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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중국의 ‘홍콩보안법’ 추진, 국제사회가 우려한다(200526)

홍콩 시민 수천명이 지난 24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모임금지 속에서 대규모 도심 시위를 벌였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 22일 개막식에서 상정한 홍콩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법안은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 금지, 국가 분열 및 테러리즘 활동 처벌, 국가안보 교육 강화 등을 담고 있다. 위반 시 최고 징역 30년형에 처해진다. 전인대는 28일 폐막식 때 이 법 초안을 통과시킬 예정인데, 향후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입법 절차를 마치면 법은 시행된다. 국가 안보를 핑계로 시민들의 입과 손발을 다 묶겠다는 비민주적 발상으로,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홍콩보안법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중국 당국이 홍콩 입법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법안 제정에 나섰다는 점이다. 1997년 홍콩 주권반환 이후 외교·국방 주권은 중국이, 고도의 자치권은 홍콩이 갖는 ‘일국양제’ 원칙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이 법안을 제정하는 것은 사실상 ‘일국양제’를 무너뜨리는 셈이 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홍콩의 자치권은 약화되고, 그로 인해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서 누려온 지위도 잃을 수 있다. 홍콩 정부가 2003년에도 비슷한 내용의 보안법 제정을 추진했다가 대규모 시민들의 반대 거리 시위로 무산된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해 ‘송환법 사태’에서 보듯 중국 당국의 초강경 대응은 홍콩 시민의 반발을 부를 것이 뻔하다는 점이다. 홍콩 범민주 세력은 오는 6월4일 톈안먼 사태 31주년에 맞춰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이미 예고했다. 또다시 대규모 충돌이 일어난다면 유혈참극을 포함한 그 파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홍콩보안법 제정 논란은 미·중 갈등을 부추긴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은 이미 1992년 홍콩에 부여한 무역·투자 등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고 고했다.

그럼에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어떠한 외부 간섭도 허용할 수 없고, 법은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법제화 고수 입장을 밝혔다. 홍콩의 안보가 중국의 핵심 이익으로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진정 G2로서 세계의 중심 국가를 자처한다면 민주주의 기본 원칙과 국제규범을 지켜야 한다.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면 최대 피해자는 중국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홍콩보안법 추진이 자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