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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 러는 비인도적 행위 중지하라(22032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4일로 한 달이 됐다. 러시아군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남동부 거점도시 마리우폴, 흑해 연안 최대 무역항 오데사까지 전방위 공격을 감행해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악의 인도적 위기가 발생했다. 유엔 집계로만 무고한 민간인이 1000명 가까이 숨지고, 1000만명이 집을 떠나 난민이 됐다.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으면서 인도주의적 재앙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명분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시도가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속임수일 뿐 과거 슬라브민족의 영광을 다시 한번 실현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거대한 야망의 일환이다. 더욱 큰 문제는 명분 없는 전쟁을 벌이는 푸틴의 전술이다. 민간인 피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속탄, 진공폭탄, 백린탄 등 금지 무기를 쏟아붓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조기에 굴복시키는 데 실패한 푸틴이 생화학무기·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전쟁을 조기에 끝내 최악의 재앙을 피해야 하는 과제가 전 세계에 던져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푸틴이 정치적 생명을 걸고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어서다. 서방국가들은 푸틴의 막무가내식 위협에 진퇴양난에 빠졌다. 러시아 전투기를 상대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터키가 보유한 러시아산 지대공 미사일 S-400을 제공해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른 태도가 푸틴의 잔학행위를 부추기고 있지만 서방으로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푸틴이 만족할 성과를 얻기 전까지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민간인 대량학살을 막는 것이다. 푸틴의 공격을 멈추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화를 통해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서방과 러시아 양측 모두 명분에 얽매이지 말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와 중립국화 이상의 그 어떤 대안도 의제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 푸틴도 비인도적 공격 행위는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우크라이나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