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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아침을 열며

아침을열며2/CIA-알카에다 커넥션의 부활

조찬제 국제부장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7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어느 누구라도 시리아 국민들의 불행을 부추기는 일을 시도하거나 대리인 또는 테러리스트를 보낼 경우 참지 않겠다.” 클린턴 장관은 특정 국가나 테러조직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클린턴의 경고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지는 전후맥락을 살펴보면 드러난다. 미국 스스로 시리아 사태에서 대리인과 테러리스트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 스스로 최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이다.


알카에다의 시리아 사태 개입설은 오래전부터 나돌았지만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말 “알카에다 산하 3개 조직이 시리아 혁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분명해졌다. 이후 다른 미국 언론들도 시리아에서의 알카에다의 존재와 역할을 앞다퉈 조명했다. 싱크탱크도 가세했다. 미국외교협회(CFR) 중동연구실의 선임연구원 에드 후사인은 지난 6일 CFR 홈페이지에 ‘알카에다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시리아 반정부군은 알카에다 요원 없이는 너무나도 취약해질 것이다…그러나 알카에다 전사들은 사기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자유시리아군(FSA)은 지금 알카에다가 필요하다.” 뉴욕에 있는 CFR는 미 국무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싱크탱크다. 현재 이사진에는 국무장관을 지낸 두 사람이 포함돼 있다. 콜린 파월과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그들이다. 글을 올린 후사인은 이슬람 근본주의자 출신이다. 그는 5년간 과격 이슬람 단체에 몸담았다가 탈퇴한 뒤 <이슬람주의자>라는 책을 통해 이슬람 전문가로 떠올랐다.


알카에다가 시리아 사태에서 반정부군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지난해 3월 시리아 사태 발발 초기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어 보자. 당시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는 외부세력인 알카에다가 부추기는 것이며, 따라서 정부의 시위 진압은 알카에다와의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알 아사드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때만 해도 알카에다가 시리아 사태에 개입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의 잇단 보도로 알카에다가 시리아 사태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는 점은 명백해졌다. 이는 엄청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알카에다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일으킨 두 개 전쟁의 원흉이자 미국의 주적이다. 그런 알카에다가 어떻게 시리아 사태에서 없어서는 안될 전사로 떠올랐단 말인가.


시리아의 난민들이 터키로 망명하기 전 임시 시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17개월째인 시리아 사태는 정부군과 반정부군 간 내전으로 치달은 지 오래다. 유엔이 파악하고 있는 사망자는 1만7000명이 넘는다. 막강한 화력을 지닌 정부군 앞에 속수무책이던 반정부군도 시간이 갈수록 놀랄 만한 속도로 무장하고 있다. 리비아처럼 국민보호의무(R2P) 명분으로 무력개입을 하고 싶어도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에 막혀 있는 현실 속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알 아사드를 중심으로 하는 소수 시아파인 알라위파의 폭정에 시달리는 대다수 수니파 시리아인을 구하기 위한 수니파 지하디스트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알카에다가 시리아 반정부 투쟁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알카에다-CIA 커넥션’을 떠올리게 한다. CIA는 아프간에서 옛소련의 침공에 맞서 저항하던 무자헤딘 전사들을 돕기 위해 알카에다 창설자인 오사마 빈 라덴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빈 라덴은 반대급부로 파키스탄 국경을 통해 자신의 부하들을 아프간으로 들여보냈다. CIA는 지금 시리아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CIA는 터키 국경에서 진행되고 있는 병참 작전을 지휘하고 있다. 심지어 무장한 체첸 지하드 요원들이 그루지야를 경유해 터키를 통해 시리아로 들어가고 있다.


미국이 시리아에서 알카에다에 의존하는 것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국제정치 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반영한다. 물론 미국은 알카에다가 시리아 사태의 중심에 있는 사실을 내키지 않아 한다. 다만 알카에다 처리 문제가 최우선 해결과제가 아니라고 여길 뿐이다. 시리아에서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알 아사드 제거이다. 그 다음은 이란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다. 알카에다 처리는 마지막 순위다. 미국이 시리아에서 알카에다를 필요로 할수록 치러야 할 대가도 있다. 알카에다가 시리아 일부를 장악해 시리아를 지하디스트 운동의 새 전략거점으로 삼는 경우다. 그 결과는 현재 아프간 상황이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알카에다는 언젠가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시리아에서의 CIA-알카에다 커넥션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지난 6일 시리아에서 알카에다 필요성을 강조한 CFR 선임연구원 후사인은 지난 23일 내셔널리뷰 온라인에 올린 글에서 “알카에다 호랑이 등에 타지 말라”고 주장했다. 현 상황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