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탈레반과 포로 맞교환을 하다니. 지난달 3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잡힌 보 버그달 병장의 석방을 위해 관타나모 수용소의 탈레반 포로 5명을 풀어주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람보 영화에서도 보듯 적에게 잡힌 병사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구해내는 것을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여기는 나라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조국을 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포로가 된 병사가 5년 만에 석방된다는 소식에 ‘영웅의 귀환’이라며 기뻐하던 분위기가 돌변했다. 버그달과 그의 가족은 물론 오바마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오바마 행정부가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했느니, 의회에 통보하는 절차를 어겼다느니, 버그달은 영웅이 아니라 탈영병이자 반역자라느니….

버그달 석방 논란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지만 이번 논란이 정당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논란 속에 국민의 의무와 국가의 역할, 국가안보와 개인의 자유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선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보자. 미국 등 서방은 테러리스트가 자국민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요구할 때마다 이 원칙을 내세웠다. 과연 그럴까. 2011년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5년간 억류된 병사 한 명을 석방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죄수 1027명을 풀어줬다. 한 명을 위해 1027명이라니. 1 대 5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비대칭 교환이었다. 이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말로는 아무도 안 그런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렇게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둘째, 오바마는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 테러용의자를 석방할 때 의회에 30일 전에 통보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겼다. 그 이유로 버그달의 건강 악화를 들었다. 이유 치고는 궁색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한 명의 병사라도 적진에 남겨둬서는 안되는 책무를 진 대통령으로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다른 속셈은 없었을까. 2009년 취임 첫날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돌파하려 한 게 아닌가 여길 수도 있겠다. 셋째,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는 탈영병 논란이다. 지금은 탈영병 논란을 넘어 반역자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살해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놀라운가.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2011년 미국은 예멘계 미국인 안와르 알올라키와 16살 난 그의 아들을 무인비행기로 표적살해했다. 미국인이지만 알카에다 지도자인 그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반역자 논란은 지난해 국가안보국 비밀정보를 공개한 에드워드 스노든 사례에서도 보듯 강경 보수파들의 단골 레퍼토리다.

보 버그달


본질이 이럴진대도 논란이 확산되는 데는 오바마의 태도와 공화당의 이중잣대와 관련이 있다. 보수파들은 오바마가 버그달 석방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못마땅해 한다. 백악관에서 버그달 부모까지 대동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으니 그럴 법도 하겠다. 그러나 처음이 아니다. 오바마는 2011년 5월 9·11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사실을 한밤중에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했다. 보수 정치인과 언론은 오바마가 패배라 할 수 있는 일을 승리로 포장하고 있다며 득달같이 비판하지만 억울해할 것은 없다. 대통령의 치적 홍보는 미국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쪽에서 이 같은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전술적 실패라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오바마는 보수파의 공세에도 꿈쩍도 않는다. 논란 와중에 프랑스에서 NBC 방송과의 단독 인터뷰를 한 오바마는 똑같은 기회가 온다면 다시 하겠다고 했다. 공화당의 이중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버그달 석방문제만 놓고 보면 먼저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한 한 쪽은 공화당이었다. 더욱이 미군 약 7000명과 10만명이 넘는 민간인을 희생시킨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한 원죄도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권에 있다.

버그달로서는 자신의 석방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불편할 터이다. 그가 이적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랬다면 조국이 그를 구하지 않았을 테니까. 탈영·반역자 논란도 본질이 아니다. 입대한 뒤 전쟁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국가가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보라고 가르치는 미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에 따라 입대한 청년이 이렇게 취급받는 것은 아무래도 부당하다.


조찬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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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까. 대참사 하루 전인 지난해 4월23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의 라나플라자. 8층짜리 이 건물엔 방글라데시 경제를 지탱하는 의류공장 5개가 입주해있었다. 일손이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지 얼마 뒤 건물 기둥에서 3개의 금이 발견됐다. 시 당국이 건물을 진단한 결과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물 안 의류공장에 조업중단 명령이 떨어졌다. 노동자 수천명은 조기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몇 만원밖에 되지 않는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이들은 불안했다. 조업중단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냥 조업재개만 기다릴 형편이 아니었다. 아직도 월급날은 10여일이나 남았다. 하지만 하루만 더 일하면 초과근무수당은 손에 쥘 수 있다. 생산공정에 쫓기는 공장 매니저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4월24일, 비극의 날이 밝았다. 노동자들은 여느 때처럼 공장으로 나왔다. 일부는 건물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지만 매니저들의 협박에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조업 중 갑자기 정전이 찾아왔다. 워낙 잦은 일이라 평소처럼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며 불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한쪽 기둥이 굉음을 내고 무너졌다. 건물은 침몰하는 배처럼 기울어졌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공포에 질린 노동자들은 어둠을 뚫고 좁은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건물 안은 비명과 울부짖음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불과 90초였다.

사망자 1134명, 부상자 2515명, 고아 약 800명을 낳은 대참사는 이렇게 일어났다. 사바르 비극은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는 허핑턴포스트 기고 글에서 “사바르 비극은 국가 실패의 상징”이라고 했다. 금이 간 국가시스템을 막지 못하면 국가가 붕괴의 더미 속에 묻히게 된다는 것이다. 2개층을 불법 증축한 것이 직접적인 참사의 원인이었지만 정부의 무능과 부패, 자본가의 탐욕 등 국가시스템의 붕괴가 빚은 결과였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사고 현장에서 3일 만에 구조된 메리나가 지난 27일 사바르의 한 병원에 입원해 가족들의 위로를 받고 있다. 사바르 _ AP뉴시스



세계는 라나플라자 참사가 20세기 의류산업의 노동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1911년 뉴욕 트라이앵글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사건처럼 21세기 노동환경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리라 기대했다. 1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욕 화재사건을 계기로 노조 결성이 허용됐고, 작업장 안전은 향상됐다. 참사 후 방글라데시 노동자도 사업주 허가 없이 노조를 설립할 수 있게 됐고, 최저임금도 77%나 인상됐다. 방글라데시 진출 기업 150여곳은 화재 및 건물안전협약에 가입했다.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돕기 위한 기금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불법 하청계약 관행은 여전하다. 고조되던 패스트패션과 윤리적 소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와 태도도 엷어지고 있다. 기금 모금액도 목표치인 4000만달러에 못미치는 1700만달러에 불과하다.

가슴 아픈 건 의류산업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방글라데시의 현실이다.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수출 규모는 연 200억달러에 이른다. 의류노동자 400만명과 가족 등 국민의 6분의 1인 2000만명의 생계가 걸려있다. “방글라데시를 위한 최선의 길은 H&M과 같은 브랜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사바르 참사와 무관하지만 희생자 기금 설립에 앞장선 스웨덴 기업 H&M의 사회적 지속가능성 담당 매니저인 안나 게다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한 이 말 속에 방글라데시의 현실과 고민이 녹아있다. 이 나라 의류협회 및 정부 관계자, 도시개발업자는 말할 것 없이 국제노동운동가마저도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라나플라자 생존자들도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이 일하던 남편을 잃은 마흐무다는 지금도 3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의류공장에서 일한다. 매일 참사 현장을 지나가는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겁먹으면 어떻게 가족을 먹여살리죠? 건물 하나가 무너진 것이 모든 건물이 무너질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거라고 되뇝니다.” 자신을 의지하던 조원 20명 가운데 단 한 명만 살아남은 아픔을 겪은 샤플라도 마찬가지다. 죄책감에 시달린 그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건설 현장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등을 다쳐 이마저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바르 비극 1주년이 세월호 침몰 참사와 겹치면서 흐르던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라나플라자와 세월호 참사는 이름만 다른, 같은 사건이다. 두 참사 뒤에는 정부의 무능과 안전불감증, 노동자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기업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비극은 막을 수 없다.




조찬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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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97년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을 펴냈다. 브레진스키가 체스판에 비유한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이다. 옛 소련 붕괴 후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이 향후 헤게모니에 도전받지 않고 유라시아 대륙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훈수를 두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옛 소련 지역인 러시아와 그 인접지역을 블랙홀로 불렀다.

그로부터 17년 후, 브레진스키가 블랙홀이라고 부른 지역의 우크라이나가 말 그대로 모든 국제뉴스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11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추진하던 무역협정 체결을 러시아의 압력에 밀려 중단한 일이었다. 이후 친유럽계는 ‘유로마이단 시위’를 주도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쫓아냄으로써 2004년 오렌지혁명에 이어 또 하나의 혁명을 이뤄냈다. 하지만 기쁨은 잠깐이었다. 혁명 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리미아 자치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계와 반러시아계의 혼란상황을 틈타 러시아가 끼어들었다. 급기야 러시아 의회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 안에서의 군사력 사용을 승인했다. 푸틴이 무력 사용으로 내세운 명분은 자국민 보호 및 크리미아 자치공화국 내 군인 보호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에 맞서 전군에 전투태세를 내렸다. 최악의 경우 두 나라 간 무력 충돌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거대한 체스판의 주인공은 푸틴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두 사람이 마주한 체스판을 상상하면 마치 냉전시대가 도래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브레진스키가 책을 쓸 당시 푸틴과 오바마는 무명 정치인에 다름없었다. 옛 소련 첩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보위하던 행정실 실장이었으며, 오바마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다. 냉전 이후 정치인인 두 사람이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급기야 거대한 체스판에서 마주하리라고 브레진스키는 꿈조차 꾸지 못했을 터이다.

러시아가 병력을 집결하기 시작해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는 우크라이나 크리미아 자치공화국의 세바스토폴 외곽에서 1일(현지시간) 한 우크라이나 남성이 총을 든 러시아 군인들 앞에서 상의를 벗고 맨몸으로 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세바스토폴 _ AP연합뉴스


이 체스판에서 주도권을 쥔 이는 푸틴이다. 그는 불리하게 전개되던 상황을 막판에 반전시켜 일단 게임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반면 오바마는 불과 열흘 전(지난달 19일)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냉전의 체스판’으로 보지 않은 채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결국 게임은 푸틴이 두는 수에 오바마가 끌려가는 판으로 정리된 것이다. 푸틴의 손에는 쓸 수 있는 수가 많다. 천연가스 공급 중단과 원조 철회, 우크라이나에 대한 채권을 서방이 책임지게 하는 방법 등은 군사개입을 하지 않더라도 우크라이나의 목줄을 조여 오바마를 무력화할 수 있는 카드들이다.

오바마가 처한 상황은 여의치 않다. 그동안 시리아 사태나 이란 핵문제에서도 푸틴에게 끌려다녔던 그다. 2009년 취임 후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리셋)을 선언한 그로서는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체스 게임을 피하는 것을 중요한 대외정책 목표로 삼았다. 미국의 보수 국제정치학자 월터 러셀 미드는 이를 시리아 문제에서 이란의 개입을 이란 핵문제와 별도로 취급하려는 오바마의 태도로 설명한다. 연장선에서 오바마는 할 수만 있다면 크리미아의 러시아 병합을 이보다 더 중요한 러시아 아젠다와 분리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국내외적으로 기존 게임의 법칙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이런 점에서 푸틴의 도박은 오바마의 도박이기도 하다. 푸틴의 도박에 잘못 대응하다가는 최대 정치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쟁에 말려드는 일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현실화할 경우 그 또한 아프간 및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전임자 조지 W 부시와 같은 멍에를 뒤집어쓰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푸틴이 이 체스 게임에서 바라는 게 무엇일까. 크리미아 반도에 혼란을 초래해 결국 러시아에 편입하는 것일까. 아니면 러시아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일까. 그것은 옛 소련 해체로 실추된 강대국의 이미지를 되살리려는 그의 목표를 이루는 일이기도 하다. 오바마에겐 반전의 카드가 있을까. 그토록 강조해온 러시아와의 리셋을 다시 리셋할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푸틴의 게임에 오바마가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크리미아 반도가 우크라이나의 발칸 반도가 될 것인지는 물론 오바마 자신의 정치 운명도 달려 있다고 하겠다.


조찬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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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해변가에는 상어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 그것은 아마추어 사진가다.” 지난 11월 중순 정보수집 천국이 된 세상과 그에 따른 사생활 침해 문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사 도입부는 120여년 전인 1890년 코닥 휴대용 카메라가 가져온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당시 신문 기사를 인용한 것이다. 누구든 휴대용 카메라로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을 훔쳐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일 터다. 말하자면 정보수집 도구로서의 카메라 시대 도래의 부작용을 지적한 셈이다.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120년을 뛰어넘어 정보수집 도구가 카메라에서 폐쇄회로(CC)TV를 지나 차량용 블랙박스와 구글안경으로 진화된 이 시대의 풍경을 전하고 있다. 정보수집은 다방면에서 혜택을 주지만 사생활 침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음을 기사는 보여준다. 실제로 누구나 다른 사람을 감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사생활 보호 문제는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기사를 보니 몇 가지 단상이 떠올랐다. 우선 언젠가 집 앞 사거리 교차로에 설치된 방범 및 불법 주정차 감시용 CCTV다. “과연 CCTV 만능국가로구나” 하던 기억이 새롭다. 밤늦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내 모습을 외박이 눈알을 통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을 리 없으니 말이다. 또 하나는 블랙박스에 대한 유혹이었다. ‘걸어다니는 지도’임을 자부해온 나였기에 차에 내비게이션을 설치할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 그런 내가 무슨 블랙박스, 하면서도 솔직히 마음이 끌렸다. 자동차 사고가 나 책임 소재를 두고 시비가 붙었을 때를 생각하면 블랙박스는 어느 광고처럼 변호사 역할을 톡톡히 할 테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잠시, 결국은 국가의 시민감시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에드워드 스노든에게로 옮아갈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 스노든 전 CIA요원 (경향DB)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비밀 정보수집 활동을 폭로한 지 반년이 됐다. 그의 폭로로 불법 정보수집 관행이 사라지리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세계 시민사회에 국가 감시의 폐해를 알리는 경종이 될 것으로 여겼다. 실제로 그의 폭로에 세계가 공분했다. 비밀 정보수집 행위가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노든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옅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스노든 폭로 이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 스스로 미국이 간첩죄로 기소할 것을 우려해 러시아로 피신했다. 스노든의 폭로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도 갈수록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21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 여론조사에서 스노든의 NSA 폭로가 국가안보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응답은 60%였다. 넉 달 전보다 11%포인트 오른 것이다. 스노든 기소 지지 비율은 52%였다. 말하자면 미국인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NSA의 감시활동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셈이다.

혹시 우리 스스로 국가의 시민감시와 사생활 침해는 별개의 문제라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CCTV 때문에 범법자가 된 듯한 더러운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봐줘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국가의 감시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줄은 잊어버린 채 엄습해오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불안함에 숨죽이며 살고 있진 않은지. 자기가 다른 사람을 감시하는 것은 용인하면서 그 반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기진 않는지. 나의 일이 아닐뿐더러 모두의 문제여서 아무런 걱정거리가 아니라고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머잖아 CCTV와 블랙박스, 구글안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감시기기들은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런 기기들의 등장은 국가의 시민감시보다 개인의 사생활 문제에 더 신경쓰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이런 기기들이 한 사람이나 국가권력 손에 들어갈 때 다른 사람의 자유는 빼앗길 수밖에 없다. 물론 타인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NSA를 통해 각종 정보를 모은 미국의 국가 이미지가 그 때문에 실추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다시 스노든을 생각할 때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국가권력은 여전히 시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NSA 사태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는 게 아니라 새로운 통치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역사는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권력자와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민들 간의 투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NSA 파문은 국가권력의 시민감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욱 교묘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CCTV가 자신을 보호해준다는 안도감에 묻힐수록 국가의 감시 기제는 강화될 것이다. 스노든의 폭로는 이어질 것이다. 스노든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국가의 감시활동에 제동을 걸 것인지, 아니면 빅 브러더에 저항하다 결국 굴복하고 마는 <1984>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처럼 살기를 원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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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본섬 남쪽 끝 해안가에 있는 평화기원자료관을 찾았다. 오키나와 현정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 유일한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전쟁의 교훈과 영구평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자료관을 둘러보다 제4전시실 한쪽 벽에 붙은 글에 눈길이 갔다. 일본어로 쓴 길지 않은 글이었다. 한국어로 된 자료관 안내서에는 이렇게 번역돼 있었다. “오키나와전의 실상을 접할 때마다 전쟁이라는 것처럼 잔인하고 이렇게 오욕투성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생한 체험 앞에서는 어떠한 사람도 전쟁을 긍정하고 미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히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전쟁을 용납하지 않는 노력을 할 수 있는 것도 우리들 인간이 아닐까요. 전후 이래 우리들은 모든 전쟁을 원망하며 평화로운 섬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확고한 우리들의 신조입니다.” 1시간가량 자료관에서 본 전쟁의 참상이 오키나와전쟁의 비극을 겪은 섬주민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과 함께 온몸에 전해지는 듯했다.




자료관 방문은 지난 7일부터 5박6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와 주한미국대사관이 마련한 주일 미군기지 탐방 프로그램의 곁가지였다. 하지만 도쿄 근교의 요코다 공군기지와 요코스카 해군기지, 오키나와의 후텐마 해병기지 등 미군기지를 둘러보면서 느낀 것만큼이나 의미가 컸다. 미·일동맹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미국의 묵인 아래 진행되는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의 군사대국화 움직임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위한 헌법개정 움직임을 오키나와만큼 잘 보여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28일, 오키나와 문제가 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일본이 주권을 회복한 날이지만 오키나와인들에겐 미국에 넘어간 굴욕의 날이다. 정부 주관으로는 처음 열린 도쿄의 일본주권회복의 날 행사엔 일왕이 참석했고, ‘천황폐하 만세’ 삼창이 울려퍼졌다. 반면 같은 시간 오키나와에서 열린 굴욕의 날 행사장은 분노로 들끓었다.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 바로 오키나와 갈등의 본질이다.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의 갈등은 1879년 류큐국이 일본에 강제복속되면서 시작됐다. 450년 역사의 류큐국은 오키나와현이 되면서 고유의 언어와 문화가 파괴됐다. 태평양전쟁 땐 본토수호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민간인이 강요에 의해 자결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종전 후에는 일본이 오키나와를 미국에 제공함으로써 오키나와 주민들은 전쟁에 이어 또다시 버림받았다.


조찬제 국제부장(출처 : AP연합)





그런 오키나와가 미국에 넘어간 뒤 일본 복귀운동을 벌였다. 강제복속과 지상전이라는 아픔의 역사를 지닌 오카나와가 왜 그랬을까. 바로 일본의 평화헌법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베 정권은 그 헌법을 바꾸려고 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를 오키나와에 군사기지를 계속 확산시키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후텐마를 비롯한 미군기지 이전 움직임에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프로그램이 주일 미군기지를 탐방하는 목적이어서 이 문제에 대한 오키나와 관계자의 입장을 직접 듣진 못했다. 대신 귀국해서 본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파노라마>의 ‘일본을 보는 두 가지 테마 2편 국경의 섬 오키나와’(9월5일 방송)에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전후 50년이 되던 해에 평화 염원을 담을 ‘헌법9조의 비’를 세운 야마우치 도쿠신 전 요미탄 촌장의 말이다. “지금의 오키나와 투쟁이 승리했을 때 일본의 미래가 있습니다. 만약 오키나와의 투쟁이 패배하면 일본 정부는 자신있게 헌법개악을 쏜살같이 추진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키나와의 투쟁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돌베개·한승동 역)라는 책에서 희생의 시스템으로 오키나와 문제를 설명한다. “희생의 시스템에서는 어떤 자의 이익이 다른 것을 희생시킴으로써 산출되고 유지된다. 희생시키는 자의 이익은 희생당하는 것의 희생 없이는 산출되지 못하고, 유지될 수도 없다. 이 희생은 통상 은폐돼 있거나 공동체의 ‘소중한 희생’으로 미화되고 정당화된다.” 그에 따르면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미·일 안보조약의 희생자이다. 또 일본은 여전히 이런 시각으로 오키나와를 바라보고 있으며, 미·일 안보조약이 여전히 주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귀국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수시로 오르내리던 후텐마 기지의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와 기지 한쪽 입구에서 철수운동을 벌이던 주민 6명의 모습이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보와 겹쳐 눈앞에 아른거린다. 일본 면적의 0.6%에 불과하지만 주일 미군시설의 74%가 집중된 곳이기에 주민들의 외침은 분명 설득력 있다. 하지만 다카하시 교수의 지적처럼 오키나와는 여전히 희생의 시스템 속에 갇혀있다. 오키나와가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끝나지 않은 오키나와의 비극이 있다.



조찬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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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북동부 수에즈 운하 인근 도시인 이스마일리아. 지난 16일 한 무리의 주민들이 평화적인 거리시위를 벌이며 도로 한복판에 막아선 탱크들을 향해 행진한다. 이윽고 들리는 총성들, 그리고 주춤하는 시위대. 하지만 흰 모자를 쓴 한 남성은 두 팔을 하늘로 뻗은 채 꿋꿋하게 탱크들 쪽으로 걸어간다. 멈춰선 그는 탱크와 당당히 맞선다. 두 팔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있다. 10초쯤 지났을까. 총성과 함께 그는 고꾸라진다. 총탄이 그의 복부를 관통한 것이다. 비록 그의 두부는 ‘소스라쳐 삼십보 상공으로 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도로 위에서 뒹굴었고, 주민 몇 명이 그를 향해 달려간다.





이집트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 시위 도중 이집트군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 (연합)






지난 19일자 경향신문 1면에 실린 3장의 연속 사진은 충격을 넘어 끔찍했다. 이집트 첫 민선 대통령마저 지난달 3일 쿠데타로 쫓아낸 군부가 자행한 지난 14일의 최악의 유혈진압 이후 이 사건의 실체를 어떤 장문의 기사가 이 3장의 사진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사진들은 ‘압둘라 슈샤’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캡처한 것으로, “군이 이스마일리아에서 평화로운 시위대를 저격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궁금했다. 쓰러진 남성은 누구인지, 가족은 있는지, 죽었는지, 왜 물러서지 않고 탱크 쪽으로 갔는지…. 호기심에 유튜브 동영상과 관련 기사들을 살펴봤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이 남성의 신원을 밝혀 원통한 넋이라도 달래주고 싶었다. 동영상 댓글에는 쓰러진 남성의 친구라고 소개한 이의 글이 있었다. “그는 내 친구다. 이름은 아흐메드 하킴이며, 아들과 딸이 있다.” 하지만 생사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당시 시위를 보도한 로이터통신은 4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댓글은 그를 1989년 6월4일 중국 톈안먼 민주화운동 당시 진군하는 탱크 앞을 가로막던 청년에 비유하며 이렇게 썼다. “톈안먼 광장과 같았지만 이번엔 군인들이 그를 쐈다.”


중국 천안문 사태 시위진압 탱크를 저지하는 시민 (연합)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아픔을 되살린 이 동영상과 그 속의 주인공은 한 시인의 시와 한 저항가수의 노래를 떠올리게 했다.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 소녀의 죽음’과 정태춘의 ‘5·18’이다.




1956년 소련의 팽창정책으로 위성국가로 전락한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선 대규모 반소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하지만 ‘쏘련제 탄환’ 앞에 모두 무릎을 꿇는, 비극으로 끝났다. 당시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시인은 버스 안에서 이 사건을 다룬 외신 기사 한 토막을 읽고 소련의 압제와 그에 저항하는 헝가리 국민의 항거를 그린 시를 썼다고 한다. 그것이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쏘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로 시작하는 ‘부다페스트에서 소녀의 죽음’이다. 학창 시절, 시에 나오는 ‘열 세 살 소녀’가 당시 희생된 특정 소녀라기보다 희생돼서는 안되는 젊은 생명이나 피지 못한 헝가리 민주화 등을 함축하고 있는 시어라고 배운 기억이 난다.




정태춘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노래 ‘5·18’에서 이렇게 묻고 답한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그리고는 선언했다.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잊지 말라고 절규했다. “~잊지 마라 잊지 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이집트 군부의 최악의 유혈진압 이후 사흘 동안에만 약 800명이 총탄에 스러져갔다. 군부의 실세인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우리 군은 협박과 음모를 일삼는 배신자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인지 반정부·반군부 시위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더욱이 군부는 민선 대통령을 축출하고 시위대를 학살한 데도 성이 차지 않는 듯, 2년6개월 전 국민들이 쫓아낸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까지 석방했다. 다시 ‘장군들의 세상’을 부활시킬 태세인 것이다. 지금 이집트의 미래는 ‘시계제로’이다. 최악의 경우 과거 군사정권 시절로 되돌아가거나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스마일리아에서 쓰러진 남성은 총성에 주변의 동료들이 주춤할 때 앞으로 나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설마 총을 쏘지는 않겠지’였을까, 아니면 ‘순교자가 돼도 좋다’였을까. 이집트 국민들의 꿈이 군홧발에 짓밟히거나 국제사회의 이해관계 속에 물거품이 될 때, 이집트 국민들과 전 세계인들은 이스마일리아에서 총탄에 맞아 스러져간 남성을 기억해야 한다. 아픈 과거를 잊지 않는 일, 이것이 김춘수와 정태춘이 그랬듯 살아남은 자들이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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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 불법 감시행위를 폭로한 지 한달 보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본말 전도’의 전형적인 사례를 또다시 목도하고 있다. 스노든 사건은 ‘개인자유 대 국가안보’라는, 오랜 논쟁거리에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스노든이 폭로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 본질은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의 자유가 희생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스스로 내부고발자라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가 고발한 본질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그 자리는 스노든 송환과 정치적 망명을 둘러싼 미국과 반미 국가들의 줄다리기 같은 곁가지가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23일이면 스노든은 공항 환승구역에 갇혀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처럼 웃지 못할 희극의 주인공 신세로 전락한 지 한달이 된다. 사건 초기 그의 폭로에 대한 관심과 그의 용기있는 행동에 대한 찬사는 어디로 간 걸까. 본질이 덮이고 곁가지가 그 자리를 차지할 때 과연 이득을 보는 이는 누구일까.



스노든 폭로 이후 전개되는 양상은 2010년 위키리크스 사건 때와 비슷하다. 미국은 우선 사건 연루자에게 도망자라는 올가미를 씌워 입지를 좁혔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와 국무부 외교전문을 공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 발이 묶인 지 1년이 지났다. 어산지의 폭로는 ‘국가안보 대 알권리’라는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의 어산지 성폭행 연루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건의 본질은 가려졌다. 도망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정치적 망명을 위해 홍콩을 떠나 모스크바 공항에 잠시 들른 스노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미국 정부의 여권 말소 소식이었다. 여권이 없다면 스노든은 공항 환승구역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현실적으로 그가 살 수 있는 길은 정치적 망명뿐이다.


(경향DB)





이렇게 두 사람의 발을 묶어놓은 미국은 이제 ‘옳은 일을 했다면 떳떳하게 나서라’고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어산지는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벗어나는 순간 스웨덴으로 송환돼 재판에 처해진다. 그 뒤엔 간첩법으로 기소된 미국으로 신병이 넘겨져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스노든의 신세도 처량하긴 마찬가지다. 스노든은 지난 16일 러시아 이민국에 일시적인 망명을 신청했다. 운 좋게 받아들여진다면 스노든은 난민 증명서를 들고 자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첫 관문부터 넘기가 쉽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의 망명을 반대하고 있다. 정보기관을 둘러싼 논쟁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그 뒤에 그를 받아줄 나라로 가는 길도 첩첩산중이다. 미국이 망명 승인 의사를 밝힌 국가들을 상대로 경제제재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카드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범죄자 낙인 찍기도 여전하다. 가디언의 글렌 그린월드와 함께 스노든 폭로를 특종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8일 ‘위키리크스-스노든-그린월드 음모론’을 암시하는 기사를 실었다. 셋이 짜고 한 ‘기획보도’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그린월드가 사실을 왜곡한 기사라고 반박하자 ‘고침기사’를 내놓는 개망신을 당했다.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 (AP연합)



“개인에겐 준수해야 할 국가적 의무를 넘어서는 국제적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시민 개개인들은 평화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 국내법을 위반할 수 있다.”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가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을 단죄하기 위해 천명한 원칙이다. 이 원칙은 그 뒤 많은 양심가들의 행동지침이 됐다. 내부고발자들도 이 원칙에 기반한 신념과 정의에 대한 믿음으로 기꺼이 자신의 운명을 내맡겼다. 스노든도 선구자들의 이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하지만 이 원칙이 어떻게 왜곡되고 짓밟히고 있는지를 본말이 전도된 스노든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의 폭력에 의해, 때로는 그것을 지켜야 할 구성원들의 무관심 때문에 말이다.




공항 환승구역에 갇혀 지내던 스노든은 지난 12일 잠깐 동안 세상과 다시 소통할 기회를 가졌다. 그때 그는 길지 않은 언론 발표문을 내놨다. “나는 내가 옳다고 믿었기에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이 캠페인을 시작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국의 비밀을 팔아먹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 신변의 안전을 위해 어느 국가와도 손잡지 않았다. 대신 내가 아는 것을 대중에게 알려 밝은 빛 아래서 우리 전체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길을 택했고, 세상에 정의를 요구했다. 이 같은 도덕적 결정은 치러야 할 대가가 크지만 옳은 일이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평화와 자유, 정의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는 스노든의 용기있는 행동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의 용기가 꺾이지 않게 하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것은 스노든의 처지와 그렇게 만든 현실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그렇게 해도 본말이 전도되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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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미국 상원 청문회장. 민주당의 론 와이든 상원의원(오리건주)과 미 정보당국의 총책임자인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DNI)의 질의문답이 이어졌다.


“국가안보국(NSA)은 어떤 형태라도 미국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나요?”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다고요?”


“의도적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같은 달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장. 민주당 행크 존슨 하원의원(조지아주)은 키 알렉산더 NSA 국장을 5분여 동안 추궁했다.


“NSA는 미국 시민들의 e메일을 일상적으로 가로채고 있나요?”


“아닙니다.”


“NSA는 미국인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을 가로채나요?”


“아닙니다.”


“문자메시지는요?”


“아닙니다.”


“은행 거래 기록은요?”


“아닙니다.”


지난 6일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가 미국인들을 불법적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한 이후 재조명받고 있는 2건의 의회 청문회 대화록을 요약한 것이다. 두 사람의 계속되는 ‘아니요’라는 대답은 미 정보기관 수장들이 의회는 물론 미국민들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NSA 알렉산더 국장의 사례는 그 극치라 하겠다. 그는 미국 국민들의 통화를 감시할 기술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존슨 의원의 집요한 질문에 14차례나 ‘아니다’라고 말한다. 집요하게 추궁하는 존슨 의원도 대단하지만 그때마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아니요”라고 일관되게 답변하는 알렉산더 국장의 뻔뻔스러움에 말문이 막힌다. 그는 지난 12일 스노든의 폭로 이후 처음 의회 청문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NSA의 개인정보 수집 파문이 미 정가의 핵폭탄이 된 상황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상원 세출위원회의 패트릭 리히 의원(민주)이 “NSA 비밀 개인정보 수집 프로그램(프리즘)을 활용해 막아낸 테러 기도가 몇 건이냐고 물었다. 알렉산더 국장은 미국과 해외에서 “테러 수 십 건을 막았다”고 대답했다. 리히 의원이 정확한 숫자를 밝혀달라고 하자 “오늘은 숫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음주까지 알려주겠다”고 여유를 부렸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AP연합)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이 의원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의원들은 왜 이들의 거짓말을 눈감아줄까. 바로 국가안보 때문이다. 정보 수장들에게 개인에 대한 감시는 국가안보를 위한 핵심 수단이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지난 9일 “이번 보도는 우리 정보 역량에 엄청난 타격”이라고 했다. 로버트 뮬러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12일 “기밀 폭로로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같은 논리를 폈다. 의회 지도자들은 이번 파문 이후 민주·공화당 할 것 없이 스노든을 ‘반역자’로 낙인 찍는 데 바쁘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공화)과 피터 킹 하원 정보위원장(공화),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민주) 등이 대표 인사들이다. 힘깨나 쓰는 주류 언론의 칼럼니스트들은 간접적으로 거든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스노든이 고교에서 낙제하고 대학 진학에 실패한 패배자임을 강조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내부고발자가 아닌 누설자라고 했다.




유력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스노든 죽이기’에 앞장서는 것은 정보기관을 감시해야 할 의회와 언론의 기능이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빅 브러더’ 행세를 하려는 미 행정부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내부 고발자의 행위를 매도함은 물론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스노든이 반역자인지, 누설자인지, 고교 낙제생인지 낙인찍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진짜 ‘빅 브러더’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쳐놓은 함정일 뿐이다. 9·11 테러 이후 미 정보기관들이 시민감시를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애국법을 발의한 공화당의 짐 센슨브레너 하원의원조차 스노든 폭로 직후 미 법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NSA의 권력남용을 지적한 터다.




에드워드 스노든 전 CIA요원 (AP연합)



스노든이 처벌을 받으려면 그를 매도하기에 앞서 그가 이적행위를 했는지를 우선 규명해야 한다. 대중은 지난 3월 정보기관 수장들이 의회에서 왜 거짓진술을 했는지에 대한 해명을 궁금해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애국법을 남용한다고 맹공한 민주당 의원들이 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민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옹호하는지도 듣고 싶어한다. 스노든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폭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여러분부터 심지어 대통령까지 누구든 도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 위치에서 결정할 내용이 아니다. 대중은 이 프로그램들과 정책들이 올바른지, 그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스노든이 우리 앞에 던진 중요한 토론거리이자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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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초년병 시절인 1992년 어느 봄날로 기억한다. 따사로운 봄 햇살에 밀려드는 졸음과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동대문구 창신동에 있는 봉제공장에서 소녀가장을 만나보라는 지시였다. 희미한 조명 아래 실먼지가 날리던 좁은 주택 안 공장에서 조모양이 사장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모양은 당시 16살이었다. 동생과 남동생을 돌보기 위해 하루 종일 그곳에서 일했다. 일에 지친 듯,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듯, 그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함께 자리한 두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과 자괴감 탓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들과의 만남은 아직까지도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 성인이 된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조모양 3남매가 떠오른 것은 방글라데시 사바르의 ‘라자 플라자’ 의류공장 건물 붕괴 참사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사고가 발생한 이래 사망자수가 12일로 1200명을 넘었다. 건물 붕괴 사고로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난 것은 2001년 9·11일 테러로 뉴욕의 쌍둥이 건물이 붕괴한 이후 처음일 터이다. 자고 일어나면 100명씩 늘어나는 사망자 숫자를 보노라면 이번 참사가 얼마나 끔찍한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조그마한 주택 안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조모양의 당시 노동조건은 한눈에 봐도 좋지 않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하루에 열 몇 시간은 족히 일했을 것이다. 월급을 얼마나 받았는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힘들게 번 돈으로 두 동생들과 함께 ‘작은 행복’을 누렸을 법하다. 하루 종일 일한 대가로 방글라데시 소녀들은 월 4만~6만원을 손에 쥐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공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잔업을 마다하지 않고 번 돈은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등 가족들의 생계의 밑천이 됐다. 하지만 이들이 조모양과 가장 다른 점은 위험이 일상화된 상황에 노출돼 있었으며, 살기 위해서 이 사실조차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사바르의 공장건물 붕괴현장에서 사망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데일리스타(www.thedailystar.net)





글로벌 경제 노동착취 사슬의 맨 밑바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오던 이들이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의 희생자가 되자 분노와 함께 노동착취 공장(스왓숍) 문제를 해결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방글라데시산 의류의 최대 수입처인 유럽연합은 방글라데시에 적용해온 세금·할당량 부문의 일반특혜관세를 제외하는 무역 규제조치를 고려할 것이라며 방글라데시 정부를 압박했다. 이 조치가 이행되면 연 190억달러를 벌어 경제를 지탱하는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은 큰 타격을 받는다.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는 지난 9일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사바르 비극은 국가의 실패의 상징”이라고 했다. 8층짜리 건물을 붕괴시킨 것은 벽에 난 금이었지만 국가시스템의 금을 막지 못하면 국가가 붕괴의 더미 속에 묻히게 된다는 것이다. ‘공정 노동’과 ‘소비자 윤리’ 등의 단어들도 다시 등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8일 최근 확산하고 있는 의류 등 공산품 제조·유통 부문에서의 저임금과 노동착취를 근절하려는 ‘공정노동’ 운동을 소개했다. 어디서 얼마나 정직하게 만들어졌는지를 시시콜콜하게 공개하는 일부 공정노동 의류기업들이 방글라데시 사태 이후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와 국민들이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이 때문에 의류산업이 망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참사 이전인 지난 3월 월트디즈니는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저임국 국가로부터 공장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동참 기업이 늘어날수록 우려는 현실이 될 게 뻔하다. 이 같은 ‘방글라데시 딜레마’를 피하려 해도 다른 나라의 희생을 낳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오랜 군사정권하에 있던 버마가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값싼 노동력에 바탕을 둔 버마산 제품은 이미 우리 몸의 일부를 감싸고 있다.


방글라데시 공장 붕괴 17일 만의 생존자 구조 (AP연합뉴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꽃은 피어난다. 건물 더미 속에 17일 동안이나 갇혀 있다가 지난 10일 기적적으로 생환한 여성 레쉬마 베굼(19)이 그 증거이다. 빗물과 소방수 덕분에 살아났지만 어떠한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는 삶에 대한 집념과 용기는 그를 방글라데시의 희망이자 기적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에도 기적이 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난 8일자 경향신문 8면에 실린 방글라데시 언론인 아예샤 카비르의 특별기고 끝 문장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의류산업이 라나 플라자의 무너져내린 잔해 속에서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서려면 이 산업과 관계있는 모든 분야에서 깊은 자기 성찰이 꼭 필요하다. 한 푼의 돈을 아끼는 것이 한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가. 공장주에서 기업과 정부와 소비자들까지, 모든 이들의 집단적 자각에 의해서만 이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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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건의 폭로가 다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지난 3일(현지시간) 웹사이트에 띄운, 조세 피난처에 관한 탐사보도다. 협회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케이맨군도 등 유명 조세 피난처에 있는 유령회사 12만2000여개와 170여개국의 정치인·기업인·재력가 등 약 13만명이 차명 임원이나 익명 소유 방식으로 유령회사를 차리거나 거래한 사실을 공개했다. 탈세와 돈세탁 등 불법·탈법의 온상으로 불리는 조세 피난처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1차로 명단이 공개된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캐나다, 파키스탄, 필리핀, 태국, 몽골 등의 해당자들은 불법행위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해당국에서는 탈세와 돈세탁 등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국 국세청을 비롯한 독일, 그리스, 캐나다, 미국의 관련 당국은 관련자에 대한 조사 입장을 밝히며 협회 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현재까지 실명이 공개된 명단은 전체 약 13만명에 견줘보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협회 측이 연말 또는 내년까지 속보를 내기로 함에 따라 파장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세 피난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번 탐사보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대부분의 세계적인 특종이 그렇듯 익명의 내부고발자의 제보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2011년 어느 날, 호주에서 활동해온 언론인 제러드 라일 집에 우편물이 배달됐다. 속에는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가 들어 있었다. 우편물이 라일에게 배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라일은 우편물을 받기 전까지 3년 동안 호주 역사상 최악의 기업사기·조세회피 사건인 ‘파이어파워 스캔들’을 끈질기게 추적해왔다고 한다. 어쩌면 조세 피난처 정보를 담은 하드 드라이브는 파이어파워 스캔들의 실상을 파헤쳐온 그를 위해 신이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료는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었다. 원석을 다듬어 보물로 만드는 일은 오롯이 라일의 몫이었다. 자료를 받은 라일은 “직감적으로 엄청난 정보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AFP통신에 밝혔다. 흥분은 잠시뿐이었다. 기술적인 한계에 따른 좌절감이 그를 엄습했다. “정보들은 거의 읽을 수 없었다. 컴퓨터가 갑자기 멈춰버리기 일쑤였다. 세계 각국의 많은 이름이 있었는데, 관심 밖의 사람들이었다. 기자라면 누구라도 그렇듯 인터넷과 구글을 통해 그 사람들이 누군지 확인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그는 ‘퍼즐 맞추기’에 나섰다. 하지만 자료는 너무나 방대했다.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는 260기가바이트 규모였다. 이는 책 50만권에 해당하는 정보량이다. 2010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비리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건보다 160배 이상 많다고 한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미친 그가 떠올린 것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였다. 미국의 대표 비영리 탐사언론인 조직인 공직청렴센터(CPI)가 부패와 권력의 책임 등을 파헤치기 위해 1997년 설립한 조직이다. 60여개국 언론인 160여명이 소속돼 있다. 라일은 보물을 찾기 위해 워싱턴으로 와 협회 책임자가 됐다. 2011년 9월이었다. 그의 지휘 아래 46개국 언론인 86명이 정보 분석작업에 동참했다. 호주의 한 소프트웨어 회사는 자료의 정보를 의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개발했다. 복잡한 퍼즐 맞추기에 돌입한 지 15개월 만에 첫 결과물이 나왔다. 일일이 관련자 확인작업을 거친 덕분에 폭로의 파급력은 컸다.


조세피난처에 재산을 은닉해 온 유명 인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이고르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 부인 올가 슈발로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독재자의 장녀 마리아 이멜다 마르코스 마노톡, 바야르트소그트 상가잡 몽골 국회 부의장, 날리니 타비신 태국 국제무역대표부 대표, 짐바브웨 사업가 빌리 로텐바크, 에이브러햄 링컨에 관한 책 <링컨의 얼굴> 저자이자 은행재벌인 멜런 가문의 제임스 멜런, 스페인 최고 미술품 수집가인 카르멘 티센 보르네미사 남작부인.



조세 피난처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경위를 재구성한 것은 용기있는 내부고발자 덕분에 언론이 권력의 비리와 각종 부패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971년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타임스에 제공한 대니얼 엘스버그가 있었기에 세계는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알고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2010년엔 위키리크스에 미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건을 제공한 브래들리 매닝이 있었기에 미국의 오만함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내부고발자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에 언론은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고발의 대가는 가혹했다. 엘스버그는 이미 시련을 겪었고, 매닝 앞에는 커다란 시련이 놓여 있다. 조세 피난처 정보를 제공한 익명의 내부고발자는 이 같은 선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글을 쓰는 7일은 마침 ‘신문의 날’이다. 언론의 역할을 일깨워준 수많은 내부고발자들에게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더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이 내부고발을 토대로 비리를 공개하고, 정부가 이를 바탕으로 조사해 관련자를 처벌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하지만 조직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가 사회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부당한 징계를 받고, 법과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이를 비웃는 게 현실이다. 내부고발자가 보호받는 현실, 언론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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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잔혹한 세상 2013.11.20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나름 내부고발자로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기득권층에 의해서 저질러진 잔혹한범죄사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폭로하며 블로그에서 댓글을 달고 그런사람입니다~! 독일이나 영국 미국 그외의 선진국에서는 내부고발자들을 시민경찰로 인정해 상도 주고 보호도 해주는데 대한민국이나 일본 그외의 일부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오히려 고소당하고 필리핀이나 멕시코 이라크 러시아에서는 피살되거나 성범죄 폭행으로 피해자가 되는 상황내지 가해자로 몰려 종신형이나 사형에 처해지는경우가 다반사니 이를 어찌할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