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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남북 긴장 조성하는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중단돼야(200605)

북한이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하며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조치를 취하라고 남측에 요구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4일 노동신문에 실린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제1부부장은 또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대북전단 문제를 문재인 정부의 최대 성과인 판문점선언과 군사합의와 연계해 해결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다지는 상황에서 나온 북한 측의 특이 동향이라 각별히 주목하게 된다.

대북전단 살포는 그동안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해온 사안이다. 2014년 10월 북한이 한 탈북단체가 경기 연천에서 살포한 전단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하고, 군이 응사하면서 지역 주민을 불안에 떨게 만든 바 있다. 탈북단체는 전단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 실상을 알림으로써 북한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그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탈북단체가 살포한 전단 상당수는 북한으로 가지도 못한 채 남한 지역에 떨어져 접경지역의 환경오염 등 지역 주민들의 생활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 대남도발의 빌미를 제공해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대북전단 살포 중지는 남북 간 약속된 사항이기도 하다. 남북 정상은 2018년 판문점선언에서 확성기 방송 중단과 더불어 전단 살포를 멈추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그동안 경찰력을 동원해 탈북단체의 전단 살포를 막아왔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전 승인을 받아 전단을 뿌리도록 하는 정부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법안이 표현의 자유와 상충한다는 주장 때문이다.

교착에 빠져 있는 북·미 간 핵협상과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면 정부는 대북전단 문제 해결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법 개정을 통해 전단 살포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뜻이다. 대북전단이 남북관계 개선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는 부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여야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정부·여당의 진지한 설득과 야당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