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위안부·강제동원’ 지운 일본, 미래는 어떻게 말할 건가(220331)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결과 내년부터 고교 2학년 이상이 사용하게 될 역사·정치·지리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강제연행’, 일본군 ‘종군위안부’ 표현이 사라졌다. ‘강제연행’ 대신 ‘동원’과 ‘징용’이라는 표현이 쓰이고, ‘종군위안부’는 ‘위안부’로 대체됐다. 반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은 대부분 교과서에 실렸다. 역사 인식의 끝없는 퇴행에 절망한다. 명백한 사실까지 왜곡하면서 어떻게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번에 새로 나온 일본 교과서 검정 결과는 역사 왜곡 사례 중 최악이다. ‘일본사 탐구’ 7종 교과서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군 위안부’로 서술해왔던 진보 계통의 짓쿄출판마저 일본군을 빼고 ‘위안부’로 표현했다. 표현을 바꾼 이유는 ‘정부의 통일된 견해에 기초한 기술’이 아니라는 정부의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표현을 바꿨다는 말인데, 이는 2014년 아베 신조 정권이 개정한 교과서 검정 기준에 따라 지난해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강제연행·종군위안부 대신 징용·위안부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힌 결과 벌어진 일이다. 정부의 지적을 받고 수정한 사례는 14건으로 2014년 이후 가장 많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이 점점 강화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들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동원과 그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역사 교육을 통해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역대 내각은 모두 고노담화를 이어받겠다고 밝혔고,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도 담화 계승을 언급했다. 하지만 아베 2기 내각 이후 일본 정부의 역사 교과서 기술은 고노담화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래서는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반성과 사죄 위에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한국과 대화가 불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8일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복원” 희망을 피력했다. 그런데 윤 당선인 측은 30일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에 대해 “개별적인 외교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아무리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해도 역사 왜곡을 용납할 수는 없다. 한·일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일본 정부는 역사 왜곡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 윤 당선인도 일본의 명백한 역사 왜곡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