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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총영사관 폐쇄로 최악의 상황 치닫는 미·중 갈등(200724)

미국 정부가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을 24일 오후 4시(현지시간)까지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 공관을 추가로 폐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도 주중 미 영사관 폐쇄를 포함한 보복 조치를 시사했다. 지난해 무역분쟁에서 시작된 미·중 갈등이 코로나19 책임론,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제재, 홍콩보안법 갈등을 넘어 공관 폐쇄로 번지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사회의 고충은 생각하지 않고 충돌을 거듭하는 양국에 유감을 표한다.

외국 공관 폐쇄는 외교관계 단절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조치다. 휴스턴 총영사관이 1979년 미·중 수교 후 미국에 설치된 첫 중국 영사관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상징적이다. 미국이 폐쇄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지식재산권 및 개인정보 보호다. 중국이 미래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며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탈취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 법무부는 지난해 말부터 기술을 탈취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중국인을 체포·입건해왔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것도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은 휴스턴 총영사관을 미국 내 연구결과 탈취의 거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휴스턴은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린든존슨우주센터를 비롯해 제약·의약 분야의 연구도 활발한 곳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양국 간 여행이 제한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영사관 폐쇄의 실질적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하고, 미국이 공관 폐쇄를 추가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미 연방수사국(FBI)은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영사관이 비자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은 중국 군사 연구원을 은닉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대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미국인들의 반중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움직임은 11월 대선 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무책임한 처사도 개탄스럽지만 다가올 중국의 대응도 우려스럽다. 중국은 최대한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 이번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발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 가장 곤란해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미국은 동맹관계를 앞세워 ‘반중 블록’ 참여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당장 미 국무부 부차관보가 LG유플러스를 거명하면서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요구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