았을 테니까. 탈영·반역자 논란도 본질이 아니다. 입대한 뒤 전쟁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국가가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보라고 가르치는 미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에 따라 입대한 청년이 이렇게 취급받는 것은 아무래도 부당하다.


조찬제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