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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화물연대 파업에 대화 외면하고 엄정 대응만 외치는 정부(220610)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사흘째로 접어든 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법을 위반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서 대화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엄정 대응 방침에 강조점을 두었다. 노동자들의 생계가 걸린 데다 복잡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대화를 통한 해결보다 강경 대응을 강조해 우려스럽다.

파업 초기부터 정부의 대응을 보면 과연 이번 파업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된다. 주무부처인 국토부 원희룡 장관은 이날 “대화는 끊어진 적이 없고, 어제도 오늘도 의미 있는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물연대 측은 지난 2일 1차 교섭 이후 정부와 대화가 없다고 반박했다. 대화를 하고 있느냐는 지극히 기본적인 사실을 놓고 진실게임을 벌이는 한심한 지경이다. 더구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파업 전날 밤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참석을 이유로 출국했다. 이런 판에 윤 대통령의 엄정 대응 언급은 강경 대응 기조를 더욱 부추길 게 뻔하다. 파업 이틀 동안 조합원 31명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는데, 무더기 연행 사태가 우려된다. 대통령부터 ‘파업=불법’이라는 공안적 시각에 빠져 있다면 사태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번 파업의 쟁점은 안전운임제의 일몰 조항 폐지 및 적용 대상 확대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기사들에게 적정 임금을 보장함으로써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3년(2020~2022년) 일몰법으로 도입됐다. 게다가 화물연대는 최근 경유 가격 폭등으로 안전운임제 없이는 생계유지가 곤란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반면 화주들은 안전운임제 때문에 운임이 30~40%가량 올랐다며 연말 안전운임제 종료를 촉구하고 있다. 쉽게 메워질 수 없는 입장차가 있다.

파업이 3일째로 접어들면서 산업현장 곳곳에서 물류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시멘트를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레미콘 공장이 멈춰서고, 원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완성차 생산도 더뎌지고 있다. 파업의 파장이 더 커지기 전에 노사정이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고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도외시하면서 엄정 대응만 강조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화물연대 측과 간담회를 열고 화물노동자 생존권 보호를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안전운임제 상시화와 적용 범위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노조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폐지 철회 등은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여야 정치권도 사태 중재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