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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이용수 할머니에 쏟아지는 2차 가해는 안 된다(200602)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 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두 차례 기자회견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이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뒤 이 할머니에 대한 인신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치매다” “노망이 났다”는 혐오표현에서부터 “대구 할매” “참 대구스럽다” 같은 지역 비하 발언, 정권 반대 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정치공작설’ 등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이 할머니와 관련한 과거 기사를 왜곡해 전사한 일본 군인과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고 주장하며 친일 행적을 날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우려되는 것은 정치인 등 유명인이 추측성 발언으로 이 할머니 비판에 가세한 점이다.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와 변영주 영화감독은 이 할머니의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언급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이 할머니 2차 기자회견 뒤 배포된 회견문과 실제 언급이 다르다는 점을 들어 배후설을 제기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이 할머니의 문제 제기를 윤 의원이 할머니의 국회의원 출마 반대에 대한 분노 때문인 것처럼 말했다. 모두 확인되지 않은 일들이다. 이 할머니 측은 영혼결혼식을 올렸다는 주장에 대해 “1998년 대만에서 열린 집회에서 인형 2개를 들고 와 영혼결혼식을 시켜주면서 위령제를 올린 것”이라고 정정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공격하는 비이성적인 행태가 씁쓸하다.

남인순 민주당 최고위원은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할머니에 대한 2차 가해가 도를 넘고 있다”면서 “즉각 중단할 것”을 당부했다. 남 의원은 “온·오프라인에서 확산되는 2차 가해는 이 할머니의 메시지를 흐리고, 편 가르기를 낳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 도움이 안 되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주체적 말하기를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이 할머니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비난, 음모론은 희생자인 이 할머니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이런 행위는 위안부운동의 본질을 흐릴 뿐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할머니의 문제 제기로 모두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운동 방식을 점검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할머니의 비판을 성숙한 태도로 수용해 세계사에 남는 여성인권운동으로 도약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 할머니의 바람대로 한·일 학생 교류와 교육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