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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대우조선 파업 푼 지 얼마나 됐다고 불법 엄단 운운하나(220725)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이 타결된 이후에도 계속 불법행위에 대한 엄단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한동훈 법무부·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2일 교섭 타결 직후 “불법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는 정부 입장문을 발표했다. 법원에 기각당하기는 했지만, 경찰은 하청노조원 9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합의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부가 노사 간 합의정신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계의 하청구조 문제를 푸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강경 대응에 나선 데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정부는 파업 타결 후 “법과 원칙에 따라 노사 분규를 해결한 중요 선례”라며 당국이 노조를 굴복시킨 듯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는 등 엄정 대응 방침이 사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이번 합의가 결코 노조에 굴복한 게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하투를 준비 중인 노동계에 보내는 메시지로 보인다. 하지만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장이 “초라하고 걸레 같은 합의서”라고 했듯, 이번 합의에는 노조 역시 불만이 많다. 그럼에도 노조가 합의를 수용한 것은 상생을 위한 양보의 결과다. 그런데 이런 합의정신을 존중하지는 못할망정 불법 엄단 운운하면서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노사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이번 파업 타결은 노조원에 대한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의 손해배상 소송 등 불씨를 남겨둔 채 이뤄졌다. 정부의 강경 방침은 향후 예정된 손배소 협상에서 사측에 힘을 실어줄 뿐 아니라 또 다른 파업을 촉발하는 악재가 될 수 있다. 노정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법원은 노조원 9명에 대한 체포 영장을 기각하면서 점거 농성이 해제됐고 조합원들이 경찰 출석 의사를 밝힌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같은 법원의 뜻을 새겨야 한다.

대우조선이 있는 거제시민 대다수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하청노조원들을 지지하고 있다. 23일엔 전국 38개 지역의 71개 단체 회원들이 ‘희망버스’ 37대를 타고 거제에 모여 하청노동자들을 격려했다. 정부·여당은 노조를 억누르려만 하지 말고 진정한 사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