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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22] “억만장자는 지구를 떠나라”는 경고(210701)

세계 최고 부자 제프 베이조스가 이달 20일 우주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우주탐사 업체 블루오리진이 만든 우주관광 로켓 ‘뉴 셰퍼드’를 타고 상공 100㎞ 부근에서 11분간 머물다 돌아올 계획이다. 성공하면 또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디딘 지 52주년이 되는 날, 우주관광시대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영국의 ‘괴짜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이 선수를 칠 것이라는 말도 있어 장담할 순 없다. 그런 그에게 저주가 날아들었다. 우주로 간 베이조스가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자는 ‘지구 귀환 반대’ 청원이다. 지지자들은 베이조스를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작심한 사악한 지배자”라며 “억만장자는 지구 또는 우주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0’이다. 다만 억만장자를 향한 반감과 분노가 이보다 더 섬찟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베이조스뿐 아니다. 세계 2위 부자 일론 머스크와 4위 부자 빌 게이츠도 도마에 올랐다. 머스크는 지난 5월 초 국제해커집단 어나니머스로부터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가 트윗으로 가사통화인 비트코인의 시세를 조종했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트윗에 놀아난 많은 이들이 피해를 봤다. 비슷한 시기 이혼 발표를 한 빌 게이츠는 과거 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친분 등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명성도 한꺼번에 날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을 포함한 미국 최고 부자 25명이 유리한 세제 덕에 엄청난 혜택을 누려온 사실도 드러났다. 탐사전문 매체 프로퍼블리카가 국세청 납세 자료를 입수해 지난달 초 폭로한 걸 보면 25명의 보유재산은 2014~2018년 4010억달러 증가했다. 반면 이들이 낸 연방 소득세는 총 136억달러였다. 평균 3.4%꼴이다. 일반인의 소득세율 14~37%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 특히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며 부유세를 지지해온 워런 버핏은 자선활동에 대한 세금 공제 덕에 실제로 납부한 세율이 0.1%에 불과했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미국인들이 안전하게 집 안에서 지낸 부자들보다 더 큰 비율의 세금을 낸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 최고 갑부들에 대한 비호감과 반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초국가적 권력을 휘두르며 세계를 주물러왔다. 혁신이니 자선이니 하는 것은 미명일 뿐이다. 코로나19는 그 반감을 극대화시켰다.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 탓이다. 세계은행은 하루 1.9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절대빈곤층이 연말까지 최대 1억5000만명 늘어나 7억5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지난해 억만장자는 3228명으로, 전년에 비해 607명 증가했다. 이틀에 3명꼴로 늘어난 셈이다.

 

이런 반감과 분노는 그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베이조스가 만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코로나19로 더 부각됐다. 베이조스는 나흘 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다. 그런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기자동차 테슬라를 만든 머스크에겐 정부 보조금으로 배를 불리면서 비트코인 시세 조종으로 막대한 부를 챙겼다는 비난이 따른다. 어나니머스의 지적대로 그의 행태는 “평범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에 대한 조롱”이었다. 세계 최대 자선단체를 통해 보건과 교육, 기후변화, 코로나19 백신 등 글로벌 현안을 이끌어온 게이츠의 영향력은 국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오죽하면 “게이츠재단과 적이 되지 말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억만장자들에 대한 반감과 분노는 역설적으로 정부의 실패를 보여준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처럼 고삐 풀린 거대 자본에 대한 경고등이 다시 켜졌다.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그때처럼 ‘월가점령운동’을 펼 처지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불매운동 정도다. 마냥 정부에 기댈 수도 없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법인세와 부유세 인상을 밝혔지만 최고 부자들이 빠져나갈 만큼 세제에 구멍이 나 있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최근 페이스북의 시장 지배력을 억제하려는 미 정부의 시도가 실패했다. 억만장자들의 초국가적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지구 귀환 반대 청원이나 어나니머스의 경고가 부질없어 보일지언정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선한 의도로 포장한 억만장자들의 모습을 끝없이 들춰내 경고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