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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김칫국 마시기(200404)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상대방은 줄 생각도 하지 않는데 지레 받을 준비를 한다는 의미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눈치 없이 하는 행동을 비꼴 때 자주 쓴다. 떡 줄 사람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같은 뜻으로 쓰이는 ‘떡방아 소리 듣고 김칫국 찾는다’, ‘앞집 떡 치는 소리 듣고 김칫국부터 마신다’처럼 김칫국이 주로 떡과 함께 활용된다는 사실이다. 예로부터 떡과 김칫국은 찰떡궁합으로 여겨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우리 조상들은 떡을 먹을 때 늘 김칫국과 함께 먹었다고 한다. 본뜻은 체하지 않게 조심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김칫국부터 마시는 사례는 드물지 않게 본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판이다. 결과야 어떻든 일단 빈말이라도 쏟아내 유권자의 마음을 먼저 사로잡아야 하는 속성 때문일 터이다. 요즘처럼 선거철이 되면 김칫국 마시는 일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여야 할 것 없이 서로 승리를 장담한다. 하지만 알맹이 없이 김칫국을 먼저 들이켜는 행위가 얼마나 허망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난데없는 ‘김칫국’ 트윗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그는 지난 2일 트위터에 “나는 오늘 ‘부화하기 전 닭을 세지 말라는 것이 때가 될 때까지 김칫국을 마시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걸 배웠다”면서 “한국어에 비슷한 표현이 있으면 내 통역관이 더 쉽게 일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썼다. 몇 시간 뒤에는 ‘김칫국 마시다’를 영어로 표현한 한영사전 사진을 리트윗했다. 이 트윗을 올린 이유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미묘한 시점 때문이다. 평상시라면 한국어를 배우는 등 한국 문화에 관심 많은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의 트윗은 한국 정부가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의 잠정 타결 가능성을 언급한 뒤에 나왔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흘린 데 대한 불만이나 조롱으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무례한 언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에 이어 주한미군사령관까지 구설에 오르는 일은 전에 없는 일이다. “함께 갑시다”라는 구호가 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