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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카불 공항(210818)

공항은 흔히 한 나라의 관문으로 불리며, 그 나라의 이미지를 대표하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 수도의 카불 공항은 전쟁으로 점철된 아프간의 슬픈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1960년에 문을 열었지만 1970년대 말 이후 국제공항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옛 소련·아프간 전쟁(1979~1989) 때는 소련의 군기지로 활용됐다. 소련 퇴각 후 탈레반 집권기에는 제한적으로 운용됐다가 2001년 9월 미국의 침공으로 파괴됐다. 2008년 11월 재개장했지만 하루 이용객은 200~300명에 불과했다. 군 공항 역할도 하지만 미군은 북쪽으로 40㎞ 떨어진 바그람 공군기지를 이용한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20년 만에 재장악하면서 카불 공항은 유일한 탈출구가 됐다. 하지만 카불 공항은 한때 탈출하려는 아프간인이 몰려들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아프간인들은 활주로로 난입해 비행기에 올라가거나 트랩이나 탑승교에 매달렸다. 미군은 수송기 이륙을 돕기 위해 헬리콥터를 저공 비행시켜가며 이들을 해산했다. 이륙 비행기 바퀴에 매달려 있다 추락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프간 정부의 패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각인될 것이다.

 

미군은 카불 공항 경비와 자국민·아프간 협력자 등의 대피를 위해 병력 3500명을 배치해두고 있다. 카불 공항에는 지금도 아프간인 수백명이 미군과 탈레반 사이에 끼인 채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생살여탈권은 지난 20년 동안 이곳에서 전쟁을 벌인 미군이 쥐고 있다. 필사의 탈출을 노리는 이들이 공항 밖으로 쫓겨나간다면 그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카불 함락 직전 국외로 탈출한 것이다. 차량 4대와 헬리콥터에 현금을 가득 채운 채 자신이 보호해야 할 시민들보다 먼저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탈레반의 학살을 막기 위해서” 떠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전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함께 부정부패로 아프간을 망친 장본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불 공항은 2014년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래저래 카불 공항은 실패한 국가 아프간을 상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