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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갈수록 ‘번창’하는 인질산업 (2010 11/02ㅣ위클리경향 898호)


ㆍ납치지역 확산 석방비용 치솟아 연간 매출규모 1조7800억원

아프리카 케냐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어선 ‘금미305호’가 10월 9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사실이 10월 17일 확인됐다. 한국 어선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것은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지난 4월 4일 인도양에서 납치된 원유운반선 ‘삼호드림호’는 7개월째 억류돼 있다. 회사 측은 한국인 5명과 필리핀인 19명의 석방조건을 두고 해적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미305호에는 선장 등 한국인 2명과 중국인 2명, 케냐인 39명이 타고 있다.

알 카에다에 납치됐다가 9개월 만에 풀려난 스페인인 알베르트 빌랄타(오른쪽)와 로케 파스쿠알이 8월 24일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한 뒤 주먹을 불끈 쥐면서 기뻐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이들의 석방을 위해 500만 파운드를 지불했다고 일간 엘 문도가 보도했다. 바르셀로나/AP연합뉴스

 

소말리아 해적들이 한국 선박을 납치한 이유는 자명하다. 바로 돈 때문이다. 납치범들이 인질들을 ‘걸어다니는 황금’으로 여기는 이유다. 인질들의 몸값을 노리는 납치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납치가 이뤄지는 지역은 갈수록 확대되고 그 목적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질 석방 비용도 갈수록 치솟고 있고, 인질과 관련한 유관 산업도 번창하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금미305호 피랍사실이 알려진 10월 17일 연간 매출규모가 10억 파운드(약 1조7800억원)에 달하는 ‘인질산업(hostage industry)’의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매년 1만2000여명 납치 추산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소말리아, 이라크에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에서 국제 구호요원이나 서방 기업 종사자, 관광객, 현지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납치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납치되는 사람은 적어도 1만2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멕시코의 경우 2008년에만 7000명 이상이 납치됐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지난해 적어도 1000명이 납치됐다. 소말리아에서는 외국인들이 매달 106명 꼴로 납치되고 있다. 10월 17일 현재 외국인 400명을 포함해 2000여명이 임시변통으로 만든 ‘감옥’에서 언제 풀려날지도 모른 채 또다른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물론 이같은 숫자에는 전쟁으로 인한 고아나 신부 납치 관행에 따라 사라진 여성의 숫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이들이 안전하게 풀려나기 위해 납치범에게 지불하는 몸값은 엄청나며,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나이지리아 경찰은 2006~2008년 납치범에게 지불된 몸값 규모는 1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알 카에다는 서아프리카에서 몸값으로만 수백만 달러를 번다. 과거 반군이나 게릴라들은 정치적인 이유나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인질을 잡았지만 갈수록 상업화하고 있다. 요즈음 대부분의 납치는 몸값을 목적으로 이뤄지며, 인질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160만 달러까지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납치가 성행함에 따라 연관산업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인질의 몸값을 대주는 보험상품을 전문으로 하는 보험회사도 생기고, 협상전문가나 변호사, 개인경호원도 덩달아 호황이다.

통상 사람들은 납치의 대상으로 유명 인사들을 떠올린다. 실제로 과거 인질범들은 자국의 분쟁을 확산시키거나 반군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홍보수단으로 유명 인사들을 납치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 국가의 경우 정치적으로 인질을 활용하지만, 일반적인 인질은 마약 조직에 의해 납치된 멕시코인이거나 석유 관련업에 종사하는 나이지리아인이나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납치되는 사람들이다. 인질 납치는 과거만 해도 남미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2004년까지 남미에서 발생한 인질사건은 전세계의 65%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그 숫자는 37%로 줄어들었다. 대신 필리핀,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멕시코,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파키스탄, 이라크, 네팔, 아이티, 예멘 등 남미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납치가 확산되고 있다.

 

 이란 당국에 13개월 동안 억류됐다 석방된 미국인 세라 쇼어드(앞줄 왼쪽)가 9월 14일 오만 수도 무스카트 공항에 도착한 뒤 어머니와 함께 걷고 있다. 이란 정부는 쇼어드 석방 대가로 50만 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스카트/AFP연합뉴스



시간 지날수록 가족만의 문제로 남아
납치범들이 인질을 다루는 방법도 나라마다 다르다. 멕시코의 경우 인질들을 함부로 대한다. 몸값을 높일 목적으로 한 손을 없애는 것도 다반사다. 그래도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인질의 목숨을 앗는다. 반대로 나이지리아는 인질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 아프간의 탈레반과 이라크의 무장세력은 투쟁자금을 모을 목적으로 인질을 활용한다. 2004년 이후 이라크에서는 외국인 200명과 자국인 수천명이 납치됐으며, 자국인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안보 및 정치위험 관리회사 AKE가 인질극이 만연하는 10대 국가 가운데 3위로 분류한 나이지리아의 경우 니제르 삼각주에서 이슬람 반군에 의해 납치된 외국인 석유업 종사 노동자는 올해 21명을 포함해 2006년 이후 200여명에 달한다. 석유 기업들은 납치범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 스태프를 철수시키고 첨단장비로 무장한 사설 경호원을 고용했지만 이슬람 반군들은 중산층 자국민이나 그들의 자녀를 납치하는 쪽으로 전술을 바꿨다. 나이지리아인의 몸값(3만 달러 이하)은 외국인(20만 달러)의 6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올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나이지리아인 인질만 해도 500여명이나 된다.

인질의 경우 이름이 알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구호요원이나 기술자, 현지 기업인의 아들 등 익명이다. 이런 이유로 언론들은 시간이 갈수록 익명의 인질사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며, 결국 납치된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문제로만 남게 된다. 익명의 인질조차 몸값이 엄청나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한 과자점 주인의 아들은 아버지가 평생 모은 1만 달러를 주고서야 풀려났다. 외국인이나 선박의 경우 석방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은 훨씬 많다. 나이지리아에서 납치된 독일인 2명은 납치범에게 43만 달러를 내고서야 풀려났다. 선박의 경우 300만~700만 달러가 협정 가격이다. 이보다 나쁜 경우는 자신들이 원하는 몸값을 제때 못받는, 참을성이 없는 납치범이다. 지난해 이라크 바그다드의 한 소년은 기술자 아버지가 48시간 안에 몸값을 마련하지 못해 피살됐다. 심지어 몸값을 원하는 대로 준비했지만 피살된 경우도 있다.

미국 해병대가 9월 9일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해적에 의해 납치된 선박 구조 훈련을 하고 있다. 아덴/AFP연합뉴스


서방국가들은 인질극이 발생할 때마다 인질범과는 타협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돈으로 해결할 경우 인질극이 오히려 기승을 부리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국 정부는 물론 부인하지만 현실적으로 몸값 지불을 반대하지 않는다. 지난 8월 스페인 정부는 서아프리카 모리타니에서 지난해 11월 납치된 2명의 자국 구호요원에게 엄청난 몸값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적이 있다. 스페인 일간 엘 문도는 스페인 정부가 이들의 석방을 대가로 지불한 몸값이 500만 파운드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2006년엔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정부가 이라크에 억류된 자국민 9명을 석방하는 대가로 각각 250만~1000만 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년 간 인질 석방 대가로 지불된 비용은 총 4500만 달러나 된다. 영국 정부도 결코 몸값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인질 관련 정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는 것이 인디펜던트의 주장이다.

납치 및 몸값과 관련한 보험산업도 번창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발표한 미국 500대 기업 가운데 납치와 몸값 관련 보험에 가입한 기업은 4분의 3이나 된다. 납치와 몸값 관련 보험료로 지불된 액수는 전세계적으로 4억 달러에 육박한다. AKE에서 인질협상 전문가로 일하는 존 체이스는 인디펜던트에 “1970년대에는 납치와 몸값과 관련한 보험회사는 한 곳뿐이었지만 지금은 4곳으로 성장했다”면서 “이들이 이 시장의 98%를 커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이스에 따르면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인질상황은 없다. 그는 “정치적인 요구로 시작된 인질극이라 해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서 “각국마다 인질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몸값은 얼마가 될지 기준이 있으며 인질범에게도 각자 요구하는 가격이 있다”고 말했다.

각국정부 몸값 뒷거래 비밀에 부쳐
특히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벌어지는 해적들의 인질극은 협정 몸값을 왜곡시키고 올리는 주범이다. 체이스에 따르면 과거 해적들이 요구하는 협정 몸값은 150만 달러였다. 그러나 지금은 300만 달러로 2배 올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납치범들에게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이 든다. 소말리아 앞바다에 있는 납치범들 선박에 몸값을 담은 꾸러미를 전달하는 비용이다. 이를 담당하는 항공화물회사의 경우 한번 떨어뜨리는 데 약 25만 달러를 받는다.

인질산업이 번창할수록 해적들의 대응도 갈수록 정교화하고 있다. 해적들이 석방 대가로 받은 수백만 달러의 몸값이 갑자기 가난한 해안 마을에 밀려들면 생필품 가격은 2~3배 뛴다. 이같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생필품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BBC방송은 최근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해적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마련했는지를 소개했다. 해적들은 비록 암시장이긴 하지만 자체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주식시장’을 만들어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있다. 우선 각 해적 조직들은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등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주식시장’에 등록한다. 개인들은 주식을 사거나 무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각자 원하는 해적 조직에 투자한다. 그리곤 자신이 투자한 해적 조직이 몸값을 받는 데 성공하면 투자한 만큼 돌려받는 방식이다.

인질 관련 전문가들은 인질산업이 번창하는 이유가 정부나 기업, 개인 등이 납치사실을 비밀에 부치려는 속성 때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로이터통신의 중국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다 1967년부터 27개월 동안 중국 당국에 의해 인질로 잡힌 적이 있는 영국인 앤서니 그레이는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에서 각국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비해 인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언론 등을 활용해 인질 석방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인질문제를 투명하게 다루기 위해 유엔이나 국제적십자사(ICRC)와 같은 국제기구 산하에 독립적인 기구를 둘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인 해외 피랍 일지

○ 2004.4.8 변모씨 등 한국인 목사 7명, 이라크에서 무장세력에 의해 억류된 뒤 7시간 만에 석방

○ 2004.5.31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팔루자로 이동하던 중 무장단체에 피랍. 23일 후 피살된 채 발견

○ 2006.4.4 동원수산 소속 원양어선 동원호,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무장단체에 피랍. 7월 30일 석방

○ 2007.1.10 나이지리아 남부 바엘사주 오구 지역에서 대우건설 소속 한국인 근로자 9명 무장단체에 피랍. 사흘 뒤 석방

○ 2007.5.3 나이지리아 유전지대 포트 하코트 내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대우건설 소속 직원 3명 무장단체에 피랍. 6일 만에 석방

○ 2007.5.15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한국인 4명 탑승 원양어선 2척 무장단체에 피랍. 173일 만인 11월 4일 석방

○ 2007.7.19 분당 샘물교회 자원봉사자 23명,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피랍. 8월 30일까지 2명 피살, 21명 석방

○ 2007.10.28 소말리아 인근 해역서 한국인 선원 2명 승선한 일본 선박 해적단체에 피랍. 1명 탈출, 1명은 12월 12일 석방

○ 2009.6.12 예멘 북부 사다에서 국제의료자원봉사단체 소속 한국인 1명 등 9명 피랍. 15일 전원 사망

○ 2010.4.4 한국인 1명, 필리핀인 19명 승선한 원유운반선 삼호드림호 인도양서 해적에 피랍

○ 2010.10.9 한국인 2명 등 43명 승선한 한국 어선 금미305호 케냐 앞바다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