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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21] ‘넷제로’라는 신기루(210603)

‘2050년까지 넷제로(net zoro).’ 현재 지구상에서 이보다 더 뜨거운 구호는 없을 듯하다. 기후변화 위기에서 인류를 구할 유일한 방안인 양 세계가 한목소리로 넷제로를 외친다. 지난 4월22일 지구의날에 열린 기후정상회의는 넷제로 경연장 같았다. 참여국마다 앞다퉈 이산화탄소(CO2) 감축 목표를 상향조정했다. 넷제로는 탄소중립과 같은 말이다. CO2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를 흡수·제거해 실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즉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를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는 상태다. 넷제로는 기술혁신으로 탄소를 감축하겠다는 발상이다. 바탕에 기술 만능주의가 깔려 있다. 넷제로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법하지만 우려도 크다. 넷제로에 인류의 미래를 걸어도 될까.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라면 어떡하나. 과연 넷제로는 요술방망인가, 신기루인가.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가 1988년이다. 그해 6월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처음 과학적으로 규명됐다. 그 후 1992년 리우 선언,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약이 나왔다. ‘지구기온 상승 1.5도 제한’을 위한 CO2 감축은 당면과제가 됐다. 1990년대 중반 관심은 기술혁신을 통한 에너지 효용성 증가와 에너지 전환이었다. 하지만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꿈의 기술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나온 것이 탄소포집저장(CCS)이다. 배출되는 CO2를 모아서 바다 밑이나 땅속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이 또한 여의치 않자 대기 중 CO2를 식물이 흡수하거나 식물체를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이용하는 바이오에너지CCS가 등장했다. 핵심은 방대한 조림이다. 한때 사탕수수로 만든 바이오에탄올과 팜유로 만든 바이오디젤이 유행했다. 하지만 경작지를 갉아먹고, 엄청난 물이 필요하다는 현실에 직면했다. 산림이 사라지면 태양에너지를 더 흡수해 기온이 높아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자 지오엔지니어링이 등장했다. 지구가 태양에너지를 받아 반사하는 비율을 높여 온도를 떨어뜨리는 방안이다. 그리고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라고 권고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지난 30여년간 노력에도 CO2는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2년 리우 선언 이후 CO2 배출량은 오히려 60% 증가했다. 18세기 산업혁명 전 280PPM 수준이던 지구 CO2 농도는 2015년 심리적 저지선인 400PPM을 넘었다. 2021년 4월 현재 419.05PPM다. 안타깝게도 탄소를 줄일 수 있는 기술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설사 실현되더라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2017년 중순 한 보고서는 금세기 말까지 대기 중 CO2 1조t을 CCS로 처리할 경우 535조달러가 든다고 밝힌 바 있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의존한 지금까지의 대응이 잘못됐음에도 여전히 신기루 같은 미래 기술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이 넷제로의 불편한 진실이다.

 

“현재의 넷제로 정책은 전혀 의도하지 않아 지구기온을 1.5도 이내로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정책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렇듯 늘 기후가 아닌 비즈니스를 보호하기 위해 추동됐다. 인류를 안전하게 하고자 한다면 지금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과감하고도 지속 가능하게 줄여야 한다.” 넷제로 신봉자에게는 죽비 같은 말일 터다. 영국과 스웨덴 기후과학자 3명이 지난 4월22일 공개한 ‘넷제로 개념은 위험한 덫이다’라는 글의 마지막 대목이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 입안에 참여해 온 이들의 지적이기에 의미는 작지 않다. 한마디로 넷제로는 몽상이자 사기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정치 지도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4~8년이다. 이들에게 2050년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CO2 감축이 발등의 불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국내 환경운동가들이 탄소를 배출하는 각종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넷제로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지구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할 수 있는 시간은 짧게는 6년7개월, 길게는 13년 남았다고 한다. 2050년 넷제로는 너무나 먼 목표다. 녹색연합 공동대표 조현철 신부는 5월31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성장을 추구하면서 탄소중립에 필요한 과감한 감축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넷제로’냐, ‘지금 당장 전환’이냐는 고민거리가 아니다. 누가 30년 후 미래를 점치는 도박에 돈을 걸겠는가. 늦지 않았다. 넷제로라는 신기루를 좇기보다 CO2 감축으로 정책 방향을 즉시 전환해야 한다. 넷제로가 희망고문이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