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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카다피 축출, 군사개입 ‘정조준’ (2011 03/15ㅣ주간경향 916호)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리비아에 대한 무력개입을 할까.

 리비아 사태가 해결 조짐을 보이지 않음에 따라 무력개입이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민간인에 대한 유혈참사 우려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3월 1일 리비아에 대한 급박한 군사개입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지만 그 가능성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리비아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다양한 군사력 사용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실제로 군사개입 문제는 복잡할 뿐더러 정치적 대가도 만만찮다. 그럼에도 무력개입을 하라는 전방위적 압력은 거세지고 있다. 무력개입이 이뤄진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며, 어떤 수순을 밟게 될까.


 
미국의 수륙양용 공격함 키어사지호가 지중해의 리바아 해역으로 가기 위해 3월 2일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수에즈운하/AP연합뉴스
 

미국과 서방은 리비아에 대한 무력개입의 근거는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 입장에서 보면 카다피는 대량학살자로서 제거해야 할 악성종양으로, 무력개입은 카다피 독재 42년을 종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더욱이 장기 내전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에서 카다피를 이른 시일 안에 축출하지 않으면 추가 학살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도 섞여 있다. 하지만 카다피는 결사항전을 각오한 상태다. 카다피는 2월 28일 미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국민은 나를 사랑한다. 그들은 나를 위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가 자발적인 퇴진 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강제 퇴진이 불가피하며 그 방안은 군사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리비아에서 대량학살과 같은 인도적 대재앙에 대한 우려가 심화할 경우 무력개입 가능성은 높아지는 동시에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과거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 소말리아 사태 등 인도적 재앙이 초래됐을 당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무력으로 개입한 전례도 있다. 미국 국내외에서 조여오는 무력개입에 대한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미 랜드연구소에서 20여년간 미국의 군사개입 문제를 다뤄온 전문가인 제임스 도빈스는 시사주간 타임에서 “갈수록 국제적인 무력개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오바마가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논의 무르익어

군사개입이 이뤄진다면 어떤 순서로 진행될까. 미국의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지난 1일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4단계를 제시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미 전함 리비아 해상 배치→무인비행기 공습→지상군 배치 순이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사실상 군사개입의 첫 단계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WINEP)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중해의 미 6함대와 이탈리아의 나토 공군력을 활용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거나 해상봉쇄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보태 통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군사개입의 효과가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비행금지구역 설정 논의는 무르익고 있지만 3일 현재 어떠한 합의에도 이르지 못한 상태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3월 2일 수도 트리폴리에서 연설을 하기 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서방의 무력개입이 있을 경우 리비아인 수천명이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리폴리/로이터연합뉴스


1990년대 이후 서방에 의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이뤄진 경우는 사담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1992~2003년), 보스니아 내전(1993), 코소보 사태(1999) 등이 있다. 이라크의 경우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이 시행했지만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는 유엔 안보리의 승인에 의거했다. 나토 및 유럽연합(EU) 일부 회원국은 과거 발칸반도 사례를 준용해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구상하고 있다. AP통신은 2일 한 EU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결정이 된 것은 아니라면서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나토의 ‘오퍼레이션 데니 플라이트’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자국 일간지인 일 메사게로에 “발칸의 경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의 비행기가 비무장 민간인에게 공습하지 못하도록 하는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면서 “이 같은 방식은 폭격을 막고 카다피가 통제하고 있는 영공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에 리비아에서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두번째 단계가 현실적이다. 미국은 리비아 해상에 전함들을 배치 중이다. 지난 2일까지 리비아 해상에 전진 배치된 미 전함은 구축함 배리호와 수륙양용 공격함인 키어사지호, 수륙양용 지원함 폰스호 등 세 척이다.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이들 전함의 파견은 인도주의적 구호에 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게이츠 장관은 “우리의 임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에 가능한 한 넓은 선택범위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해 향후 군사 전력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리비아 해상에 미 전함들을 전진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리비아에 상당한 군사적 압박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육군국방대학의 드와이트 레이먼드는 CSM에 “미군 전함에서 한 대의 비행기도 뜨지 않겠지만 전함이 리비아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중대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리비아 해상 전함 배치가 이뤄진다면 무인비행기를 통한 공습이 다음 순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인 지상군의 투입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렁에 빠진 악몽이 있는 미국으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무력개입이 대미항전 빌미 우려도


비록 무력개입 가능성은 상존하지만 실제로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 우선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의 트라우마를 들 수 있다. 양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추가 무력개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 및 국제 여론에 떠밀려 무력개입을 하더라도 독자적이 아닌 나토와 함께 하길 원한다. 하지만 나토는 유엔 안보리의 승인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안데르센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유엔 안보리의 승인없이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여기에 러시아·중국·터키·프랑스 등도 반대하고 있다. 앞서 중국은 2월 26일 기존의 ‘내정 불간섭’ 원칙을 깨고 유엔 안보리의 리비아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찬성한 바 있지만, 리비아 무력개입에 관한 안보리 논의에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리 바오동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지난 2일 매달 돌아가며 의장국을 맡는 유엔 안보리 관례에 따라 3월 의장국이 된 자리에서 인권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선회한 것이냐는 질문에 “리비아에 대한 안보리 조치를 지지하는 것이 중국의 정책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리비아에 대한 무력개입이 이뤄질 경우 리비아에 외세개입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켜 대미 항전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랜드연구소의 도빈스는 “(군사력을 통해) 반대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은 쉽지만 좋은 정부로 대체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아프간·이라크 사례처럼 무력개입은 할 수 있지만 뒷감당을 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미국은 어쩌면 실질적인 무력개입보다 결정적인 군사위협이 리비아 군을 전열에서 이탈시키거나 카다피 체제를 전복시킬 쿠데타를 재촉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