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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아침을 열며

아침을열며5/총기 규제, 이제는 행동에 옮길 때

조찬제 국제부장

지난 토요일 오전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던 아내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참사로 무고한 아이 20명과 교직원 6명 등 26명이 숨졌다는 것이다. 나중에 보니 숨진 아이들은 모두 6~7세 철부지들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을 졸지에 잃은 부모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 가족은 버지니아주에서 1년 동안 거주한 적이 있다. 한국계 조승희가 저지른 미국 최악의 총기 참사인 2007년 버지니아텍 사고가 있은 직후다. 기우에 그치긴 했지만 같은 성씨라는 이유만으로도 불안해했다. 이 때문에 총기 참사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무 탈없이 귀국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곤 한다.

이번 참사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희생자들이 무고한 어린이라는 점과 범인에게 용감하게 맞서다 숨진 선생님들의 무용담 때문만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총기 참사는 미국이 직면한 불행 가운데 하나다. 버지니아텍 참사 이후만 해도 2009년 포트후드 군사기지 참사와 빙엄턴 이민자서비스센터 참사, 지난해 1월 투산 참사, 지난 7월 오로라 극장 참사가 이어졌다. 하루에 84명이 총기 사고로 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연말 쇼핑시즌이 시작되는 블랙 프라이데이 때 총기 구매가 급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공군 병사가 콜로라도주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있다. (출처; 경향DB)


미국에서 총기 참사가 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 또 있다. 총기 규제에 관한 논의다. 언론에는 숱한 반성과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다양한 총기 규제 방안도 제시된다. 지적장애인에 대한 총기 관리 철저나 반자동소총 판매 제한, 실탄 판매 제한과 같은 것들이다. 문제는, 논의는 많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 언론에 따르면 1994년 이후 총기 규제와 관련된 의회 입법이 없다고 한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총기 규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토요일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재발 방지를 위한 “의미있는 행동”을 강조했다. 하지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불법 총기 반대 시장들의 모임’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의미있는 행동만으로는 안된다.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이전에도 너무나 많은 수사를 들었다”며 행동을 강조했다. 언론에 쏟아지는 총기 규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번에는 제발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젓게 된다.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총기 규제 논의가 한바탕 격렬하게 벌어질 터이고, 결국 총기 참사는 총기 규제와 무관한 문제라는 목소리에 파묻힐 것이 뻔하다.

총기 규제 강화 움직임은 총기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이지만 현실적인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총기 소유가 헌법상의 권리로 시민권의 핵심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 같은 인식은 당파를 초월한다. 민주당조차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2008년 선거를 통해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도 총기 규제에 소극적이었다. 경제위기와 보건의료개혁법안 처리를 위해 총기 규제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총기를 불법 유통하거나 분실해 범죄에 사용될 경우 벌금을 강화하는 방안을 지지했다. 더욱이 공화당이 2010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하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오바마 2기는 재정절벽 협상 등 재정적자 해소 과제를 안고 있다. 소극적 태도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를 계기로 총기 규제가 오바마 2기 행정부의 과제로 떠올랐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오바마 스스로도 “의미있는 행동”을 강조한 만큼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2기 출범을 앞둔 오바마 어깨 위에는 또 하나의 커다란 짐이 놓였다. 오바마는 이 짐을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총기 참사의 악순환을 끊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에 실탄을 10발 이상 장착하는 탄창 사용을 금지하고 특정 모델의 반자동소총 판매 금지를 뼈대로 하는 법안을 10년간 시행했다. 물론 큰 대가를 치렀다. 수검표 작업까지 간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총기 소유에 적극적인 주들에서 패배함으로써 석패한 것이다. 오바마는 현실적인 대안들을 찾아 차근차근 밀고나가야 한다. 최소한 학교에서만이라도 총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초등생과 중학생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무고하게 숨진 아이들의 소리없는 외침에 귀기울여야 한다. 이들은 말한다. 지금은 기도와 위로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오바마는 이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오바마 뒤에는 흑인 대통령으로 두 번이나 뽑아준 든든한 시민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최적기일지도 모른다.