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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호주의 핵잠수함(210918)

영연방국가 호주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이다. 1946년 미 주도 글로벌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에 참여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했다. 도널드 트럼프 때는 미국·일본·인도와 함께 안보협의체 ‘쿼드’에 참여했다.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큰 땅덩어리에 비해 군사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의 전 세계 군비 순위는 12위(1.4%)다. 한국(2.3%·10위)보다도 낮다. 역내에 군사적 경쟁국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호주에 군사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이 영국, 호주와 함께 새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면서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첫 핵잠수함 도입은 2040년으로 예상된다. 핵 에너지로 추진되는 핵잠수함은 게임체인저로 통하는 전략무기다. 연료 보급 없이 장시간·장거리 작전 수행이 가능해 후방 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프랑스, 영국만 보유하고 있다.

사실 호주로서는 오커스 가입은 도박에 가깝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3년 전 취임 시 미·중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으로 기울더니 핵잠수함 도입까지 선언했다. 프랑스와의 재래식 잠수함 12대 도입 계약도 파기했다. 재래식 잠수함만 6척을 보유한 호주가 핵잠수함을 도입하는 것은 전략적 이해 때문이다. 관계가 껄끄러운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거리 군사작전 능력 향상을 위해 향후 10년간 270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국방전략과도 부합한다.

하지만 이는 미·중, 호·중 관계를 악화시킬 악재이다. 일각에서는 호주의 핵잠수함 보유가 핵무기 보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핵추진 잠수함 운용에 핵무기 보유까지 더해지면 차원이 달라진다. 최근 대규모 산불을 겪으면서 호주에서는 화석연료를 쓰는 발전소 대신 원전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그런데 원전 기술과 사용후 연료는 핵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 호주 정부는 그럴 일이 없다고 했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세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